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한미참의료인상 수상 - 최달용 원장
제9회 한미참의료인상 수상 - 최달용 원장
  • 김태용 기자
  • 승인 2010.12.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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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참뜻·행복 아는 사람 더 많아지길 바래”

최달용 원장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이 기사를 통해 뜻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제9회 한미참의료인상을 수상하게 된 최달용 원장(송파구의사회 전 회장, 최달용피부과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을 위해 의술을 펼치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최달용 원장 또한 자신의 업적을 두고 “남에게 알릴만한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몇 번이고 인터뷰를 고사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약속을 잡고 찾아간 진료실에서 그가 생각하는 의사의 역할과 의료봉사의 의미에 대해 전해 들었다.

“저는 사실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고 싶어 했어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많이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저로서는 그런 저를 낫게 해줄 수 있는 의사가 위대해 보였던 것 같아요. 허약한 탓에 집에 있던 시간이 많아 자연스레 접하게 된 위인전이나 소설책 속의 의사는 항상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곤 했습니다.”

어린시절 꿈꿔왔던 의사가 되기 위해 경희의대에 진학한 최 원장은 본과 2학년 때부터 학기 중은 물론 방학 때마다 무의촌을 찾아가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강원도 원주 지역의 보건소도 없는 곳을 찾아가 진료를 보고 나면, 환자들이 건내 준 옥수수,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때가 그에게는 가장 순수했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의 자리(서울시 송파구)에 개원을 마친 최 원장은 가락시장 주변 가건물에서 매주 수요일 행려자나 노숙인, 무의탁노인을 대상으로 진료봉사를 시작했다. 최 원장은 아직까지도 1994년 처음 가락시장을 찾던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1994년 처음 가락시장 찾았을때 그 참담함 이루말할 수 없어
도움 청한 환자의 상황 따지지 않고 충실한 진료가 봉사 원칙
“병원 정리 후에 제3세계에서 봉사하며 여생 마무리 하고싶어”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이 얼어죽는다는 것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상수도 동파를 막기 위해 난방이 되는 화장실이나 복도계단 등을 차지하지 못해 목숨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일년에 10명 정도나 발생했죠. 이들을 억지로 설득해 보호시설에 입소시켜 겨울나기라도 하라고 말하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 기존 입소자들과 대판 싸우고 가락시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 때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방법이 없을 수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죠”

이후 최 원장은 지금까지 수십년의 시간동안 진료봉사를 해오며 한가지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내게 도움을 청한 환자가 있다면 그의 상황을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진료를 보는 것이다. 특히 가락시장에는 종일 구걸을 해도 그 돈은 결국 누군가에게 상납되는 사람도, 실상은 매우 유복한 가정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봉사 현장에서 그런 환자를 마주칠 때면 `내가 여기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니 판단치 말고 병을 어루만지자'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최 원장은 가락시장 외에도 천마산 가구공단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오고 있다. 오금동 성당의 한 신부가 최 원장에게 도움을 청해 지난 2004년부터 매달 한번씩 그곳을 찾아가 진료를 한다. 그를 비롯한 각과의 의사들과 간호사 약사 등 천주교 신자들로 시작된 천마산 봉사가 시작됐을 당시에는 환자보다 봉사자가 더 많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던 것이 오래 지나지 않아 봉사자의 수가 하나 둘 줄어들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분명한 쓰임이 있는데, 그 사람이 봉사활동에 있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에게 봉사는 제 역할이 아니에요. 재미가 없는 일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잖아요? 그에게는 다른 방법으로 남을 위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제 완전하게 자리잡은 천마산 봉사단에는 그런 남을 돕는 `재미'와 `희생'에 익숙한 봉사자들이 남아 즐겁게 환자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최달용 원장의 남은 바람은 생각 그 이상이었다. 병원을 정리하고 나면 제3세계로 거처를 완전히 옮겨 봉사를 하며 여생을 마무리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가족에게는 그 뜻을 알렸다고. 기왕이면 오래전부터 후원으로 인연을 맺은 아이가 있는 네팔에 가고 싶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다.

“인술? 의료봉사? 봉사는 무슨 봉사에요, 심봉사도 아니고(웃음). 다만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저는 제 병원 진료실 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진료하는게 몇 배는 더 재밌어요. 지하철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되고나면 더 큰 재미 찾으러 꼭 떠날 겁니다 하하”

김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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