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59 (금)
건강한 삶의 근원이자 일주일 강행군 위한 재충전
건강한 삶의 근원이자 일주일 강행군 위한 재충전
  • 의사신문
  • 승인 2010.12.01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의사회 창립 95주년 기념수필 - 등산의 즐거움

백낙환 이사장
이십대부터 의사가 된 50여년 동안 단 한 곳, 백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면서 내가 직접 집도하거나 참여한 환자는 아마 5000명이 훨씬 넘을 것이다. 사실상 30년 이상 백병원장으로서 일해 왔고 백병원의 중흥과 현대화에 앞장서 왔기에 원장으로서 사회에 알려졌을지 모르지만 유난히 극성스러운 성격이라 외과의사로서도 열성을 다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성공한 몇가지 수술이 기억에 남는데 소아에서의 선천성 거대결장(巨大結腸)에 대한 스완슨 수술법(Swanson's operation)이라든지, 자궁경부암이 뒤로는 직장에, 앞으로는 방광에 유착되었을 때 시행하는 골반내장전적출술(骨盤內臟全摘出術)도 미국 등에서는 성행하는 수술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최초로 시작했다. 또한 장중첩증(臟重疊症)도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최다인 350례에 대한 치료 결과를 발표했다.

어려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간혹 햅쌀을 들고 불쑥 인사를 오거나 감사편지를 보내올 때는 비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외과의사로서 흐뭇함과 보람을 느끼곤 했다.

이 중 이진복이라는 환자는 잊을 수 없다. 1974년 6월 25일 위암 수술을 했는데 위암 중에서도 특히 식도와 연결되는 부위에 암이 있어 수술이 까다로운 상태였다. 결국 위 전체와 식도하부, 간좌엽 비장까지 포함하여 상당히 광범위하게 떼어내는 대수술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수술이 성공하여 20년 동안 암이 일체 재발하지 않아 외과의사로서 한 생명을 살린 보람을 느꼈다. 그분은 동두천에서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었다. 당시 부인이 열성적으로 간호를 해서 나로서도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분들은 또 나를 기억해서 18년만인 지난 1992년 이진복씨가 부인과 함께 나를 찾아와 반갑게 인사도 하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내외분의 감사와 감격에 찬 눈빛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여가도 즐긴다고 자동차를 사서 직접 몰다가 그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했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으니…. 나로서도 무상한 삶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터뷰나 강연을 할 때면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항상 이야기하는데 소식(少食), 다동(多動), 금연(禁煙), 절주(節酒)는 50년 넘게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건강원칙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를 가르켜 `영원한 청년'이라 부른다. 얼마전 84세 생일을 맞아 병원 식구들과 함께 지냈는데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며 다들 부러워했다.

나는 등산을 50년 넘게 해오고 있다. 그동안 매년 53주의 주말 중 외국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등산에 개근한 해가 많다는 것이 나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이다.

처음 등산을 시작하던 1960년대 초에 나는 무너지는 병원을 재건하기 위해 진료와 수술하는 틈틈이 다른 잡무에 시달려 심신이 편한 날이 없었다. 마침 고향 친구와 선배들의 권유로 일요일마다 등산을 다니기로 하였다. 산은 서울 근교의 빼어난 산 가운데 하나인 북한산을 택했고 매주 같은 시간에 모여서 같은 코스로 등산을 다녔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등산을 하면 일주일 동안의 심신(心身)의 피로감이 사라지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체력도 단련됐다.

나는 매주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리며 일주일을 6등분해서 생활한다. 월요일과 화요일 오전에는 서울백병원과 일산백병원에서, 주중 3일은 김해의 인제대학교와 부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에서, 그리고 금요일은 상계백병원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산을 오른다. 새로운 한주일의 강행군을 위한 재충전의 날이다. 부산에 있는 날은 새벽마다 금정산 기슭까지 올라가 아침운동을 한다. 구서동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부산, 김해 생활중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이 바로 금정산 등산이다. 매일 아침 5시에 등산을 시작해서 하산한다. 매일하는 서울에서의 조깅과 산책 코스인 삼청공원과 비교해 보면, 이곳은 특히 공기가 좋아 기분이 더 없이 상쾌해진다. 더구나 금정산에는 운동기구들이 있어서 몸을 풀 수 도 있어서 내심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산을 가까이 하면서 갖게 된 산행 철학이 있다면 산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이라도 나름대로 남성다운 엄숙함이 있다. 산은 인간의 경박함을 꾸짖고 다스린다. 곁에 두고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오르면서 한편으로는 그 남성다운 엄숙한 품에서 한번쯤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도 보고 반성도 해 볼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도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자연보호, 환경보전 그리고 생명존중, 인간사랑 운동에 우리 모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백낙환<인제대 백병원 이사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