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여기 좀 봐요!” 나를 다급히 찾는 아내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가득 차 있었다….
황급히 달려 간 나에게 아내는 우편함을 가르켰다.
아내가 가르키는 우편함 속을 들여 다 본 나는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새 알 이잖아...!”
하며 깜짝 놀라고 컴컴한 우편함 속을 위아래로 살폈다.
“쉿! 건드리지 마요. 아홉 개 정도 돼요”하나 둘 헤아려 보던 나에게
아내는 흡사 유리알에 흠집이나 낼 것같이 우려하며 뒤로 물러서게 하였다.
이번 봄은 짧고 추웠다. 북한강 기슭에 물안개도 별 피지 않았고 노적봉 잔설도 꽤 오래 갔다.세상도 시끄러워 북한의 김정일은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와 6자회담 탈퇴 등 벼랑 끝 외교 작전으로 굶주린 북측 주민을 달래고 천안암 경계함이 반쪽으로 폭파하며 46명의 해병이 수장되는 뉴스가 계속되고 있었다.
“여보! 여기 좀 봐요!” 해 뜰녁, 강바람을 타고 온 싸늘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정원 잡초를 정리하던 나를 다급히 찾는 아내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가득 차 있었다. 길가 정문 쪽이었다. 황급히 달려 간 나에게 아내는 우편함을 가르켰다. 정문 돌계단 입구에 검은 봉을 허리 높이까지 세우고 달아 놓은 하얀 색 우편함은 작고 예쁘게 디자인된 철제품이다. 주간 신문크기 정도를 투입할 수 있는 한뼘 가량의 좁은 입구와 열쇠로 채워 놓은 출구는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비교적 넓다.
아내가 가르키는 우편함 속을 들여 다 본 나는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새 알 이잖아…!” 하며 깜짝 놀라고 컴컴한 우편함 속을 위아래로 살폈다. “쉿! 건드리지 마요. 아홉 개 정도 돼요.” 하나 둘 헤아려 보던 나에게 아내는 흡사 유리알에 흠집이나 낼 것같이 우려하며 뒤로 물러서게 하였다.
“아니 이 속을, 편지 한 두개 들어갈 입구인데 어떻게 들어 갔지? 어떤 새가 이렇게 작은 구멍으로 들어 갈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넓이는 한 뼘이지만 길이는 도어록에 카드 긁을 정도로 얇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들새가 있겠지요. 어떻게든 이 작업을 하였잖아요” 해가 떠 오를 때까지 황당한 상황에 의아해 하던 중 아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여보. 그럼 언제부터 이 작업에 들어 갔을까? 이 바닥은 너무 푹신푹신 하잖아” 알을 품고 부화시키려고 둥지를 틀었는데 그 둥지의 두께가 거의 10센티 정도로 두터워 놀라웠다.
차가운 놋쇠 우편함 바닥을 푹신하고 따뜻하게 감싸는 그 성분은 주로 마른 이끼들, 그 위로 실타래 같이 가녀린 섬유더미, 가느다란 꼿대 줄기들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보였다. 그런 것을 새 주둥이로 물어와 이 정도로 깔려면 엄청난 역사였을 것 같은데 우리 눈에 띄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야간작업을 하였을런지도 몰라 하며 그 새가 어떤 새일까 새삼 궁금해 졌다.
“우체부 아저씨. 이곳은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어요. 우편물은 이곳으로 넣어 주세요. 감사 합니다” 우편함 입구에 아내는 메모를 꽂아 두었고 그 후 우편물은 그 옆에 놓아 둔 항아리 속으로 배달되었다.
며칠 후 일요일 오전, 한가로이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여보! 저 새에요.” 하는 아내의 손끝은 우편함 뒤쪽의 목 백일홍 가냘픈 가지에 한들거리며 앉아 있는 두 마리의 새를 가르쳤다. 아! 딱새였구나. 그들은 딱새 부부였다.
딱새는 참새목의 지빠귀과 새다. 단독생활을 주로 하고 몸길이 14㎝정도,몸무게는 17g정도가 된다. 수컷의 정수리와 뒷목은 어두운 잿빛이며 등과 날개는 검고 중간쯤에 흰색이 섞여 있으며 배는 붉은 갈색이다 어미새는 이마에서 배쪽면이 무당새와 닮았고 부리와 다리는 검은 갈색 홍채는 어두운 갈색이다. 둘 다 봄철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
정원의 딱새부부는 포로록 날아 쇠창살 울타리 끝에 사뿐이 앉아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런 부피로 우편함 입구 틈새를 어떻게 들락 거렸지 하고 나 홀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우편함 쪽으로 다가 서자 짹짹거리며 불안한 듯 분주히 날아다닌다. “알고 있다구. 알고 있어. 너희들의 알은 건드리지 않을 거야 걱정 마” 그들을 보며 안심시키듯 나직하게 말하고 우편함을 열어 보았는데 그 순간 “여보! 여보! 이리 와 보구려!” 하고 놀라 다급히 아내를 불렀다.
거기에는 알에서 깬 새끼 딱새들이 옹기종기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언제 부화했지. 전부 주둥이를 벌리고 있잖아… 열 마리는 될 것 같은데”하며 숫자를 헤아리려 하자 아내는 “빨리 문 닫아요! 너무 밝아 새끼들 눈 다칠지 몰라요”하며 서둘러 우편함 문을 닫고 고리를 채운다. 어미 새는 주위를 뱅뱅거리며 지절거리고 설치고 있었는데 우리는 손자가 태어난 듯 신기했다. 그리고 말없이 그들에게 감사드리고 있었다.
미물이지만 은밀한 잉태와 출산, 그리고 생명을 불어 넣은 이 경건한 작업과 역사는 우리에게도 큰 환희였다. 5월의 산하가 축복받은 것 같았다. 사랑이 가득한 북한 강,들 꽃, 소슬 바람,그리고 온갖 생물이 뿜는 생명의 향기가 코끝을 적셨다. 아내는 두 손을 모우고 기도하고 나는 정원을 배회하며 서성거렸다. “우리에게 이런 창조의 기쁨을 맛보게 하다니…작고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이것 모두가 오직 신(神)의 것만이 아님을…”
이대로 머무르고 싶은 만남의 순간이고 존재였다.
김인호<서울시의사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