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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하이든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
요제프 하이든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
  • 의사신문
  • 승인 2010.12.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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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음성 같은 '사랑과 평온'

이 곡은 하이든의 위대한 역량을 보여주는 걸작 가운데 하나지만 연주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이 곡은 세 개의 판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이든은 맨 처음에 이것을 관현악곡으로 작곡했고, 곧이어 현악 4중주를 위해 편곡했으며 9년 후에는 오라토리오 판으로 확대했다. 두 번째 이유는 도입부와 일곱 개 말씀이 모두 느린 소나타 악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곡을 알지 못하는 청중은 마지막 `지진'에 이르기까지 지루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라토리오 판을 출판할 때 자신의 전기 작가였던 그리징거에게 하이든은 모든 악장이 느리게 작곡된 데 대해 다음과 같이 서문을 적게 했다.

“15년 전에 카디스의 대성당으로부터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마디에 붙일 기악곡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매년 사순절마다 쓸 오라토리오를 만드는 것은 카디스 대성당의 전통이었다. 성당의 분위기는 공연의 효과를 적지 않게 강화했다. 벽과 창, 기둥에는 모두 검은 천을 드리웠다. 지붕 가운데에서 내려온 커다란 등불만이 엄숙한 어두움을 밝히고 있었다. 한낮이었는데, 모든 문이 닫히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짧은 의식 뒤에 주교가 설교대에 올라 일곱 말씀 가운데 첫 번째 말씀을 읽고 강론을 했다. 말씀이 끝나고 그는 설교대를 내려와 제단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에 음악이 연주되었다. 주교는 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말씀을, 이어 세 번째 말씀을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각각의 강론이 끝날 때마다 오케스트라가 뒤를 이었다. 작품은 이런 상황에서 연주되었다. 각각이 10분 안쪽인 일곱 개의 아다지오를 쓰면서 청중을 지치지 않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할당된 시간에 내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관현악 버전으로 작곡된 이 작품은 1787년 비엔나와 성 금요일 카디스의 산타 쿠에바 동굴 교회와 대성당에서 가진 초연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둔다. 이후 바로 현악4중주 버전으로 편곡된다. 또한 9년 뒤에는 영국으로 가는 길에 파사우에 들렸다가 그곳 교회 악장인 요제프 프리베르트가 이 곡에 가사를 입혀 편곡한 것을 듣게 된 하이든은 더 나은 곡을 쓰기로 하고 다섯 번째 말씀을 제외한 나머지 말씀 앞에 아카펠라의 단선율 성가를 넣고, 네 번째 말씀이 끝나고 다섯 번째 말씀이 시작하기 전에는 관악만을 위한 단조로 된 간주곡을 넣어 오라토리오 버전을 완성하게 된다.

서주. Maestoso e adagio 제1곡.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Largo. 제2곡.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Grave e Cantabile 제3곡.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Grave 제4곡.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Largo 제5곡. 목이 마르다. Adagio 제6곡. 다 이루었다. Lento 제7곡.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Largo 지진. Presto e con tuta la forcha `지진'은 마태오복음에 따랐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 예수를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여러 다른 일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말하길 `참으로 이 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이든이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에 담고자 한 내용은 한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 절망, 슬픔, 용서와 사랑, 평온이었다. 그 울림이 교회당 안에 있는 사람을 넘어 밖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잔잔하게 밀려들기를 바란 것이다. 어쩌면 악기 간의 유기적인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음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가사가 군더더기로 들릴 수 있어 오라토리오보다 관현악이나 현악 4중주가 더 호소력 짙게 들릴 수도 있다.
 

■들을만한 음반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지휘), 빈 콘센투스 뮤지쿠스, 쇤베르그 합창단(Teldec, 1990); 쿠이겐 사중주단(Denon, 1998); 조르디 사발(지휘), 르 콘세르 드 마시오(Aliavox, 2008)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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