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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정(情) 오는 정(情)
가는 정(情) 오는 정(情)
  • 의사신문
  • 승인 2009.02.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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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 이정균 원장
1960년 초겨울 대하소설 `대지'의 저자 펄벅여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여행길 시골에서 지게에 볏단을 짊어진 농부가 소달구지 곁에서 걸어가고 있는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 농부가 달구지를 타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던 것이다.

펄벅은 1963년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를 출간하면서 그 책의 머리에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했는데 첫번 여행의 정겨운 장면을 게재한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병(甲申政變)(우정국사건)이 일어나 중상을 입었던 민영익(閔泳翊)을 비롯하여 많은 고관들을 치료하였던 호레이스 엔 알렌(Horace N. Allen)은 “한국인들은 정이 넘치는 국민”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퇴원 후에는 한국 최초 서양의술의 병원인 광혜원(세브란스병원의 전신) 앞뜰을 새벽에 달려와 비를 들고 정성스럽게 청소를 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하였다는 일화를 전하고 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마리 키스타브 클레지오는 수상하기 전 1년여 한국에 체류하면서 문학작품을 썼다. 그는 `정', `보람'이란 단어는 영어나 불어로 옮길 수 없다. 합당한 단어가 없다고 했으니 한국인의 정서를 심도 있게 관찰했던 문학가였다.

정보화시대라 한다. 초고속 정보화시대 한국인은 정(情)이 많은 국민이라 한다. 정보(情報)는 정을 보답(報答)한다 했다. 우리는 정보화시대 우리의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정이 넘치는 국민이니 정보화 시대에는 그 으뜸이 되지 않겠는가 했었다. 과연 IT강국이 되었지 않는가. 우리 선조들은 양식이 떨어져 끼니를 잇지 못하게 되면 새벽녘에 부잣집 마당을 쓸어주면 부잣집 영감님은 쌀을 퍼주던 그런 심성을 지닌 민족이었다.

정(情)은 끈이다. 굶어도 정만 있으면 화목하게 살고, 정이 들면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 했으니…정이 원수라고 한탄하나 정을 끊는 칼은 없다.

우리는 전쟁시절에도 정을 주고 정을 받으며 살아왔고 살아남은 국민이다. 정이 식으면 하루만에도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한다하나… 정은 오는 정, 가는 정 품앗이다. 외길이 아니다.

우리는 정에 약한 민족, 마음이 굳어 생겨난 소중한 유전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요소가 정이 아니겠는가. 정(情)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事物)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 `서로 사귀는 정의(情誼) 특히 남녀간의 애정(愛情)',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참된 생각' 그리고 `정실(情實), 정황(情況)'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정을 감동적 마음의 요소란 심리학적 설명이 더 합당할 듯 싶다.

의사는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들이다. 환자(患者)의 환(患)자를 파자하면 꿰맬관(串)자와 마음심(心)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야 한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정조(正祖)의 홍재전서에는 “좋은 말은 반드시 모두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 할 수 없다. 마음이 좋아야 사람이 좋고, 사람이 좋아야 말이 좋게 마련이다. 말은 가려해야 하고, 마음은 넓고 굳세어야 하며, 뜻은 높아야 하고 진실해야 하고 학문은 힘써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정에 관한 격언, 속담, 이야기, 노래가 수없이 많다.

정은 돌도 녹인다. `정에서 노염이 난다'는 격언에 이르면 정다울수록 언행을 삼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 전통적 생활관의 덕목이었다. 말?말?말 탈도 많고 `말썽수준의 말', `송곳언어', `비속어'와 `저속어'의 난무는 우리 조상들의 격언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에 이르면 `말 잘하면 천냥을 번다'로 해석될 수도 있는 세상, 마음이 문제인 것 같다. 진정 위로의 한 마디가…

정(情)이 메말라 가고 있다. 정(情)이란 노래를 부른 가수도 수없이 많다. 한때 경영학 교과서에는 조용필이 부른 정(情)을 좋아하면 구세대요, 영턱스가 부른 노래를 즐겨 부르면 신세대라고 쓰여 있던 때도 있었다.

차가운 사이버 공간에 익숙한 젊은이들, 정주고 사귈 이웃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더더욱 고민해야 될 공통과제가 아닐까.

경제 금융위기의 하늬바람은 직장인들이 올해의 사자성언에 은인자중(隱忍自重)을 뽑게 하였고, 이는 `괴로움을 참고 견디자'는 의미이다. U.S today는 경제난으로 아무리 고통이 커지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감사해야 할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내집, 내가족은 그자체가 빛이고 힘이기 때문이라고 써내려갔다.

가족은 화롯불이라고 했다. 오순도순 온정이 오가고 사랑이 무르익어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우보천리(牛步千里), 느리지만 뚜벅뚜벅 소걸음으로 천리길을 끝내는 삶의 진정한 기쁨과 희망의 터널 끝이 보일 것이다.

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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