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년특집호 기념수필 - 동행(同行)
2011년 신년특집호 기념수필 - 동행(同行)
  • 의사신문
  • 승인 2011.01.0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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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닌 둘…일도 행복과 여유로 바뀌어

맹광호 명예교수
대학을 정년퇴직한지 3년째인 요즘도 나는 매달 한 두 차례 지방 강의를 다닌다. 지방에 있는 대학이나 기업체 연수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민대학 등으로부터의 요청에 의한 강의를 위해서다.

아무래도 이제는 거리나 시간 형편에 따라 횟수나 장소를 조절해 가며 강의부탁을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때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어제 저녁 `가평 꽃동네'에서의 강의가 바로 그런 종류에 속한다. 그곳에 가서 일주일간 봉사활동을 하는 우리대학 수련의(修鍊醫)들을 대상으로 저녁 일과가 끝난 다음 두 시간동안 하는 의료윤리에 관한 강의였는데, 그곳엘 다녀오자면 운전만 네 시간 이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승낙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렵게 부탁하는 담당자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승낙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다음다음 주까지 연거푸 세 번을 해 주기로 했다. 가평까지 가서 그곳에 봉사 나와 있는 젊은 의사들에게 강의를 한다는 것이 마치 숙제하느라 정신없는 아이들 뒤를 음식을 들고 쫓아다니며 먹이려는 엄마 같은 모양세지만, 평생 의대생들을 가르쳐 온 내 입장에서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한 이 일은 피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나를 아내가 동행해 주겠다며 나섰다. 이번에는 저녁 시간이어서 함께 가야 볼 것도 없으니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렸지만 아내는 오히려 그래서 더 함께 가야한다고 우기며 따라 나섰다. 밤길에 혼자 갔다 올 일이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요즘 지방강의를 갈 때마다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혼자 먼 길을 다니는 나를 위한 아내의 배려로 그렇게 결정한 일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이 결정을 참 잘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우선 나 혼자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가고 오는 일이 하나의 `일'이더니 아내와 함께 자동차로 다니면서부터는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나들이'어서 좋다. 차 안에서 아내가 깎아주는 과일이며 집에서 미리 끓여 온 커피를 함께 마시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지금껏 여행 자체를 목적으로 두 사람이 며칠씩 놀러 다녀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정확히 그런 여행과 비교해서 말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나로서는 이런 동행으로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아마 그냥 놀러 가자고만 했으면 그렇게 자주 따라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강의를 하는 동안 아내도 하는 일이 많다. 차 안에서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무엇보다 시골시장을 돌며 서울에서는 구하기 힘든 품질 좋은 농산물이나 해물을 사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혹시 내가 강의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오히려 너무 시간이 짧아 제대로 구경도 못했다고 답할 때가 많다. 내가 덜 미안하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때때로 강의가 끝난 다음 나를 초청해 준 측의 안내로 그 지방 명승지를 공짜로 구경하는 일은 지방출장 강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재미이기도 하다.

어제 저녁 꽃동네에서 내가 수련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내 제자 중 한 사람이고, 마침 친정 남동생과 대학 동창이면서 그곳 병원 원장이기도 한 S 수사(修士)를 만나 퍽 유익한 시간을 가진듯하다. 무엇보다 그의 안내를 받아 무의탁 환자들이 입원한 병실이며 임종을 앞둔 중환자실 환자들을 돌아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S수사는 우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 전문의사가 된 다음 꽃동네로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고 이후 음성과 가평 꽃동네에서 수천 명이나 되는 무의탁 노인들과 정신지체장애인들을 돌보며 살고 있는 의사수사다. 언젠가 자신을 꽃동네로 인도하신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큰 감동을 느꼈던 적이 있다. 하느님과 최상의 `동행'을 하는 그의 삶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밤 9시. 강의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자 사방이 온통 칠흑이었다. 수십만 평 산자락 이곳저곳에 세워진 요양원이며 봉사자 숙소건물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한결 정겹게 느껴졌다.
꽃동네 정문을 나와 차창을 내리자 다소 쌀쌀하기는 해도 향긋한 시골 공기가 차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심호흡을 하니 폐 속에 깊이 남아있던 도시의 오염된 공기가 모두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듯 했다. 몸과 마음이 더 없이 상쾌했다.

꽃동네를 한참 벗어나 한적한 경춘가도를 달려오는 동안, 수녀님이 넣어주신, 꽃동네 가족들이 뒷산에서 직접 소출했다는 배를 깎아 먹으며 나는 이번 강의 길에 동행 해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맹광호<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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