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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成均館)과 규장각(奎章閣) 이야기
성균관(成均館)과 규장각(奎章閣) 이야기
  • 의사신문
  • 승인 2010.12.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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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 재정이사
올 가을 대한민국의 여심을 뒤흔든 드라마(성균관스캔들)가 있다. 방영 당일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특정 케이블 방송에서 반복 재상영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미리보기와 다시보기가 가능한 시대인 만큼 여러 시청자들이 주요 장면의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같은 장면을 보고 또 봤다는 소문이다. 그 여파로 이 드라마의 대본에 앞서 원작의 작가가 몇 년 전부터 발표해온 소설까지 인기를 끌었다.

소설은 성균관과 규장각 생활에 대해 묘사한 원작은 모두 네 권으로 가끔 있는 여백에도 불구하고 꼼꼼하게 보면 한 번만 읽기에도 시간이 꽤 필요하다. 이 드라마의 매력에 끌려 필자도 재방송을 반복 시청했을 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 네 권을 모두 읽었다. 물론 평소대로 신문을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드라마를 본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첫 방송은 비교적 집중해서 보고 재방송에도 시선을 뺏겼으니 다른 때와는 다소 달랐던 셈이다.

평소와 다른 점은 또 있다. 학창시절부터 대하소설, 추리소설, 역사소설, 과학소설 등 소설 읽기를 즐겼던 필자로서는 거의 언제나 소설을 먼저 읽고 그 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을 나중에 보곤 하였다. 그러면 또 항상 `역시 영상물보다 활자물이 훨씬 더 낫지!' 하는 주관적인 감상을 갖기 마련이었다.

첨단 뇌과학의 발달에 따라 `영상매체를 통해서 영상물을 접하는 것보다 인쇄매체의 활자물을 접하는 것이 뇌기능 활성에 더 나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까지 보고되어 필자의 이러한 태도를 더욱 부추기고, 필자의 견해에 힘을 실어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다. 소설을 들춰본 처음에는 그랬다.

영화화 된 `반지의 제왕'은 건성으로 본 반면에 원작인 `반지전쟁', 즉 엄청난 분량의 낯선 환타지 소설은 끝까지 읽어냈던 필자에게조차 이번에는 영상물이 소설보다 더 낫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보다 먼저 접한 드라마의 명대사에 매혹된 나머지 소설 속의 대화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네 권을 모두 읽고난 느낌은 처음과 많이 다르다.

조선시대 후기 우리 조상에 대해 막연하나마 다소 부정적이었던 선입견에도 변화가 왔다. 물론 역사 사실과 드라마를 혼동하지 말라는 경고는 여러 번 들었고, 소설이 실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시대의 생활상과 그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젊은시절이 다시 떠올랐다는 여의사들의 감상평이 의외로 많았지만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 소설을 읽으면서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성균관을 보면서 강의실, 도서관, 병원을 오가며 청춘을 보냈던 의대 재학시절이 생각났다. 규장각을 읽으면서 비좁은 전공의 당직실 이층침대에서 동료 여의사들과 함께 지낸 밤, 또는 엄청난 숫자의 입원환자가 재원 중인, 파견 나갔던 정신병원에서 홀로 보냈던 주말이 떠올랐다. 의대 졸업 직전에 결혼을 했던 필자가 인턴 생활을 시작하면서 남편을 포함한 네 명의 의대 동기동창 남자 의사들과 같이 파견 나갔던 종합병원의 여러 장면들도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되었다.

소설 규장각은 두 번째 읽고 있다. 한 번 본 소설은 치워버리는 평소 태도와는 또다른 모습이다. 달구질 당하는 땅처럼, 달구어지는 쇠처럼 과정을 견디어내는 젊은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전문직 초년병일수록 출퇴근 시각이 따로 없는 생활 속에서 헤매게 되어있는, workaholic nation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대한민국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 네 명의 다양한 개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간다.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네 기능처럼 균형을 이루어 생존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무엇보다 현대 직장의 CEO라고 할 수 있는 대왕 정조의 상관으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좋은 인재를 잘 뽑아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모든 일을 순리대로 잘 풀리게 한다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원칙에 충실하게 과거제도 개선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역사의 전언이 눈앞의 활자와 영상으로 재현된 셈이다. 대과(大科)는 규장각을 통해 국왕이 직접 관장하여 많은 폐해를 없앴다거나 지방에서 시행하는 소과(小科: 道科) 혁신을 위해 국왕이 직접 시제를 출제했다고 한다. 과정에도 철저해서 시제는 규장각 각신이 직접 가지고 현지에 내려가 과장에서 개봉하고 게시했고, 답안지는 규장각에 가져와 국왕의 주관 아래 채점해서 합격자를 발표했다고 한다.

모름지기 모든 존재는 모범이 되는 배울 점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문제점을 공유한다. “피부를 파고드는 병이 격무와 과로로 악화되어 붕어하셨다”고 하는 정조대왕 가까이에 만약 소설 속의 구용하와 같은 벗이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까 하는 우문 아닌 우문을 하게 된다. 평균 수명 90세를 바라보는 21세기에는 우리 의사들도, 소화기 궤양이나 다한증 같은 스트레스 유발질환을 의심케 하는 일부 규장각 각신들의 부정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굵으면서도 긴 인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과 시스템 중에서 고칠 것은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김선아<한국여자의사회 재정이사·인천기독병원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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