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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제를 다녀와서
시산제를 다녀와서
  • 의사신문
  • 승인 2011.02.1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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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힘들었지만 겨울산 매력에 빠진 하루

유승훈 원장
지난달 23일 일요일이었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산행을 준비했다. 그 날은 벼르고 있던 서울시의사회 산악회에서 주관하는 시산제에 참가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아버님의 권유로 운동 삼아 주로 북한산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일주일의 피로를 푸는 방법으로 산행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멀리 원정을 다닐 만큼 사정이 허락되지 않아 서울 근교를 주로 찾고 있다. 그저 운동을 위해 시작한 산행이었지만 산 정상에서 느끼는 시원스러운 경치와 성취감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해서 점점 산행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 시산제의 행선지는 강화도의 마니산이었는데 그 곳은 서울 근교라 개인적으로 가족과 함께 몇 번 등산한 경험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겨울 산행이라는 점에서 조금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던 산행이었다. 아직은 산행에 있어 초보라 혼자서 겨울 산행을 다녀올 용기가 예전에는 없었다. 일단 내 자신이 추운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험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고 겨울 산행 장비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겨울산행에는 아이젠과 스패츠가 필수 항목이고 면으로 된 내의를 피하고 기능성 내의를 입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겨울 산행은 나에게는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기에, 주변 분들과 함께 하고자 몇 글자 써볼까 한다.

이상 기후가 생긴 듯이 혹한이 몰아치고 있는 이번 겨울에는 이상하게 일기예보가 거의 정확하게 맞았는데 그날은 많은 눈이 예고되어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영하 10도를 밑돌던 기온이 다소 누그러져 영하 6도로 예고되어 있었다. 그래도 만약의 사태를 위해 든든하게 차려입고 아이젠과 음료수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서울시의사산악회가 출발하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침 6시25분이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어서 바람이 차게 느껴졌고 조금 춥기도 했지만 눈발이 날리지는 않았다. 한분 두분 산악회 회원들이 모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약 200여명의 회원들이 준비된 버스 5대에 나누어 타고 7시 정각에 마니산을 향해 출발했다.

마니산은 해발 496m의 비교적 평탄한 산이지만 정상 가까이에는 역사적으로 단군 할아버지가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대가 있는 산으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는 의미있는 산이기도 하다.

추운 날씨에 눈도 예보되었던 상황이라 아침에는 길거리에 차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예정했던 시간보다 일찍 마니산 국민 관광단지에 도착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서서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다소 불었지만 체감온도는 그리 낮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회장님의 인사말과 코스에 대한 소개가 있은 후 준비체조를 마치고 A코스와 B코스로 나누어 출발하기로 했다. B코스는 원래는 계획에 없던 코스였지만 눈이 내리는 관계로 등산 경험이 없거나 자신이 없는 분들을 위해서 함허동천으로 버스로 이동 후에 출발하는 비교적 짧은 회귀 코스였고, A코스는 처음 계획대로 주차장에서 마니산을 넘어서 함허동천으로 가는 코스였다.

일부 회원들과 가족을 태운 버스가 먼저 함허동천으로 떠나고 드디어 마니산 정상을 향해 힘찬 출발을 했다. 그날은 서울시의사산악회로 이끌어주신 선배님들과 제일 후미에서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뒤처지는 회원들이 있으면 안 되니까 잘 보면서 올라가도록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같은 초보가 후미를 해도 되나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선배님들이 있으니 든든했다.

정상으로 가는 단군로의 입구부에서 모든 회원들이 아이젠을 착용하고 천천히 오르는데 아이젠이 문제를 일으키는 몇 명의 회원을 제외하곤 대부분 빠르게 잘 올라가셨다. 이렇게 많은 인원 속에서 제일 후미에 서서 가보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내 속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서 우리 회원들이 쉬고 있으면 같이 쉬면서 기다렸다가 가고 하기를 반복하니까 속도 조절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젠 착용이 잘 안되던 회원을 기다리다가 올라가면 또 다른 팀 중에서 일찍 쉬는 분들을 만나서 기다리고 막걸리 한잔 하시는 분들을 또 기다리고, 이런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초보의 겨울산행…출발전부터 `기대반 두려움 반' 떨림 가득
눈 내리기 시작해 계획없던 B코스 후미서 천천히 정상 올라
강한 눈발에 서둘러 하산 재촉…계곡과 길 구별안돼 노심초사
결국 시산제 끝나서야 도착…아쉬움 남지만 멋진 설경에 행복



그렇게 그럭저럭 오르다가 능선을 따라 오르면서 보니 안개 때문에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이곳에 처음 와서 단군로 능선에서 주변을 바라봤을 때 바다가 보이고 갯벌이 보이던 주변 경치는 참 아름다웠었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이런 풍경을 다시 봤다면 아주 아름다웠을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천천히 후미에서 걸어가서 드디어 참성단을 지나 정상에 도착하고 주변을 살피니 눈발이 점차 강해지고 있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대부분의 회원들은 이미 내려가신 것으로 생각되었다.

정상을 지나면서 보니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역시 날리는 눈발이 문제였다. 바람이 정상에서는 워낙 강하게 불어서 얼굴을 때리는 눈발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함박눈을 맞으며 스키를 타보신 분이라면 그 느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에베레스트산 같은 험한 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은 고글을 꼭 착용하는구나 싶었다. 난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눈이 안경에 많이 붙어 시야 확보도 어려웠다. 겨울 산행도 처음이었지만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한 것도 처음이었던 나로서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이용해서 열심히 풍경사진을 찍으면서 설산(雪山)을 만끽했다.

그런데 정상에서 보니 몇 분의 걸음이 너무 느려 선두와의 차이가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예상보다 눈발이 거세지면서 눈이 제법 많이 쌓이기 시작했고 미끄럽기까지 해서 선두와의 간격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풍경을 음미하는 것도 잠시,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길이 미끄러워 힘들어 하시던 한 분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부축하고 내려오는데 갈림길에서 먼저 내려가신 분들이 계곡로로 내려오라고 표시를 해두셨다.

그런데 계곡로 입구부에서 보니 이미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져 어디가 등산로이고 어디가 계곡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눈 속에 묻혀버린 길을 찾아야 했으니 약간은 난감해졌다. 미끄러워 힘들어하는 분까지 있는데 길까지 구분을 할 수 없으니 한명이 먼저 내려가면서 길을 확인하고 다시 올라오는 작업을 반복했다.

속된 표현으로 `이 길이 아닌가봐'를 몇 번 한 후에 대략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평상시라면 아무리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도 문제없이 쉽게 내려갈 길인데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보통은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서 길을 확인하기가 더 쉬운 곳인데 눈이 많이 내린 그날은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산을 오르는 분들도 없었다. 후미를 책임지신 분이 결국 전화를 하면서 길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눈이 많이 와서 마니산에서 서울로 출발을 빨리 하기 위해 예정된 시간보다 시산제도 빨리 지낸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나를 비롯한 후미는 시산제가 다 끝나고 나서 식당에 도착을 했다. 시산제는 무사히 잘 치루어졌다고 하고 이미 대부분 식사를 시작하신 후였다. 빠르게 젖은 옷과 기구 정리를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 후미팀원들과 소주 한잔에 식사를 하였다.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몸도 녹고 피로도 풀리고 기분도 많이 상쾌해졌다. 그래도 시산제에 참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늦어져서 참석을 못하니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눈이 많이 내린 관계로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먼저 서울로 출발을 하였는데 서울 입구까지는 막힘없이 잘 와서 다행이었지만 88올림픽 도로에서는 차량이 많아 지체가 심하고 막혀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사실 귀경길에 집 근처를 지나가서 중간에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중간에 하차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압구정동으로 다시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예전에 참 쉽게 넘었던 산인데 날씨에 따라 이렇게 힘들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한 산행이었다. 겨울산에 눈까지 많이 내려서 뇌리에 설경이 아른거릴 만큼 인상 깊은 산행이었고, 비록 작은 산이지만 산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산행이었다.

유승훈<보아스이비인후과의원, 강서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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