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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위대한 힘과 산이 알려주는 지혜 배워”
“자연의 위대한 힘과 산이 알려주는 지혜 배워”
  • 의사신문
  • 승인 2010.12.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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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9>

길만스포인트에서 기념사진
꿈의 땅, 탄자니아의 속살 킬리만자로

`킬리'라는 애칭으로 물리는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 북동부 케냐와의 국경지대에 있다. 아프리카 최고봉이며, 세계 최대, 최고의 휴화산으로서 적도부근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로 덮여있어 백산이라고도 한다.

거대한 온대 초원이라는 스텝위 외따로 떨어져 솟구친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봉우리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스와힐리어로 `번쩍이는 산'을 뜻하는 킬리만자로는 정상을 향해 가는 동안 풍경은 끝없이 변한다. 열대우림에서 시작해 황무지를 거쳐 얼음과 빙하의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정상의 아이스돔은 한때 그 높이가 20미터에 1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크기였으나 지난 100년 사이에 85퍼센트가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킬리만자로는 눈이 없는 봉우리가 되고 말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대륙 최고봉 중에서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등정 성공률이 30퍼센트에 머문다. 고산병 때문이다.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전 이웃산인 메루산(4566미터)이나 케냐산(5199미터)을 오르며 고도적응을 한다면 비교적 편하게 킬리만자로에 오를 수 있겠다.

대 자연을 자랑하는 킬리만자로는 한국인들에게 가고 싶은 산행지 첫손에 꼽히는 동경의 대상이다. 이태리,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인의 방문이 많다고 한다.

세네시오 킬리만자리와 산정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자연이 건네는 위로의 힘을 믿는 이라면, 스스로 한계를 시험할 용기를 지닌 이라면, 한번쯤은 킬리만자로를 꿈꾸지 않을 수 없다. 검은 대륙의 적도 아래서 만년설로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이마는 오랫동안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도전과 용기의 상징이 되어 왔다.

나 또한 그동안 일본, 중국, 뉴질랜드, 캐나다, 네팔 등지로 여러 차례 해외산행을 다녀오면서도 쉽게 갈 수 없는 킬리만자로는 항상 갈망의 대상이었고 죽기 전에 꼭하고 싶은 일들을 모아놓은 버킷 리스트 중 제일 순위였다.

인천, 홍콩, 방콕, 나이로비를 거쳐 탄자니아로 이어지는 하늘 길은 이제 새롭지 않을 것 같았던 탄자니아의 `숨겨진 속살'로 나를 안내해 줬다. 집 떠난 지 30여 시간이 지난 후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열대지방으로 숨이 턱 막힐 줄 알았지만 신선한 느낌이 들어 의외였다. 게다가 하늘은 깨질 듯 투명하고 공기는 숨 쉴 때마다 찌든 몸을 청소해준다.

우리는 해발 1700미터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킬리만자로의 배후 도시이자 산행의 기점이 되는 탄자니아 북부도시인 모시로 향했다.

모시의 시내에서 쌀, 생수 등 필요한 부식을 장만 후 바로 마랑구게이트로 출발했다. 해발 1970미터인 마랑구게이트에서 가이드, 포터를 배정받고 다소 들뜨고 흥분된 느낌으로 만다라 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마랑구게이트를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다라 산장까지 7킬로미터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등산로는 아프리카의 밀림 모습 그대로 한적했고 숲은 울창한 원시림 그 자체로 느끼는 기분은 상쾌했다.

분홍빛 작은 꽃들이 무더기 지어 피어있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함께 계곡을 가른다. 길은 계속 열대우림을 가로지르며 붉게 이어지며, 숲은 깊다.

출발한 지 3시간 가량 지나 오후 7시쯤 해발 2720미터에 있는 만다라 산장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해발 3780미터 높이의 호롬보 산장을 향해 서서히 출발했다. 만나는 등산객들은 서로 잠보(탄자니아 말로 안녕)를 주고 받는다. 길은 비교적 순탄했고 키 큰 교목들은 없어지고 관목과 초본 식물들이 넓다란 평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신 듬성듬성 선인장과 비슷한 모양의 시네시오나 로벨리아가 솟아있다.

여기서부터는 고산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신체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탄자니아 말인 뽈레뽈레(천천히, 천천히)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무사히 호롬보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 주변은 마치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등산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이튿날 마지막 산장인 해발 4492미터의 키보로 향하는 길 주변은 황무지와 같은 대평원의 연속이었다.


죽기전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킬리만자로와의 만남에 감격
호롬보 산장 도착하니 전세계서 몰려든 등산객으로 인산인해
정상 향한 힘겨운 발걸음 통해 내 자신의 미약함 되돌아 본 계기
우후르피크서 한계 극복의 성취감 속 자연의 숭고함 절실히 느껴



가없는 하늘 끝에 솟은 킬리만자로의 흰 이마를 마주하며 걷는다. 길은 고즈넉하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린 속도로 걷고 있다. 이젠 초본식물도 사라지고 황량한 들판과 사막이 이어지면서 중간 중간에 조그만 화장실만 있을 뿐이다.

키보산장이 보이는 마지막 쉼터에서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던 중 속이 거북하고 구토가 나올 듯 해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했다. 잠시 후에는 머리가 서서히 조여 오면서 두통이 생기더니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호롬보 산장에서 키보산장까지 불과 10킬로미터되는 거리를 8시간가량 걸려 겨우 도착했다. 다음날 정상 등반시도는 밤 12시로 예정 되어 있어 키보 산장 도착 후 일찍 취침에 들어갔다. 하지만 좀처럼 깨질 듯한 머리가 진정되지 않고 호흡도 점점 가팔라져 여기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길만포인트까지만 가보자는 생각으로 덱사메타손주사를 맞으면서 일단 몸 상태가 다소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밤 11시 고요하던 산장이 이내 부산스러워진다. 잠에서 깬 이들이 두려움과 용기,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짐을 챙긴다.

결국 한숨 못자고 대충 누룽지를 챙겨먹고 예정대로 밤 12시에 킬리만자로 정상을 향했다. 우리 일행은 일제히 헤드랜턴으로 킬리만자로의 밤길을 밝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만큼이나 밝은 랜턴 불빛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일행과 거리가 점차 벌어졌지만 처지더라도 절대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진행했다. 호흡은 더욱 가팔라지고 정신이 근육의 움직임과 뒤섞이는 그런 순간마다 혼미해지는 듯 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날 종일 두통에 시달리면서 잠을 못 잔 것이 또 다른 화근이었다.

우후르피크를 오르는데 큰 도움을 준 가이드와 함께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장딴지가 뻐근해졌다. 잠시 숨을 돌리려 바위에 앉으면 머물고픈 마음에 더 올라야 뭐하나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나기도 하고 몽환적 기분에 젖어 멍하니 있다보면 어김없이 가이드가 이제 슬슬 가보자고 재촉하기도 한다.

이런 육체적 피곤함이 찾아올 때마다 자꾸 나 자신의 미약함을 뒤돌아보게 된다.
바람은 살을 저미듯이 달려든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매서운 추위다. 끝까지 갈수 있을까, 정상에 오르기 전에 동사하는건 아닐까, 육체의 한계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지친 몸을 부려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다.
길은 전날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전혀 달랐다. 가파른 모래 자갈 길을 한발을 올리면 두발쯤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고 조금씩 균형 잃은 몸이 휘청거리자 뒤 따라 오던 가이드 아이작이 따라 붙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휘청거리니 이내 또 다른 가이드 그레고리가 달라붙는다. 아이작이 자기 허리를 감아 잡으라고 하고 그레고리는 내 허리를 지지해 주었다. 한결 걸음 거리가 편해지고 마음이 놓인다. 평생 못 잊을 너무나 고마운 가이드들이었다. 이렇게 까지 나에게 배려하다니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윽고 드넓게 펼쳐진 대지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흩어진다.

장애물 하나 없이 툭 터진 광활한 대자연 앞에 경외감이 밀려온다. 길만스포인트다. `당신은 지금 5681미터의 길만스포인트에 있습니다'란 탄자니아 이정표가 반겼다. 두가이드와 포옹으로 성공을 자축했다.

최정상 우후르피크까지는 2킬로미터 남짓, 길만스포인트 바로 맞은편에 있다. 사방이 트여 시원하게 느졌다. 길만스포인트를 넘어서니 비교적 편안한 능선으로 접어든다. 이어 1시간 30분후 드디어 이프리카의 최정상 우후르피크에 우뚝 섰다.

길만스포인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정표에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지금 5895미터의 우후르피크 정상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고봉이며 걸어서 올라올 수 있는 세계 최정상 봉우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흥분감, 기쁨과 고통이 뒤섞여 있는 바로 그 흥분감이 나로 하여금 한계량 이상의 에너지를 방출시켜 우후르피크를 품을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 정상에 있는 이정표는 각국에서 온 등산객들이 스티커를 붙여놓고 낙서를 해서 매년 2∼3번 바꾼다고 한다.

이번 산행의 경험 속에서 볼 때 특히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라는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산은 도전의식과 성취감, 아름다운 풍광, 인내, 느림의 미학 등 많은 것을 주기도 하고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에게 자연의 숭고함을 일깨워 주는 존재이다. 그게 산이다. 고산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번 등산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장원영<삼육의료원 마취통증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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