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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와 킬리만자로…이젠 소중한 추억으로”
“케냐와 킬리만자로…이젠 소중한 추억으로”
  • 의사신문
  • 승인 2010.12.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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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석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11>

킬리만자로산을 배경으로 신동엽, 본인, 대구 강인구, 광주 정효성 선생님과 함께〈사진 좌측부터〉
아프리카, 아프리카

작년부터 합류하기로 한 킬리만자로 산행이 우여곡절 끝에 진행되었다.

얼마전 여름휴가로 갔었던 일본 남알프스산행 전에 문제가 된 허리통증으로 허리에 복대를 한 상태로 등산을 했었다. 정상 주변에서 입술 청색증과 쉬어도 풀리지 않는 피로감으로 엄청 고생한 산행을 생각하면 근신해야겠지만, 이번 산행 준비에 운영진에서 준비한 노력을 보면 빠지기도 쉽지않다. 가야지….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고산산행 준비는 미비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산행경력을 믿기로 했다, 경험상 4200m쯤에선 항상 고산증 증세인 두통으로 고생한터라, 이번 산행에서도 마지막 숙박지인 4800m까지 일행에 민폐없이 도달하면 성공한 산행이라 생각하고 편한 마음을 가지기로했다. 일치감치 마음을 정하니 산행에 부담이 적어 몸이 가볍다.

가는길에 거치는 홍콩에서 반나절 관광하자니, 벌써 21년전에 지인 3명이 홍콩에서 만나 한잔하고 이층버스 맨앞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이국적인 분위기에 한층 고조되었던 젊은 시절이 스쳐간다. 그 동안 참 세월이 많이 지났구나.

내 평생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케냐공항에 발을 디디니 감회가 깊다. 어린시절 만화에서 본 `항아리에 사람을 넣고 불을 때는' 그림이 기억나는 아프리카에, 같은 직종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위스키와 맥주로 목을 적시고 있으니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면세점에 널린 남아프리카 공화국산 와인은 가격도 적당하고,맛도 좋아 종류별로 다 맛보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아까운 눈빛만 남길 뿐이다.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하여 산행 기점 도시인 모쉬로 가는 중에 차창으로 보이는 경치가 아프리카라는 사실에 실감이 난다.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산행 시작이다. 울창한 열대림을 걸으며 준비해간 조그만 MP3로 그동안 배운 판소리를 혼자 떠들며 되내이고, 가야금과 대금 연주도 감상하며 걷노라니 가이드인 아프리카 젊은이도 조용한 음악이 마음에 편하게 들린단다. 나를 보호해주고 안내하던 젊은이에게 춘향가를 한 곡 들려주고 줄거리를 설명하고, 한 곡 불러보라고 했더니 탄자니아 국가를 부른다.

신체도 건강하고 영어도 유창한 이들 젊은이들이 낮은 보수를 받는걸 보고, 이렇게 여행할 수 있는 우리의 국력에 새삼 감사할 뿐이다.

가는 길에 한국에서 온 팀이 몇 팀이 있어 유심히 봤더니 모교 고등학교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분이 있어 알아보니 고교 동문 2명을 만나게 되었다. 더 없이 반가웠다.


여름 일본 남알프스 산행의 피로 쌓였지만 산행 합류 결심
키보산장 도착 후 밤 12시 고산증세 악화로 결국 하산하게돼
`욕심 버리자' 미리 각오했던터라 정상 밟지못한 서운함 덜해
귀국 비행기 취소돼 반나절 더 묶으며 나이로비의 정취 느껴


마지막 4800m에 위치한 키보산장에 도착 휴식 후 잠을 청하였다. 밤 12시에 일어나 정상을 공략 중에 왼쪽 가슴에 무겁고 둔한 느낌이 온다, 여기까지만 올라가라는 몸의 신호로 알고 미련 없이 하산하였다. 욕심을 버리자. 미리 각오했던 터라 정상을 밟지 못한 서운함이 덜하다.

만다라산장(2700m)에서 호롬보산장(3720m)으로 오르면서
아름다운 킬리만자로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몇일만에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상쾌한 목욕을 하였다. 식사 후에 모인 파티에서, 밤새 놀것 같던 마음도 폭탄주 몇 잔에 사그러 들고 잠이 쏟아 졌다. 새벽 3시30분경에 눈이 떠져 정원으로 나갔다. 때는 추석이라 여기도 둥근 달이 어둠을 밝히고 수많은 별들이 별밭인양 반짝이며 별똥별로 사라진다.

어느집 닭 한 마리의 선창으로 동네 닭들이 합창하는 분위기가 먼 옛날 어린시절로 나를 잠깐 이끌어간다. 아 ! 정말 잘 왔다. 이렇게 편하게 자고, 먹고,이야기하고 지낼수 있다니….

이렇게 건강하게 낳아주신 돌아 가신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다.

아침 7시경에 주변을 2시간정도 마라톤을 하기로 했다. 출근길이라 지나가는 차들의 매연이 신경쓰였다. 가는 길에 초등학교에 들러 교장선생님의 허락하에 운동장에서 하는 아침 조회 모임도 관람하였다. 상급반 학생 2명이 교문앞을 지키며 지각생을 통제하는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솟는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도 자주 걸렸었는데… 후후후.

`킬리만자로의 눈'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여기 호텔 주변에서 촬영했는지 마치 이곳이 그 장면 같아 보인다. 다만 눈덮힌 킬리만자로산의 자태에서 눈이 많이 녹아 내린 것만이 다를뿐이다. 환경변화로 앞으로 수십년만에 현재 남은 눈마저 없어 진다고 하니 오늘 내 일생에 마지막 눈이 될지도 모른다.

모쉬에서 시장통에 들러 현지인처럼 과일도 사서 깍아먹고, 좌판에 널린 양고기를 구어 술도 한잔 들고 이제 고국에 갈일만 남아 흐뭇하다. 킬리만자로 공항을 출발하여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하였는데 이게 웬일인가? 홍콩가는 비행기가 취소 되었단다. 그것도 우리 일행을 두 팀으로 나뉘어 내일 아침, 저녁으로 여정이 조정되었단다.

본의 아니게 우리 일행 모두가 남게 되어 케냐 나이로비에 머물게 되었다.

새벽 1시경 공항에서 제공한 버스로 호텔에 가는 길은 거의 파혜쳐 있고 주위는 암흑이다. 중국의 자본으로 나이로비 시내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이 아프리카에도 중국의 힘이 밀고 들어올 판이다. 한국은 탄자니아에 집중 투자 하였으면 좋겠다. 이곳까지 직항이 생길테니 아프리카에 오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늦은 뷔페식을 먹고 배정된 독방에 들어서니 방문은 열려있고, 넓고 으시시한 호텔 정원 조명에 왠지 위축된다. 넓은 방에 사방이 틔어 사면이 모기장으로 차양된 두 개의 침대가 우아하면서도 기이하게 보인다. 이런 멋진방에서 혼자 눕다니. 일부 일행은 새벽편으로 떠나게 되고 나머지는 오후편이라 잠자리가 편치않다. 학창시절 시험에 대한 악몽이 이제부턴 아프리카를 탈출하는 꿈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새벽같이 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에 비몽사몽간에 문을 여니 넓은 마당앞에 조그마하고 앳된 아프리카 소녀가 요정처럼 서있었다. 아! 이곳이 아프리카였구나. 문고리에 걸린 시그날이 잘못 되었던지, 청소는 안해도 된다고 양해를 구하고 정원을 한바퀴 돌았다. 우리나라 카지노 대부가 지은 호텔이라는데 규모가 무척 크고 멋있다. 날씨도 좋고 기분이 상쾌하다. 다행히 귀국편이 잘 해결되고 덤으로 반나절 나이로비를 관광하게 되었으니 먼저 떠난 동료들 보다 행운이 따라준 것 같다. 동물원과 박물관에서 아프리카를 느끼며 오후를 보냈다. 케냐의 나라꽃인 아름다운 보라색꽃이 눈에 다가오며 나를 반긴다. 다시 오라고….

그래 언젠가는 이 아프리카에 사파리여행으로 다시 올것이다.

그때는 또 킬리만자로 산행을 추억하겠지.

 

 
 박윤석<요셉이비인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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