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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현악사중주〈라주모프스키〉작품번호 59, 제1∼3번
베토벤 현악사중주〈라주모프스키〉작품번호 59, 제1∼3번
  • 의사신문
  • 승인 2011.01.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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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의 강렬함…현악사중주의 혁명

현악사중주를 비롯한 실내악은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베토벤 창작 일생의 중심이었다. 베토벤을 통해 현악사중주는 당시 귀족의 전유물처럼 취급된 오락음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순수한 `음에 의한 절대음악의 세계'로 인도한다. 듣는 이로 하여금 과장이 없는 음악 그 자체의 세계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의 초기, 중기, 후기 이렇게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현악사중주곡들은 베토벤 양식 특유의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베토벤의 내면적 사유와 성찰을 음악을 통해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빈 주재 러시아 대사인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의뢰로 베토벤은 작품번호 18인 제1∼6번 현악사중주를 쓴 이후 6년만인 1805년 말부터 다음 해에 걸쳐서 제7번부터 제9번까지의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한다. 소위 〈라주모프스키 사중주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 59이다. 이 세 곡에는 베토벤 중기의 원숙한 작법이 밀도 있게 집약되어 있는 동시에 이 세 곡으로 현악사중주곡이라는 새 음악 양식을 확립하게 된다. 이 세 곡은 그의 후기 사중주곡들과 함께 불후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라주모프스키는 베토벤의 친구 리하노프시키 백작과 의형제지간으로 그의 부탁을 받고 라주모프스키에게 헌정하여 이같이 불리게 되었다. 당시 라주모프스키는 비엔나 주재 러시아 대사로 집에 현악사중주단을 둘 정도였으며 그 자신이 그 사중주단의 제2바이올린을 맡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였다. 그는 베토벤에게 러시아 민요를 소재로 세 곡의 현악사중주곡을 부탁하였으나 베토벤은 전 악장에 러시아 테마를 사용한 것은 아니고 작품번호 59 제1번의 마지막 악장과 제2번의 3악장에서 무소르크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가극에도 나오는 테마를 넣게 된다. 제3번에서는 민요에 의한 테마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러시아풍의 연주가 되도록 작곡하였다. 이들은 시종 빠른 움직임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과 약동하는 박력을 보이고 있어서 마치 교향곡을 듣는 듯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 세 곡은 일명 `러시아 사중주'라 불리기도 한다.

이 곡들은 사중주라는 매체에서 작곡가의 특징적인 표현방식이 나타난 최초의 것들이다. 이 양식은 새로운 것이어서 연주자들에게 빨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연주자들이 제1번 사중주곡을 처음 연주하였을 때 그들은 베토벤이 그들에게 농담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작곡가 클레멘티는 자신이 베토벤에게 “확실히 당신도 이 작품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는 않겠지요?”라고 묻자 베토벤은 평소와 다른 자제하는 모습으로 “오, 그 곡들은 당신을 위해 쓴 것이 아니요. 후대를 위한 거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음악가들이나 청중들이 베토벤의 이러한 악상의 혁신이 고전주의 시대의 정연하고 균형잡힌 어법과 형식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으로 완전히 개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베토벤의 중기와 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사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에서 더욱 급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베토벤의 이러한 음악적 혁명은 후대 음악의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석과 같은 것이다.

어느 음악전문지에서 평하기를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는 마치 새로운 지평에 펼쳐진 예술세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마치 카프만의 호머를 처음 읽을 때와도 같은 혹은 아테네나 베니스에 처음 방문하거나 연인과의 첫 키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세부 묘사의 풍부함과 독창성, 풍요로운 악상, 요소들 사이의 강한 응결력, 밀도와 복잡함과 더불어 부드러움의 극치… 한마디로 숨 막힐 듯한 경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1800년대의 현악사중주 연주자들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59를 처음 접하면서 받은 충격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예전까지는 한 번도 이러한 현악사중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 들을만한 음반 : 부다페스트 사중주단(CBS, 1960); 알반베르크 사중주단(EMI, 1979); 스메타나 사중주단(Denon, 1979); 부슈 사중주단(EMI, 1933); 바릴리 사중주단(Westminster, 1952)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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