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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C#단조, 작품27-2 `월광'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C#단조, 작품27-2 `월광'
  • 의사신문
  • 승인 2011.01.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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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타의 새로운 방향 전환 제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작곡양식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중 어느 한 곡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세 곡은 `3대 소나타'라고 불리는 제8번과 제14번, 그리고 제23번이다. 이들에게는 각각 〈비창〉, 〈월광〉, 〈열정〉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이중 `월광'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죽고 난 뒤인 1832년, 시인이었던 렐슈타프가 이 곡의 1악장을 두고 `달빛에 물든 루체른 호반 위를 지나는 조각배를 떠오르게 한다'고 말한 데서 연유됐다. 피아니스트 빌헬름 캠프도 이 곡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제1악장에서 인상주의의 징조가 최초로 나타나 있다. 음악을 들으면 우리는 귀로 보고 눈으로 듣게 된다. 피아니시모의 셋잇단음이 속삭이고 있을 때 그 뒤로 창백한 빛이 여리고 그 깊숙한 어둠을 뚫고 슬픔에 찬 가락이 상승해 간다”

베토벤을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하는 근거는 평생동안 끊임없이 추구한 새로운 양식의 시도에 있다. 주제를 전개시키고 발전시키는 천재적인 솜씨, 피날레에 느닷없이 끼어드는 스케르초의 동기, 합창을 도입한 교향곡 등 그가 시도한 새로운 양식은 수도 없을 정도이다.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나타 `월광'도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에 속하며 첫 악장이 알레그로가 아닌 아다지오로 시작하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가 소나타 형식을 환상곡으로 바꿔 놓은 이유는 창조하려는 그의 의욕이 새로운 것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전에 대한 반항과 전통에 대한 탈피를 꿈꿨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것은 대담한 개혁은 아니지만 분명한 방향전환이었다.

음악학자 세이어는 소나타 `월광'의 제1악장은 베토벤이 조이메의 시 `기도하는 소녀'에 감격해 착안했다고 서술하였다. 이 시는 가련한 소녀가 병든 부친의 회복을 비는 마음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는 이 곡을 헌정한 줄리에타 귀차르디를 위한 것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줄리에타는 이탈리아 여자로 양친과 같이 빈으로 이사와 베토벤과 알게 되었으며, 이후 베토벤이 그녀에게 피아노를 지도해 줌으로서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이 친교는 2년간 계속 되었다.

베토벤은 사랑의 정열에 불타는 심정으로 스케치를 먼저 쓰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임에도 스케치도 없이 단숨에 이 곡을 써버렸다. 이 곡이 완성될 때쯤 백작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베토벤은 크게 실망했고 마침내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쓰게 된다.

△제1악장 Adagio sostenuto 템포가 활기찬 1악장과는 달리 꿈꾸는 듯이 느껴지는 나른한 선율이 지속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악장전체가 숨 막힐 것 같은 고요로 가득 차 있으며 선율은 마음이 시릴 정도로 감상적이다. 악장 전체를 통해 한 번도 감정의 기복이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제2악장 Allegretto 고요한 첫 악장과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끝악장 사이를 이어주는 간주곡 같은 악장으로 전원의 무곡으로서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맛이 감돈다. 리스트가 “2개의 깊은 못 사이에 핀 한 송이 꽃”이라 형용하듯이 선율이 우아하다. 평론가 마르크스는 이 부분을 줄리에타와의 `이별의 노래'라고 하였는데 미뉴에트가 끝나는 순간 바로 격렬하게 3악장으로 돌입한다.

△제3악장 Presto agitato 기존에 존재했던 어떤 음악보다도 격렬하고 열정적인 음악이다. 무겁게 떠도는 암흑 속에서 섬광을 일으키는 천둥과 번개처럼 격한 분위기가 힘차게 전개되어 당시 베토벤이 지니고 있던 청춘의 괴로움과 정열을 연상시킨다. 숨 막힐 듯한 긴박감이 고조되고 비극적인 느낌까지 준다. 1악장이 가지고 있던 팽팽한 긴장을 3악장에서 분노의 표출에 가까운 형태로 무너트리고 있는 것 같다.

■ 들을만한 음반 : 에밀 길레스(피아노)(DG, 1980); 빌헬름 박하우스(피아노)(Decca 1959);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RCA, 1960); 빌헬름 캠프(DG, 1965); 루돌프 제르킨(CBS, 1962); 백건우(Decca, 2008)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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