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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단상
조선족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단상
  • 의사신문
  • 승인 2011.01.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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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리<한국여자의사회 공보이사>

김애리 공보이사
연일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이 계속되는 중에 필자는 옌지(延吉, 이하 연길)의 연변대학을 방문했다.

수년 전 우리 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임정화 교수가 검체은행을 개설하고자 교류를 시작한 것으로 우리 일행은 외과병리에 관한 강의와 검체은행의 소개, 검체은행의 업무에 관한 강의를 준비하여 인천공항을 떠났다.

연길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받은 연길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한글과 한자로 표기가 된 간판 때문인지 “낯설지 않다”와 “개발이 되고 있구나”였다.

서울보다도 더 낮은 수은주를 느끼기도 전에 임정화 교수가 준비한 차에 올라 연변대학병원과 새로 건축하여 갓 이사했다는 연변대학의학원(의과대학)을 방문하였다. 임 교수와 이(이주호) 교수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못내 안타까워하면서도 예정되어 있는 실험실, 부검실 연구실들을 세심히 설명하며 안내하였고 내일 있을 컨퍼런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우리 고려대학과 조선대학(이 교수는 조선대학교 학위)의 선생님들이 그들에게 베푼 친절을 분에 넘치도록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용정으로 가는 길의 윤동주의 생가, 일송정, 삼합, 북한 땅이 보이는 도문, 18㎞ 밖에 동해안이 보이는 러시아의 접경인 훈춘으로 영하 19도의 추위에 우리를 안내하며 대접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이웃에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외국인 근로자와 한국인과 가정을 이룬 외국인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편이다. 당연히 우리병원의 환자들도 외국인들이 꽤 있다. 병원 울타리를 벗어나 건널목이나 시장, 거리의 음식점의 풍경도 이국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사회에 적응하고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아마 20여 년 전 내가 남편의 유학 시절에 F-2 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하여 전업주부로서 생활했던 시절에 가졌던 문화적 충격이나 소외감이 그들의 어려움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때 내가 수퍼마켓에 가서 내 돈을 주고 물건을 구입해도 흑인 점원에게 조차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피해의식을 떠올렸다.

조선족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도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곤 했다. 한·중 수교 직후에는 조선족을 우리 국민보다도 더 우리 민족 문화를 유지하고 있고, 남북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부각시킨 반면, IMF 경제위기부터는 재외동포의 투자를 유치하고 가난한 재외동포가 한국에 정착할 것을 우려해서인지 조선족은 재외동포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중국 경제가 급부상하고 큰 시장으로 대두되자 한중 관계에서 조선족의 역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초청한 연변의학원 암연구소 병리학과 주임교수인 임 교수도 중국 미래에 촉망받는 100명의 과학인으로 뽑혀 중국 중앙 정부로부터 적지 않은 연구비를 지원 받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靑出於藍이란 말은 이런 때 사용해야하는 건지? 짧은 중국 첫 여행으로 거친 바람과 맹추위에 꿋꿋하게 민족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동료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끼며 벅찬 감정으로 인천공항 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그 벅찬 감정은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며 짐 수색을 당하면서 반감했다. 우리의 현실에서 조선족은 `노동력으로서의 조선족'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들과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자면 꾸준한 대화와 그들을 고용한 작업장에서 그들이 다른 환경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영토로 갔던 백제인들, 당나라에 갔던 신라인들, 어려운 생활로 만주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들과, 조선시대 후기 궁핍함과 부패의 횡포를 피해 만주로 이주한 우리 동포들이 중국인으로 흡수된 것과 같이 일제 강점기 만주로 갔던 조선족도 한족 중심의 중국인으로 흡수되고 있다. 우리의 민족성인지는 몰라도 중국에서도 조선족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소수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도 `우수민족'이며, 중국 주도의 세계화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에서 조선족 엘리트들의 역할이 절대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로 이주한 재외 동포와 마찬 가지로 조선족들도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 정체성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며, 우리사회도 민족정체성을 둘러싼 새로운 인식이 절실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력이든, 우리 고유문화를 계승하는 자이든, 중국의 촉망받는 미래의 인재이든, 한중 양국 매개자가 되든지 세계 어디에서든지 우리 민족이 인정받고 많이 활약하였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일 것이다.

이번 연길 방문으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역사니 민족이니 하는 것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우리사회가 경험하는 문화의 다양성과 차이들을 우리 주변, 혹은 우리 진료실을 찾는 조선족을 통하여 새로이 해야 함을 알게 된 것 같다.

김애리<한국여자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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