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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모든 게 다 잘될거야 문제 없어
“하쿠나 마타타”…모든 게 다 잘될거야 문제 없어
  • 의사신문
  • 승인 2010.12.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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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성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13>-1〉

킬리만자로 산행 출국 전 등반대원들과 기념사진
 뽈레 뽈레 뽈레
 아프리카에서 스와힐리어 언어인 `뽈레'는 `천천히'라는 뜻이다.

이 언어는 고산인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려면 `무조건 천천히 오르라'는 의미로, 우리 담당 가이드는 키보산장에서 정상을 향하는 심야의 헤드랜턴의 불빛 밑에서도 `뽈레 뽈레'라고 연발한다.

요즈음 서울, 지방할 것 없이 등산 붐이 일어서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가면 명산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줄을 선다. 우린 북한산, 설악산 주요 등산로에서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들로 꽉 막히는 산행을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언제나 `빨리 빨리'가 몸에 베인 한국인들에게 이런 인간 띠 정체산행은 매우 짜증스런 일이다. 그러나 3천 미터 이상의 고산 등정에서는 사람들로 막히는 산행은 없더라도 고소증을 피하려면 조급증의 산행은 절대 금물이다. 그동안 서울시의사산악회는 수차례 해외등반을 했었다. 필자는 서울시의사산악회 해외등반에 처음 참여한, 킬리만자로 9박10일 여정을 정리한다.
 
■ 등반준비

2009년 여름에 한국산재의료원 이사장을 마치면서 사보 작가와의 인터뷰를 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학창부터 킬리만자로에 가고 싶었다'는 대담내용이 `이사장 킬리만자로에 간다'는 제목으로 사보에 게재 되어, 2300여명의 산재의료원 가족과 본의 아닌 약속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 동안에 혜초여행사에서 기획하는 킬리등반에 동참하려는 시도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두 차례 무산된바 있다. 이번 기회도 부킹문제로 서울시의사산악회 예비명단에서 기다려야 했고, 만약의 기회무산에 대비하여 트레킹 여행사에 예비부킹도 해 놓았다.

그렇더라도 의사동료들과의 등반을 더 희망했고, 먼저 국립의료원에서 황열 예방주사 등, 이재일 의사산악회장의 강력한 동참권유에 따르기로 했다.

우린 탑승 여가시간을 이용해 홍콩에서 궤도열차로 높은 곳에 올라가 시가 전경을 구경하고 스타의 거리 관광 후 킬리를 향하여 나이로비행 케나항공에 올랐다.
 
■ 마랑구루트 등반 4박5일

 *마랑구게이트 1980m

마랑구게이트에서 개인의 등산백과 카고백을 점검하는 동안 팀에 등산가이드와 포터들이 배정됐다. 등반객 1인당 1명의 포터가 고용되고, 1개 단체에 안내원 1명을 고용할 의무가 있으며, 게이트에서 등산객의 등산비용을 지불했다.

이번여정에서 나의 첫 번째 악재가 생겼다. 밤색 마이크로 버스에서 만지작거렸던 카메라가 주머니에서 버스시트에 흘린 것을 뒤늦게 알고 곧바로 버스에 되돌아가니 버스는 방금 모쉬 시내로 출발했다. 포터에게 이야기하니 전화 연결하여 만다라 산장으로 가져온다고 했다. 그러나 호롬보산장에 온 매니저는 카메라가 차속에 없다고 했다. 카메라 주변기는 내 배낭에 모두 있어 그 카메라를 가져간들 온전하게 쓸 수 없을 터인데… 카메라 보다는 그 속에 담긴 홍콩사진들이 아까웠다.


산재의료원 이사장 시절 약속했던 킬리만자로 등정 현실로
싸늘한 밤 바라본 투명한 하늘엔 오리온좌가 선명하게 보여
만다라산장서 천정에 얼굴 부딛혀 다쳤지만 산행 강행 결심



마랑구게이트부터 4박 5일의 일정으로 하루에 1000m 간격의 높이로 3개의 산장을 향하여 고도를 올리는 본격적인 산행은 현지인들의 안내를 받는데, 주로 세 마디의 현지어가 통용됐다. 잠보(Hello, 안녕)와 뽈레 뽈레(천천히), 그리고 하쿠나마타타(걱정하지마, 다 잘 될거야, 문제없어, 괜찮아)다. 특히 뽈레는 동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말로 `달팽이 속도로 천천히 걸으라'며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걷는다는 의미다.

만다라산장서 등반대원들과 저녁식사 모습
완만한 등산로인 비탈길을 따라 울창한 정글지대를 지나 4∼5시간 지나 급경사를 오르면 갑자기 전망이 트이는 만다라 산장에 도달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이미 어두운 밤이 되어 헤드랜턴이 동원됐다.

*만다라산장(1박)2700m

만다라 산장에 배정된 우리의 숙소는 15명의 단체실이었다.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시설이 되어 있고 산장의 공간은 비교적 좁았다. 여러 삼각형의 산장 중에 우리의 산장은 4∼5칸으로 나뉜 마주본 1, 2층 침대에서 젊은 그룹이 2층, 시니어 그룹이 1층에서 짐을 풀었다. 그런데 단체로 잠을 잘 때는 나는 항상 그 놈의 코골이가 언제나 걱정이었다. 그래서 병원장, 이사장 시절엔 혼자 쓰는 방에 배정되는 혜택(?)으로 큰 부담이 없었는데… 집행부가 부킹이 안되어 애를 태운 마랑구루트의 산장이라서 비좁은 이 만다라산장도 얼마나 고마운데… 코파로 인하여 비코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안면을 까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비좁은 산장도 1500g의 침낭 덕분에 영하로 내려간 바깥공기에 상관없이 모두들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포근한 잠을 잤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고산이어선지 물을 많이 먹은 이유에선지 잠자는 야간에도 소변이 자주 마려운 것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따뜻한 침낭을 나와 동료의 수면방해 때문에 캄캄한 어둠에서 옷을 찾아 입고 숙소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싸늘한 밤바람에 적당한 자리를 골라 실례를 하는데, 총명한 킬리만자로의 하늘에는 한국에서의 겨울철 별자리인 삼태성의 오리온좌가 선명하게 떠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젊은 포터들이 산장 입구 주위에 더운물을 가져와서 플라스틱 바가지에 세수물을 준비해 주었다.

이번 산행 두 번째 악재는 얼굴에 평생의 킬리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었다.

단체별로 순서에 따라 아침 식사를 하는데, 우리 차례에 죽 쌀밥을 준비한 부식과 함께 먹은 후 일어서서 옆걸음으로 좁은 식탁과 의자사이를 걷는데 갑자기 우측 발이 푹 꺼졌다. 얼른 발을 옮기려는데 우측발이 걸려 중심을 잃었다. 넘어지면 자연히 우측 손을 집으려는데 아뿔사 천정에 튀어나온 모서리에 여지없이 얼굴을 부딪쳐 우측 눈 가장자리에 불이 번쩍했다. 평생 처음 다친 얼굴이지만 눈은 괜찮은 것 같은데 다친 상처가 깊은 느낌이었다. 수건으로 얼른 눌렸는데도 피가 상의에 계속 떨어졌다. 수건을 겹으로 대면서 이민전, 이관우, 강인구 대원이 숙소로 나를 안내했다.

우선 강인구 대원이 준비한 소독된 거즈를 대자, 이관우 대원이 잘붙는 신형 탄력붕대로 감아주었다. 내심 걱정이지만 어떻게 온 킬리인데 서울까지 심한 염증만 생기지 않게 조치를 한다면…? 그대로 산행은 강행하는 것, 배낭을 지고서 무조건 일행에 합류였다.

*홀롬보산장(2박, 4박)3720m

다시 정글속의 급경사 길을 약30분정도 걸으면 초원지대에 이르며, 완만한 산등성을 넘어 계속 오르다 보면 전망이 트이면서 선인장 같은 모습을 한 시네시오와 로벨리아 너머로 마웬지봉이 보이고 왼편쪽으로 정상이 보였다. 완만한 비탈길을 몇 차례 오르다 보니 호롬보산장에 이르렀다.



정효성<광주 북구보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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