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기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8>
서울을 출발해 30여시간을 공중의 긴 터널을 뚫고 힘겹게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공항에 안착하였다. 모시라는 도시를 거쳐 오후 3시반에 마랑구케이트에 도착하였는데 각국의 등산객들로 시끌버끌하였다.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짐들을 포터에게 분배하고 3시40분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가는 코스는 코카콜라 코스란다. 길이 잘 정비되어있고 요소요소에 산장이 있으니 제일 편하게 정상 정복을 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코스는 미리 산장예약에 신경을 써야하고 또 하루가 짧은 일정관계로 고산증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한 단점이 있었다.
첫날 산행은 길도 좋고 숲도 좋고 계곡물까지 있어 상쾌하고, 자라는 나무들로 가득찬 열대우림지역의 풍요로운 자연속의 트레킹은 즐겁기만 하다. 이름 모를 예쁜 꽃도 있고 지저귀는 새소리도 있고 7시쯤 만다라산장(해발2700m)에 도착할 때까지 약1000m의 고도를 별 어려움 없이 올렸다. 모기는 없지만 벌레들이 날아들고 개미가 옷 소매사이로 들어와 물기도 한다.
이상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 산기슭의 하이에나인가 했더니 아니고 원숭이 무리란다. 실망? 하이에나가 없으니 표범도 없겠지. 그래도 산중의 해는 빨리 지고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법! 서둘러 저녁식사하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니 따뜻하고 아늑하고 행복했다. 바깥공기는 서늘하고 상쾌했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다보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고 별빛이 유난히 반짝인다. 그 숫자 또한 어릴 적을 포함해서 내가 본 중에서는 최고이다. 영혼이 맑아짐을 느끼며 들어와 누우니 벌써 동료들의 코고는 소리 요란하여 나도 잠을 청했는데 꿈도 꾸지 않고 아주 잘 잤다. 킬리만자로에서의 첫날밤은 고향의 어머니 품속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포터들이 떠온 따뜻한 물에 세수를 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하였다. 가벼운 등산화로 갈아 신고 늦가을 정도의 차림으로 둘째 날 등산을 시작하였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오후3시반께 호롬보산장(해발3700m)도착하였다.
산행 중 나무도 키가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관목만 있고 꽃도 시들어빠진 줄기에 앙상하게 붙어있는 게 가끔 눈에 뛸 뿐이다. 그나마 `세네시오 킬리만자리'라는 선인장비슷한 나무가 있어 체면은 유지된다. 풍요로운 산이 아니라 메마른 광야를 고도만 올려 가져다 놓은 듯…. 그래도 열심히 천천히 순례자같이 길을 따라 행군하여 3700m고지까지 올랐다.
머리가 좀 아프고 방귀가 자꾸 나오는 게 고소증세 시작 같다. 오후 7시쯤 식사하는 데 입맛이 없어 조금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겁이 나서 진통제와 소화제를 먹고 고산증 예방으로 다이아막스와 자이데나도 같이 먹었다.
밤중에 다람쥐가 내 머리맡을 왔다 갔다하여 잠에서 깨어 보니 바깥에 달은 휘영청 밝은 데 별빛은 어제만큼 찬란하지 않다. 다시 드러누워도 잠은 오지 않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데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잠을 안자도 머리가 맑아오고 몸이 가벼워지니' 이러다 신선의 경지에 드는 것은 아닐까? 공상하다가 늦게 눈을 좀 붙였다.
위층에는 이재일 회장이 코를 골면서 잘 자고 방귀도 잘 뀐다. 역시 대장답게 건강하고 잘 먹고 잘 걷는다. 나는 잠도 잘 오지 않고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것은 없는 데 입맛이 없다. 아무튼 덜 먹고 덜 자고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 먹어야만 움직이고 식탐을 비롯하여 온갖 욕심의 노예가 된 이 육체를 좀 정화하는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 또 다른 욕심을 내어본다. 육신의 훈련과 정신의 고양을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킬리만자로 품속에서 둘째 밤을 그렇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는 라면을 비롯하여 뭘 좀 먹었다. 어제 저녁을 굵었더니 배도 좀 고프고 남들처럼 씩씩하게 올라가기 위해서 억지로 먹었다. 그리고 곧이어 4700m의 키보산장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여기는 고산이라 나무는 별로 없지만 산정상이 가까워진 관계로 눈 덮힌 산봉우리가 눈앞에 보이고 옆으로는 마웬지봉이 보여 경치가 좋다. 구름이 발아래 있으니 그 또한 높은 산에 오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고산이라도 약을 먹어서인지 숨이 가쁘다든가, 산소가 부족하다든가, 가슴이 답답한 증세는 없고 머리는 맑아지고 기분은 좋아진다.
그런데 육체의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그토록 내가 자신 있어 하던 위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메식메식하고 속이 더부룩하더니 방귀도 안 나오고 속이 불편하고 기운이 없어진다. 편안히 누워 쉬면 어떨까 모르겠는데 지금이 누울 때가 아니지 않는가? 고산 증세라면 산소부족으로 머리가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다리가 아프거나 아니면 나의 약점인 치통이 올 줄 알았는 데 전혀 예상 밖의 위가 고산증의 증세를 나타낸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되돌아 보면 생각지 않고 자신 있어 하던 곳에 문제가 잘 생기는 것 같다.
첫날 풍요로운 자연 속의 트레킹 즐기며 여유있는 산행 시작
셋째날부터 예기치 못한 `위의 반란'으로 육체와 힘겨운 싸움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채 가이드의 격려로 한걸음씩 나아가
결국 200m 남겨두고 하산했지만 마음의 평화·자유 얻어 만족
조금 걷다가 억지로 토해도 보고 대오에서 벗어나 자연속에서 다시 한번 배설을 시도해봤으나 그 것 마저도 시원치 않았다. 점심도시락은 그대로 손도 못 대고 주스만 한잔 먹고 힘없이 비실비실 착고에 묶여 끌려가는 노예마냥 걸어갔다.
육신이 이렇게 곤핍하니 산봉우리를 올려다볼 기운도 없었다. 위를 제2의 뇌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머리는 맑고 기분도 괜찮은데 왜 이러지. 내가 평소에 위를 너무 튼튼하다고 신경 안 쓰고, 욕심만 부린다고 미워해서 그런가? 살 빼겠다고 위를 괄시해서 그런가? 다행히 가이더가 “You are strong man. Uhuru peak!”를 연발하며 나를 우후루피크까지 갈수 있다고 응원해주었고 나중에는 지팡이의 한쪽 끝을 잡고 같이 걸어주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안 먹고 물만 먹고 한번 버티어 보자.
우여곡절 끝에 키보산장에 도착하여 저녁도 먹지 않고 누워버렸다. 빨리 눈을 부치고 밤 12시에 정상정복을 시도한단다. 왜 꼭 마지막에는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새벽에 등산을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꼭 산정에서 일출을 봐야만 적성이 풀리는 지? 태양이 신이냐? 하산 일정과 해 뜰 때의 기온 차이 등을 고려해서 그렇다니 계획대로 따를 수 밖에. 또 팀 리더의 명령에 절대복종이 산행의 철칙이므로!
일찍 누우니 몸은 나른 한데 잠은 안 오고 이뇨제 때문인지 소변만 마렵다. 소변보러 나왔다가 어질하고 메쓱거려 또 한번 토하니 먹은 것이 없어 위액이 올라오는 데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약 하나씩 더 먹고 일찍 누워 잠을 청해본다. 멍한 게 아무생각이 없다.
제일 높은 고지(4700m)에서 자는 킬리만자로에서의 셋째 밤을 이렇게 자는둥 마는둥 보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12시가 되니 모두들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준비에 부산하다. 정신없이 식당에 가서 누룽지탕을 끓였다는데 못먹고 카맬백에 따뜻한 물을 담고 수통에는 국산 H스키피를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롯데 산도와 초코렛과자도 몇 개 챙기고 밤길을 일렬로 줄을 서서 나가는데 나는 중간보다 약간 후미였다. 가끔 구령을 부치며 용감하게 행진했다. 남의 뒤통수만 보고 걷는 데 가도 가도 비슷한 언덕길로 좀처럼 길이 줄어들지 않았다.
중간에 한스마이어 동굴에서 추워서 오버트라우져를 입었는데 입고 나니 동작이 둔하여 더 행진이 더뎌졌다. 일행에서 좀 쳐져 나의 가이더인 엘리와 동행했는데 어두워서 다른 동료들의 행방은 다 놓쳤다. 엘리는 나의 랜턴을 자꾸 빼앗으며 자기만 따라오라고 했다. 가끔씩 카멜백의 호스를 통해 물을 마시면서 정신없이 올라갔다. 피곤하고 잠도 쏟아져 더욱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지 아니면 꿈속에서 등산한다고 생각만하고 있는 지. 또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를 생각하다가, 이러다 낭떠러지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면서 그래도 같이 가는 가이드가 있지 하는 믿음으로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갔다.
동틀 무렵 언덕에 도착하여 사진도 찍고 정신을 차리니 조금만 더 가면 길만스포인트라고(5695m)라고 한다. 거기 가서 또 한번 증명사진 찍고 내려다보니 큰 분지같이 움푹 파인 곳에 기린과 사자가 뛰노는 것 같아 다시 보니 바위의 모양이나 그림자가 그렇게 보였을 뿐 실제 짐승은 없었다. 건너편에는 만년설이 빙벽을 이루어 마치 주상복합아파트촌 같은 모습으로 서있다.
하나의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메마르고 생물도 없고 화산재로만 형성된 분지를 둘러싸고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밑에서 볼 때는 여러 개의 봉우리가 겹쳐져서 멋있는 눈 덮힌 한 봉우리가 연출되었는 데 막상 와보니 여러 개의 봉우리로 나뉘어져, 어떤 것은 잔설을 이고 있고 어떤 것은 녹다만 얼음덩어리로 되어 있고 어떤 것은 메마른 바위만 있다.
능선길을 더 가는데 계속 같은 경치의 연속이고 지루하여 음웨가루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까지 갔다가, 카멜백의 물은 호스가 얼어 안 나오고 커피를 꺼내어 마시니 다시 울꺽 토하려 해서 망연자실 서있는데 가이더가 이제 그만 돌아 내려가는게 좋겠다 하여 동의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후르피크, 스텔라포인트, 길만포인트 이 셋 중에 하나만 오르면 킬리만자로에 오른 것으로 증명서도 준다니까 기본은 한 셈이다.
우후르피크에 200m 못미치지만 항상 2%부족한게 인생이 아니던가? `절대자유. 평화'의 뜻이라는 우후르피크 근처에 간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신은 아프리카 고산이나 하늘 높은 곳, 혹은 신비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 마음속에 항상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장순기<노원신경정신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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