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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소통하기 위해선 `환자의 감성'을 움직여야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선 `환자의 감성'을 움직여야
  • 의사신문
  • 승인 2011.02.1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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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5>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십니까.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인간은 이성에게 호소해서는 한계가 있으며 감성에 호소할 때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감성 지능 EQ'를 통해 “인생의 성공에 있어 IQ는 20퍼센트 내외의 영향을 미칠 뿐이며, 나머지 80퍼센트는 EQ의 영향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곧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제대로 된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이성이 밑바탕 되어야겠지만, 감성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힘들다는 얘기다. 의사와 환자의 만남에서 역시 그렇다. 논리적인 의학 정보를 다루는 의사일지라도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감성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료수가가 매우 낮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미국 의사들처럼 의사가 환자를 직접 일어나서 맞이하고 일일이 악수를 청하는 등 환자의 감성까지 어루만지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다. 어쩌면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의사의 진료 능력으로 평가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어떤 선생님은 환자를 진료실에서 빨리 내보내는 것도 의사의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긴 그렇다. 짧은 시간 동안 환자가 진료에 만족하고 좋은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설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진료를 잘 보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맞는 진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의료 수가가 높은 미국 의사를 표방하기 보다는 우리 현실에 맞춰 환자의 감성을 어루만질 수 있는 방법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진료 시 환자 이름을 불러주는 호명이다. 호명은 환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환자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의사가 환자 이름을 부르면 이후 30초 동안 환자가 의사에게 전적으로 집중한다고 한다. 그 만큼 환자 이름을 부르는 것은 환자를 존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누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친근하게 불러준다는 것은 어느 장소에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칭찬보다 더 큰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이 아닌 타 교과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수많은 학생들 중에 나의 이름을 특별히 기억해주시는 것은 직접적으로 “넌 공부를 잘하는구나”라고 칭찬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

또 우리가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에 갔을 때 수많은 고객들 중에 나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점원을 만나면 우리는 우리가 대우받고 있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아가 그 곳에 애정을 갖게 된다. 사람들이 욕쟁이 할머니한테 “이 놈아, 날씨도 추운데 밥 좀 더 쳐 먹어라”식으로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그 음식점에 애착을 갖는 것은 그 할머니가 우리를 기억해주고 아는 척 해주기 때문이리라. 듣기 민망한 그 욕조차도 본인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아무도 불만을 제기 하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의사 선생님들 교육을 위해 전국에 있는 수많은 병원을 방문하면서 진료를 잘 보는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환자 이름을 잘 불러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선생님들은 환자가 보호자와 동행했을 때도 혹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왔을 때도 반드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보호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그야말로 몸이 아픈 엄마를 생각 없이 따라 온 듯한) 다섯 살 남짓 유치원 아이에게까지 “공주님은 몇 살? 이름이 뭐에요?”식으로 인간적인 관심을 표하며 애정을 갖는 것을 보고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느낀 점이 많았다. 분명 환자 입장에서는 진료를 받으러 온 자신을 넘어 자신의 자녀나 남편, 어머니에게까지 인간적인 관심을 표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 더욱 호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상대와의 거리감을 좁혀주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환자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나는 의사요 당신은 환자가 아닌 `우리'라는 동반자의식을 심어주며 특별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기왕이면 환자의 이름을 부를 때는 환자의 이름과 직업, 인상, 체격 등 특정 이미지를 연결시켜 환자 이름을 기억해보자.) 그러나 환자가 너무 많아 환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이 힘들다면 본격적인 진료 중에는 `선생님'이나 `어머님' 혹은 `어르신'과 같은 적절한 호칭으로 바꿔 사용하더라도 진료 초반과 마지막 순간에는 (차트를 보고서라도) 환자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길 바란다. 가능하면 `OOO 님' `OOO 선생님'이라고 환자를 높여주는 호칭도 좋다. 사람은 누구나 대접받고 싶어 한다.

환자 이름 불러줄때 환자의 감성 자극·책임감도 함께 부여
`우리'라는 동반자 의식 갖게돼 친근감·신뢰 자연스레 높여
환자는 물론 가족까지 관심 가질땐 충성스런 환자 많아져


유명한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는 전용기차의 흑인 요리사에게 조차 늘 `미스터 코파'라는 정중한 호칭을 써주었다. 때문에 그 요리사는 자부심을 갖고 간단한 요리 하나를 만드는데도 온 정성을 기울였다. 곧 파데레프스키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람에게까지 호칭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음으로써 역으로 자신의 품격을 유지했던 것이다. 의사 역시도 환자를 “∼ 님”이라고 대접함으로써 환자 스스로에게 “∼님”에 부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의사에게 `선생님'으로 대접받은 환자는 정말 선생님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의사에게 아무 것도 모르는 그저 무식한 환자로 대접받은 환자는 정말 그렇게 행동한다. 신기하게도 환자들은 의사에게 평가 받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을 설득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소셜 레이블링(social Labeling) 기법이라고 한다. 사람을 레이블링 즉 평가해서 그에 부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쩌면 본격적인 진료 이전에 의사가 환자의 이름을 어떤 식으로 불러주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같은 환자라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필자가 잘 아는 내과 원장님은 몇 년 전 경기도 외곽에 병원을 개원 하시고는 늘 안타까움을 토로하신다. 동네가 수준이 낮아서 환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다고. 과거 봉직의로 근무했던 병원은 서울 강남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들 수준도 높았고 그래서 의사의 설명도 빨리 빨리 이해하고 말도 잘 들었는데 이 동네 환자들은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묻고 식이요법이나 운동에 대해 아무리 강조를 해도 의사 말을 전혀 안 듣는다는 것이다.

특히 예전 병원 환자들은 극소수의 환자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환자들이 매너가 좋았는데 지금 이 병원은 경우 없는 환자들이 많아 매일같이 환자들과 언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치료도 받지 않고 상담만 했는데 내가 왜 진료비를 내야 하는가?” 라고 의사의 진료에 대해서는 전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환자를 위하는 마음에 (정확한 진단을 위해) 혹시나 해서 추가 검사를 권유했는데 결과가 좋으면 그것을 다행스럽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멀쩡한 사람에게 왜 과잉진료를 하느냐?”고 의사를 도둑놈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 원장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고충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으나 필자는 이렇게 조언해 드렸다.

“원장님, 그 환자들은 논리보다 감성으로 접근하세요. 환자 마음을 잡으시면 과잉진료 얘기 절대 안 나옵니다” 그렇다. 오히려 그런 환자일수록 논리보다는 감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환자에게 `우리 선생님' `우리 동네 주치의'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의사-환자 관계가 좀 더 특별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시골 병원들이 서울 병원들보다 충성환자가 많은 것은 환자가 고마운 마음이 들만큼 의사가 환자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이라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모든 의사들은 환자와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우리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그 병원 원장' `그 병원 과장'이 아닌 `우리 선생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 그 환자는 우리병원 충성환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요즘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개인 미디어가 워낙 발달한 만큼 환자 한 명이 우리 병원 충성환자가 된다면 그것만큼 큰 병원 홍보효과도 없다. 그것은 결국 병원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의사가 그 모든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기억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젠가 아파트 상가 건물 코너에 위치한 작은 병원에서 시작해 대로변에 5층 건물을 지어 나가신 병원 원장님께 빠른 시간에 성공하신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선생님, 나는 초진 환자와 30분 이상을 이야기해요. 그래서 환자의 이름은 물론 환자 가족들 이름까지 잘 알고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 그게 바로 성공의 비결이었다. 생각해보라. 우리 딸, 아들 이름까지 알고 기억해주는 의사한테 어찌 환자가 애정과 충성심을 갖지 않겠는가. 의사와 환자의 신뢰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이번 한 주는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환자를 기억해주는 의사가 되어보면 어떨까. 환자를 대접할 때 의사 스스로가 진료 하는 것이 쉬워진다.

이혜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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