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공원, 대학로 그리고 필리핀 장터
마로니에공원, 대학로 그리고 필리핀 장터
  • 의사신문
  • 승인 2010.12.10 1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세란의 꽃대가 오르기 시작할 때이다. 이제 막 뾰족하게 올라오기 시작한다면 실내 햇볕 잘 드는 곳에 두고 일주일에 두 번쯤 흠뻑 물을 주면 새해를 맞으며 난향에 흠뻑 취할 수 있다.
갑자기 어떤 곳에 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 가느다란 철사를 구부리고 끝을 뾰족하게 갈아 낚시를 했던 시골의 어느 저수지,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 그 장한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들어섰던 느티나무 고목이 있던 마을의 시냇가.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언젠가 차가 끊긴 밤에 그 도로 한복판에 둘러 앉아 넘기지도 못하는 술잔을 들고 울분을 토했던 곳이고, 늘 세상 모든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이던 순하디 순한 친구가 그 뒤 쪽 이화동 어딘가에 살았었고, 그리고 아들이 다니던 고등학교가 거기에 있고….

지하철역을 빠져 나오는데 두툼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공연을 알리는 전단을 나눠주며 열심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저 중엔 이곳을 발판으로 삼아 언젠가는 스타가 될 이들도 있겠지요. 마로니에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아직 오전이 다 지나가지 않은 때인지라 공원은 한산했습니다.

안에 너른 곳에서는 여러 명의 학생들이 국제 사회의 난민을 위한 전시회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쪽 한적한 벤치에 여학생 둘이 앉아 있습니다. 바닥엔 직접 만들었다는 열쇠고리와 몇 가지의 소품, 스웨터 몇 장을 진열해 놓고 있습니다. 찾아와서 저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열쇠고리를 하나 샀습니다. 얼굴이 환해집니다. 며칠 후면 대학을 졸업하는 딸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대학로에는 볼 것이 참 많습니다. 고산 윤선도의 시비가 있고 함석헌의 시도 읽을 수 있고 김광균의 시도 예쁘게 다듬어진 돌에 새겨져 읽어줄 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각 작품도 눈을 즐겁게 합니다. 길가 어디쯤엔 호랑이가 씨익 웃고, 지하철 입구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의치 않고 신문을 읽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고개를 들어 혜화동 로터리 쪽을 보면 거기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습니다. 동성고등학교 앞에서부터 혜화동 성당까지 일요일마다 필리핀 장이 섭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작은 전자제품, 장난감, 전화카드, 먹을거리, 통조림 등 종류가 참 많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생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골 장터처럼, 여기도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 앞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튀김 음식과 파이, 고기 음식도 보이고, 잡채 비슷한 음식도 있습니다. 호기심에 다가가 색다르게 생긴 소시지를 몇 개 샀습니다.

“이거 물 두 컵 넣고 끓여요. 칼로 이렇게, 이렇게… 어머니 설명 잘 해주세요.” “여기에다 칼집을 내고 물 조금 부어서 팔팔 끓이면 기름이 많이 빠지고 맛있어요.” 필리핀 며느리와 함께 나와 있나봅니다. 한 쪽에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파는 물건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듯 그저 이야기하며 웃습니다. 자신들이 고국에서 쓰던 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으니 그저 행복하게 보입니다.

추위가 더 깊어지기 전에 소엽풍란과 나도풍란을 정리해 겨울 날 준비를 해야 하고, 잎이 진 자란 뿌리도 살펴 갈무리를 해야 하는데 아직은 자리를 뜨고 싶지 않습니다. 새 촉이 너무 많이 올라와 화분이 비좁아진 살마금 분갈이는 또 언제 하려는지. 그래도 여기 이 사람들 곁에 조금 더 있고 싶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견디며 무슨 꿈을 키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금 더 살펴보면 알 수 있을까요?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