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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고 싶었던 만남 그리고 이별 (딱새) 〈상〉
머무르고 싶었던 만남 그리고 이별 (딱새)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0.11.1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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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운 봄 `생명의 향기' 가득한 손님 방문


“여보! 여기 좀 봐요!” 나를 다급히 찾는 아내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가득 차 있었다….
황급히 달려 간 나에게 아내는 우편함을 가르켰다.

아내가 가르키는 우편함 속을 들여 다 본 나는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새 알 이잖아...!”
하며 깜짝 놀라고 컴컴한 우편함 속을 위아래로 살폈다.

“쉿! 건드리지 마요. 아홉 개 정도 돼요”하나 둘 헤아려 보던 나에게
아내는 흡사 유리알에 흠집이나 낼 것같이 우려하며 뒤로 물러서게 하였다.

이번 봄은 짧고 추웠다. 북한강 기슭에 물안개도 별 피지 않았고 노적봉 잔설도 꽤 오래 갔다.세상도 시끄러워 북한의 김정일은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와 6자회담 탈퇴 등 벼랑 끝 외교 작전으로 굶주린 북측 주민을 달래고 천안암 경계함이 반쪽으로 폭파하며 46명의 해병이 수장되는 뉴스가 계속되고 있었다.

“여보! 여기 좀 봐요!” 해 뜰녁, 강바람을 타고 온 싸늘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정원 잡초를 정리하던 나를 다급히 찾는 아내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가득 차 있었다. 길가 정문 쪽이었다. 황급히 달려 간 나에게 아내는 우편함을 가르켰다. 정문 돌계단 입구에 검은 봉을 허리 높이까지 세우고 달아 놓은 하얀 색 우편함은 작고 예쁘게 디자인된 철제품이다. 주간 신문크기 정도를 투입할 수 있는 한뼘 가량의 좁은 입구와 열쇠로 채워 놓은 출구는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비교적 넓다.

아내가 가르키는 우편함 속을 들여 다 본 나는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새 알 이잖아…!” 하며 깜짝 놀라고 컴컴한 우편함 속을 위아래로 살폈다. “쉿! 건드리지 마요. 아홉 개 정도 돼요.” 하나 둘 헤아려 보던 나에게 아내는 흡사 유리알에 흠집이나 낼 것같이 우려하며 뒤로 물러서게 하였다.

“아니 이 속을, 편지 한 두개 들어갈 입구인데 어떻게 들어 갔지? 어떤 새가 이렇게 작은 구멍으로 들어 갈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넓이는 한 뼘이지만 길이는 도어록에 카드 긁을 정도로 얇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들새가 있겠지요. 어떻게든 이 작업을 하였잖아요” 해가 떠 오를 때까지 황당한 상황에 의아해 하던 중 아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여보. 그럼 언제부터 이 작업에 들어 갔을까? 이 바닥은 너무 푹신푹신 하잖아” 알을 품고 부화시키려고 둥지를 틀었는데 그 둥지의 두께가 거의 10센티 정도로 두터워 놀라웠다.

차가운 놋쇠 우편함 바닥을 푹신하고 따뜻하게 감싸는 그 성분은 주로 마른 이끼들, 그 위로 실타래 같이 가녀린 섬유더미, 가느다란 꼿대 줄기들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보였다. 그런 것을 새 주둥이로 물어와 이 정도로 깔려면 엄청난 역사였을 것 같은데 우리 눈에 띄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야간작업을 하였을런지도 몰라 하며 그 새가 어떤 새일까 새삼 궁금해 졌다.

“우체부 아저씨. 이곳은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어요. 우편물은 이곳으로 넣어 주세요. 감사 합니다” 우편함 입구에 아내는 메모를 꽂아 두었고 그 후 우편물은 그 옆에 놓아 둔 항아리 속으로 배달되었다.

며칠 후 일요일 오전, 한가로이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여보! 저 새에요.” 하는 아내의 손끝은 우편함 뒤쪽의 목 백일홍 가냘픈 가지에 한들거리며 앉아 있는 두 마리의 새를 가르쳤다. 아! 딱새였구나. 그들은 딱새 부부였다.

딱새는 참새목의 지빠귀과 새다. 단독생활을 주로 하고 몸길이 14㎝정도,몸무게는 17g정도가 된다. 수컷의 정수리와 뒷목은 어두운 잿빛이며 등과 날개는 검고 중간쯤에 흰색이 섞여 있으며 배는 붉은 갈색이다 어미새는 이마에서 배쪽면이 무당새와 닮았고 부리와 다리는 검은 갈색 홍채는 어두운 갈색이다. 둘 다 봄철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

자기들 둥지를 인간이 살았던 흔적이나 집 가까이에 암수 함께 짓는다는 특성이 있다. 세워둔 자동차의 범퍼 안이나, 고장 나 장기간 세워둔 오토바이, 심지어 창문이 열린 집의 책꽂이에 둥지를 튼 경우도 있다고 한다.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버릇이 있다. 곤충이나 나무열매를 쪼아 먹으며, 4∼7월에 5개 이상 산란하고 주로 암컷이 알을 품는다. 까치와 달리 높은 나무끝이나 초목이 우거진 어두운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마디로 인간 친화적인 밝고 행운의 새다.

정원의 딱새부부는 포로록 날아 쇠창살 울타리 끝에 사뿐이 앉아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런 부피로 우편함 입구 틈새를 어떻게 들락 거렸지 하고 나 홀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우편함 쪽으로 다가 서자 짹짹거리며 불안한 듯 분주히 날아다닌다. “알고 있다구. 알고 있어. 너희들의 알은 건드리지 않을 거야 걱정 마” 그들을 보며 안심시키듯 나직하게 말하고 우편함을 열어 보았는데 그 순간 “여보! 여보! 이리 와 보구려!” 하고 놀라 다급히 아내를 불렀다.

거기에는 알에서 깬 새끼 딱새들이 옹기종기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언제 부화했지. 전부 주둥이를 벌리고 있잖아… 열 마리는 될 것 같은데”하며 숫자를 헤아리려 하자 아내는 “빨리 문 닫아요! 너무 밝아 새끼들 눈 다칠지 몰라요”하며 서둘러 우편함 문을 닫고 고리를 채운다. 어미 새는 주위를 뱅뱅거리며 지절거리고 설치고 있었는데 우리는 손자가 태어난 듯 신기했다. 그리고 말없이 그들에게 감사드리고 있었다.

미물이지만 은밀한 잉태와 출산, 그리고 생명을 불어 넣은 이 경건한 작업과 역사는 우리에게도 큰 환희였다. 5월의 산하가 축복받은 것 같았다. 사랑이 가득한 북한 강,들 꽃, 소슬 바람,그리고 온갖 생물이 뿜는 생명의 향기가 코끝을 적셨다. 아내는 두 손을 모우고 기도하고 나는 정원을 배회하며 서성거렸다. “우리에게 이런 창조의 기쁨을 맛보게 하다니…작고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이것 모두가 오직 신(神)의 것만이 아님을…”

이대로 머무르고 싶은 만남의 순간이고 존재였다.



김인호<서울시의사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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