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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길도 `암초길'…덕분에 반나절의 여유 즐겨”
“귀국길도 `암초길'…덕분에 반나절의 여유 즐겨”
  • 의사신문
  • 승인 2010.11.0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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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권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5>-2〉

귀국 항공권이 제대로 발급 안돼 누리게 된 반나절의 나이로비 투어 중 국립나이로비 박물관 앞에서.
산에서 내려와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서는 내가 더 지쳐갔었다. 키보봉의 분화구를 지나면서부터의 하산길은 지루하기까지했다.

고공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멋졌지만 황량한 산 그 자체로서는 볼품이 없었다.
화산재 쌓인 경사로를 따라 지그재그로 한없이 이어진 이길을 어떻게 6시간 이상이나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어둠속에서, 긴행렬에 파묻혀 멋모르고 따라서 올랐겠지.

그길을 이제사 이재일 회장이 오르고 있었다. 새벽의 상황이 떠올라 괜찮으시겠냐고 하니, “난 올라가야해!”하며 결연한 모습이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던 키보산장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널부려져 누워있다. 모두들 지쳐있었지만 마냥 이곳에서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방도 비워줘야 했고 해저물기 전에 호롬보로 되돌아와야 했다. 호롬보산장에 도착하니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김철수 대원이 반기며 방배정을 도맡아 하고 카고백까지 일일이 챙겨준다. 식당에 모여 등정을 서로 축하하는 축배를 들고 곧바로 슬리핑백속으로 빠져든다. 아프리카에서의 가장 꿀맛같은 단잠이었다.

이튿날 아침, 포터들이 따뜻한 세숫물을 문앞에 대령하고 있다. 해발 3720m에서 대단한 호강이다. 날도 화창하고 몸도 개운해졌다.

호롬보산장 뒤편의 키보와 마웬지봉을 배경으로 대원15명이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는다. 우후루피크 정상에서 쓰려고 따로 만들었지만, 내 배낭속에서 잠자던 정상등정기념깃발을 이제야 펼쳐보인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하산이다. 올라오면서 이미 익숙해진 풍경인데 내려오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본다. 오늘은 구름을 내치고 산 정상을 다 보여주고있다.

몸이 회복되었는지 평소의 습관대로 하산을 서두른다. 만다라산장을 지나 마랑구게이트까지 내쳐 내려오니 아직 포터들도 내려오지 않았다. 마지막 대원이 하산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산행을 마감하고 포터들과 헤어진 후, 모쉬의 아담한 숙소, 임팔라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호롬보산장에서의 고소적응 일정을 생략하여 생긴 하루일정이었다.


화산재 쌓인 경사로 따라 하산하며 이길 어떻게 올랐나 감탄
키보산장으로 복귀 후 모두 모여 축배 들고 단잠에 빠져 들어
순조롭던 일정에 악재…항공권 발급안돼 8명 하루 더 묶게돼
남겨진 일행들에겐 `반나절의 나이로비 투어' 보너스로 여겨



오랜만에 제대로 씻고 다시 한번 정상 등정을 자축한 후, 충분히 수면을 취하니 대원들 모두 생기가 돌아온다. 공항으로 이동하기전에 선물도 고를겸하여 쇼핑에 나섰다. 모쉬의 재래시장에 들러 그네들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느끼고, 눈여겨 두었던 탄자니아산 커피와 티를 구입하고 토속공예품점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줄 흑목 조각품들을 골랐다.

그렇게 순조롭게 흐르던 일정이 킬리만자로공항에서 꼬이기 시작하였다. 일행 중 7명만 인천공항까지의 항공권이 제대로 발행되고 8명은 나이로비에서 해결하라면서 그곳까지의 항공권만 받았는데, 막상 나이로비에 도착하여 받은 홍콩행 항공권에는 출발날짜가 하루 지연되어있었다. 그나마 7명이 탈 비행편도 8시간 지연된단다. 말로만 듣던 항공지연사태가 이역만리 아프리카에서 우리에게 닥친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케냐항공에선 정원 외로 오버부킹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의 일정이 추석연휴와 겹쳐서 동양권의 승객들이 많이 몰리다보니 이리된 듯하다. 한두명도 아닌 8명이니 무작정 항의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어서 케냐항공에서 제공하는 호텔로 순순히 따라나선다. 케냐항공을 피하고 두바이를 경유하는 아랍에미리트항공만 이용한다는 현지교민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홍콩-인천간의 항공편이 확보됐다는 연락을 새벽에 서울의 담당자로 부터 받았다. 그리되면 월요일 새벽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예정이니 월요일 진료는 가능할 것 같긴한데, 호텔내의 비지니스센터에서 항공티켓을 출력하여 손에 쥐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된다. 해외경험이 많고 회화에 유창한 강인구 대원(대구시 의사산악회 등반대장)이 룸메이트를 자청하며 도와준 것이 큰 힘이되었다.

새벽에 선발팀 7명은 먼저 홍콩으로 떠났고, 남겨진 우리 일행 8명은 사파리 파크호텔에서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다.

이곳은 카지노계의 대부로 유명했던 파라다이스그룹의 전락원 회장이 아프리카에 세운 대규모 휴양시설이라한다. 아프리카 전속 민속공연을 보면서 기린, 얼룩말, 악어 등의 야생동물고기를 구워 먹는 야외숫불바베큐코스가 인기가 있다니, 먼 훗날 사파리할 기회가 있다면 다시 들러 볼 만도 하겠다.

보너스로 주어진 반나절의 나이로비투어를 켄코투어에 부탁하였다. 항공지연사태로 함께 노심초사하던 여사장이 몸소 가이드로 나서주었다. 주5일제근무의 주말을 맞은 나이로비는 의외로 교통지옥이었다. 인구 400만에 달하는 이도시의 웬만한 소시민들마다 마이카붐이 일었는지, 2차선 도로를 따라 중고 도요타차들이 빽빽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20년가까이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장의 길안내로 국립나이로비박물관에 들어섰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잘 정리된 자연사박물관인데 300만년전 인류의 조상, 루시의 유골이 최근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행운이었다.

매년 전세계의 조류학자들이 몰려온다는 조류박물관도 이곳의 자랑이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무대였으며 실제로 이곳의 커피농장주였기도 했던 여주인공 카렌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적한 교외지역 카렌에서 청동조각전시장을 들러보았고, 기린농장에서 잠시나마 사파리기분에 들뜨기도 했다.

거리에는 케냐의 국화인 자카란다가 우리 벚꽃나무보다 두배는 큰 키로 가로수처럼 연이어 늘어서있다. 어느덧 다가온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석양아래 자카란다의 보랏빛 물결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박병권<킬리만자로 원정대 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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