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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D 단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D 단조
  • 의사신문
  • 승인 2011.02.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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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31-2 〈템페스트〉아련한 환상과 냉혹한 현실의 조화

피아노 소나타 제17번 〈템페스트〉는 그의 `초기 피아노 소나타의 총 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번호 31번의 세 곡 중에서도 내용적으로 가장 특색이 강하고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곡 전체에 이상하리만치 긴박함과 어둡고 극적인 그림자가 깔려있고 그 악상도 대담하여 아련한 환상과 냉혹한 현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소나타의 제목이 〈템페스트〉가 된 배경은 베토벤의 제자 안톤 쉰들러가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한 힌트를 달라고 했을 때 베토벤이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라”라고 답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소나타의 내용과 `템페스트'와의 관련 여부에 대해 오랫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셰익스피어와 연관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제1악장은 밀라노 왕 프로스페로와 그 사자 아리엘의 마술적 환상이고, 제2악장은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와의 사랑이야기이며 마지막 악장은 마법으로 휘몰아 온 폭풍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학자 에릭 블롬은 “특이하게 전개되는 이 소나타에 대해 억지로 설명을 시도하면서 해설자들은 엉뚱하게도 안톤 쉰들러의 말에 너무 매달리고 있다”며 불만을 표하면서 표제적인 해석에 대해 경고를 하였다.

이렇듯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셰익스피어와의 연관성을 전적으로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증거는 여럿 보이고 있다. 가령 자주 나타나는 느린 아르페지오 테마에서는 템페스트의 아리엘이 가지고 다니는 에올리안 하프의 울림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소나타 〈템페스트〉에서도 베토벤의 새로운 것의 필요성, 고전에 대한 반항과 전통에 대한 탈피를 위한 방향전환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당시 고전주의 시대 소나타는 느린 서주가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템페스트〉는 느린 부분은 두 마디로 끝을 내고 곧바로 빠른 속도로 바뀌면서 듣는 이들의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가고 변화무쌍한 악상들이 전개된다. 이는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서 그가 소나타 형식을 바꾸어 놓은 이유는 그의 창조 의욕이 지금까지의 고전 소나타의 규칙에 명확한 방향전환을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곡을 완성할 당시의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하일리겐쉬타트에서 전지 요양을 하고 있을 때였고, 자살을 생각하면서 그 유명한 〈하일리겐쉬타트 유서〉를 쓸 무렵이었다. 이를 보면 당시 그의 정신적인 고뇌가 얼마나 컸으며 그 고뇌가 이 곡 속에 그대로 녹아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소나타의 특색은 제1악장에 있는데, 여기서는 극적인 긴박감과 늘어짐이 교묘한 대조를 이루도록 묘사가 되었다. 소나타 형식의 테두리 안에서 그때까지 없었던 그만의 독창적인 형식의 처리는 베토벤의 창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또한 이 곡의 세 개의 악장 모두가 소나타 형식이라는 점도 하나의 특색이라고 하겠다.

제1악장 Largo allegro 처음 몇 마디 안에 템포의 변화가 많으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가 잘 조화되어 있다. 대단한 기대감과 함께 거대한 선율이 낮은 음에서 높이 솟아올라 극적인 음악의 진행을 이룬다. 이러한 극적인 긴장감이 극적으로 폭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곡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극적인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제2악장 Adagio 넓은 음역에 걸쳐 테마가 아름답게 노래되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서정적인 악장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발전부를 거치면서 밝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로 전환된다. 제3악장 Allegretto 소나타 형식으로 격정 뒤에 오는 다소 이완된 기분이 서정적이고 감상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침울하기까지 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선율은 그 어느 것과 비할 바 없는 아름다운 서정이 느껴진다.

들을만한 음반 : 에밀 길레스(피아노)(DG, 1980); 빌헬름 박하우스(피아노)(Decca 1959); 빌헬름 캠프(DG, 1965); 아르투르 슈나벨(피아노)(EMI, 1932-7); 백건우(Decca, 2008)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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