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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올라야 하나 갈등 넘어 “무조건 올라야 한다”
왜 올라야 하나 갈등 넘어 “무조건 올라야 한다”
  • 의사신문
  • 승인 2010.12.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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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성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13>-2〉

우후루피크 등정중 빙하지대를 지나면서
만다라에서 호롬보 산장까지 약 5시간 소요됐다. 조식은 산장에서 오트밀과 계란후라이, 샌드위치가 주이고 한국인을 위해 끓인 쌀밥을 특별히 공급했다. 비록 죽밥이지만 쌀로 만든 밥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거기에 준비한 김치, 고추장, 장아찌, 김 등 한국 부식과 먹을 수 있다니 이 또한 호강이다. 운행 중 중식은 도시락이며, 닭고기와 삶은 계란, 샌드위치 등이 준비되어 검은 비닐 주머니를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호롬보 숙소는 식당 산장에서 계단을 이용한 2층 단체실, 1층 침대와 2층 침대가 병렬로 배열된 산장을 이용했다. 밤의 노하우가 생기니 눈치 있는 분은 빈 페트병을 구해서 잠자리 옆에 놓아두는 노련미가 나왔다. 이 재치로 인해서인지 야간에 작은 일을 바깥에서 해결하려는 동료의 수가 많이 줄었다. 다음 장기산행 땐 서부영화에서 위스키 넣고 다니는 `가죽주머니 요강'도 필수장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데 오늘 직장에서 야간의 펫트병 불편을 해결한 입구가 적당히 넓은 고무비닐 핫백을 발견했고, 또 다른 핫백의 다용도를 생각하며 혼자서 웃었다.

 *키보산장(3박) 4703m
산장을 출발하여 급경사를 올라 하얀 에베레팅꽃(영혼의 꽃)이 군생하고 있는 습지대를 가로지르면 최후의 샘터인 Last water point를 만났다. 이곳부터 점차 길은 사막화되어 식물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으며 붉은색의 흙과 바위만이 보이고, 이 지점에서부터 보통사람들이 고도적응 한계를 넘어 보행이 느슨해지고 두통과 구토증이 수반되는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롬보에서 키보까지는 약 6시간 소요됐다. 키보에 도착하면 휴식 후 오늘밤 12시경의 등반을 염두에 두고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대원들은 초저녁부터 침낭에 나란히 누어서 대략 6시경 잠을 청했다. 그러나 고소증의 영향으로 깊이 잠들을 이루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삐익, 삐∼이∼익, 이런 원수 놈의 산장문은 무슨 억하심정으로 왜 그리 악을 쓰며 울어대는지∼∼∼ 삐걱거리는 문을 원망하면서도 대원들 모두가 동료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기침소리도 내지 아니하고 숨을 죽이고 휴면상태에 있었다. 고산증을 막으려면 물도 많이 먹은 탓도 있지만 키보산장에서도 왜 그리 소변이 자주마려운지?

 *길만스 포인트 5686m
밤 11시에 모두가 기상하여, 식당 산장에 들러 물을 수통에 채우고 간단한 식사들을 했다. 한 밤중이어서 음식 생각이 전혀 없었다. 1리터 물통에 더운물만 챙기고 금식을 한 상태로 출발대열에 끼어 심야 12시 점호에 이어 곧바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등반대원 누구나 비장하며, 설렘과 긴장감이 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추석날이었다.

급경사의 화산재와 모레 자갈길 급사면을 지그재그로 급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약 5∼6시간 급경사코스는 킬리등산의 하이라이트였다. 1조, 2조, 3조 줄을 지어 올라가는데 앞에서 선창하는 구호와 일련번호는 후미인 제일 끝인 나까지 연창해야했다.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만큼이나 랜턴 불빛이 꼬리를 물고 이어가는 형상이었다. 급경사를 굽이굽이 구간별로 오르다보면, 되돌아가는 분, 잠깐 쉬면서 졸다가 뒤로 처지신 분들이 생겼다.

오르는 길은 갈지자로 만들어 져서 헤드랜턴 불빛을 의존하여 산행하고 있지만 화산재 비탈경사가 워낙 급했다. 사방이 캄캄하여 한스마이어 동굴이 있다는데 볼 수도 없었다. 매우 경사가 쎄니 고개를 숙이고 구간 구간을 끊어 올라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끊어 올라가길 수 십번, 계속 반복하다보니 마지막 피크 근처에서는 대원들의 줄도 파괴되고 선두 그룹과 뒤섞이게 되었다. 마지막 피크를 올라챈 곳이 바로 정상분화구. 한편 가장자리인 길만스포인트(5685m)다. 대원들과 대화하며 한숨 돌리는 그 순간에 뒤를 돌아보니 해가 떠올랐다. 기가 막힌 타임이었다. 검은 마웬지봉 뒤쪽으로 검은띠 구름선상에 샛 노랑의 해가 주변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른다. 장관이었다.


호롬보서 키보산장으로 올라가며 고산증세 나타나기 시작해
어둠 뚫고 천천히 오르다보니 길만스포인트서 일출 맞는 기쁨
순간 왜 올라가야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우후르피크 향해 `전진'



길만포인트에서 선두그룹을 만나서 후미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쉬었다. 쉬는 동안 강인구 대원이 우리의 목표인 왼쪽으로 화산분화구 외연을 따라 완만한 등선으로 연결된, 현 위치보다 훨씬 더 높아 보이지 않은 산언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순간 “왜? 내가 저기를 올라가야하지?” “여기서 쉬면서 감상하고 내려가면 안 되는가?” 나도 모르게 더 이상 등반하기를 주저하는 내심의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와 버렸다.

길만포인트를 지나 분화구 주변 화산재 언덕에서 휴식 중
한데, 강인구 대원의 대답은 “죽어도 저기를 무조건 올라가야 합니다”고 말했다. 사실 킬리산 우후루 피크에 오르기 위해 그 먼데서 계획을 하고 왔는데, `무조건 올라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했다. 곧 서윤석 강인구 이관우 대원과 분화구 주변 환산재로 형성된 언덕을 따라 다시 출발했다.

이때 내 머리에서 `난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효성∼∼!! 넌 아직 체력도 남아 있으면서… 왜? 후배에게 아무 생각도 없이 바보 같은 소릴 했지? 당연히 올라가야 할 우흐르 피크를 향해 출발하면서… 나도 몰래 쓴 웃음이 났다.

 *정상 자유봉(Uhuru Peak)5895m에서
왼편의 분화구 가장자리를 따라 약 2시간가량은 완만한 경사를 오르고 내려가길 반복하다 보니 힘들지는 않는 코스지만, 고소증으로 인하여 온 전신이 피로했다. 좌측의 빙하를 보면서 빙하와 평행선으로 계속 산행했다. 계속 오르는 화산재 가장자리 등반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빙하가 펼쳐지고, 이를 보며 한 없이 계속 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정상지점이 상당히 멀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앞선 시니어 일행이 전방의 나무구조물 밑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기네∼∼!! 강인구, 이관우대원은 나와 동시에 정상에 도착했다. CONGULATIONATION! HIGHEST'S POINT WORLD'S HIGHTST FREE-STANDING MOUNTAIN 5895m 란 표식이 나무 목재로 네모진 구조로 만들어 열어놓은 대문 틀처럼 서있었다. 다 올라왔구나∼∼!! `축하합니다'는 표식이 매우 반가웠지만, 이 현재 표식대는 곧 교체될 것이라고 가이드는 귀뜸을 했다.

길만포인트에서 만난 일행들 중 서윤석 고문, 이민전 선배, 이용배 부대장과 같이 보조를 맞춘 이관우 회장 강인구 대원이 함께 만났다. 우리는 사진으로 정상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즐거운 표정으로 증명했다.

등산은 자기 극복의 역사라는 표현처럼 우리 일행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독립봉인 킬리만자로에 올랐다. 키보에서 정상까지는 7∼8시간, 등산 후 정상에서 호롬보까지는 5시간이 걸린다지만, 하산은 우선 키보산장까지 내려가는게 1차 목표였다.



정효성<광주 북구보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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