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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토록 멋진 산을 올라 갔다 왔구나!”
“우리가 저토록 멋진 산을 올라 갔다 왔구나!”
  • 의사신문
  • 승인 2010.11.0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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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권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5-1〉

호롬보 산장 뒤편 키보와 마웬지봉을 배경으로 정상 등정 기념 단체사진.

산에서 내려와  `저토록 멋진 산을 다녀왔구나!'

하산 후에 모쉬의 외곽에서 바라다보이던 킬리만자로의 전경, 아침햇살에 빛나는 만년설과 함께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펼쳐져 있었다.

`내려오고나니 더 멋져 보이다니! 다시 오를 수도 없고, 최소한 4박5일이 더 필요할테니.'

눈앞에서 아른거렸던 우후루피크의 모습만큼의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킬리만자로등정의 밑그림은 2년전부터 그려졌었다. 열흘동안이나 외래를 비우기가 쉽지않은 우리 개원의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추석연휴가 절호의 기회였다.

지난 9월18일 오전 7시30분에 인천공항에 집결하여, 3시간30분의 비행후의 홍콩공항도착,9시간의 홍콩체류,방콩을 경유한 13시간의 비행끝에 나이로비공항, 또다시 4시간의 대기 후에 케냐국적의 국내선으로 1시간거리의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 도합 4번의 이착륙,서울을 떠난지 30여 시간만에 드디어 아프리카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 먼거리 만큼이나 순탄치 않은 과정이 있었다. 출발을 불과 한달 앞두고, 이제와서 항공권을 도저히 못 구하겠다며 두손 든 국내여행사에 대하여 분노만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킬리만자로 등정의 결연한 의지로 뭉친 15명 원정대의 열기를 이대로 식힐 수는 없었다.

항공사와 관련된 모든 인맥을 총동원한 끝에 이재일 회장으로부터 항공권을 가까스로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부터는 아프리카 일정만 해결하면 되었다.

나이로비에서 주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여행사를 운영하는 켄코투어와 연결이 되었다. 해외산행의 경험이 많은 인천의 홍성훈 원장의 소개 덕분이었다.

마랑구루트의 산장예약부터 시급했다. 나머지 사항들도 켄코투어의 기숙희 사장과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하나하나 준비해나갔다.

먹는게 제일 신경쓰였다. 산장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음식이 서양식인데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겠고, 고산증세까지와서 식욕이 더 떨어지면 체력에 문제가 생긴다.

우린 밥힘으로 가야하는데, 다행히 현지에서 압력밥솥이 준비된다니 반찬만 준비해가면 먹거리가 해결될 듯하였다. 김치에 된장국,미역국,각종 통조림 등의 부식을 준비하니 카고백으로도 하나 가득이다.

황열병 예방접종과 말라리아 예방약 복용을 챙기고 탄자니아비자도 주한명예영사관을 통해 서울에서 미리 준비하고 여행자보험까지 가입하고나니, “우리도 여행사 차리자!”는 농담이 오고갈 정도다.

9월3일 서울시의사회관에서 킬리만자로 해외원정등반 발대식을 갖고 드디어 장도에 올랐다.
그래도 마음속 한켠에 조금 남아있던 불안감은 SEOUL DOCTOR'S TREKKING라고 쓰인 피켓을 든 현지여행사 직원 찰스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사라졌다. 이제부턴 저들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가기만하면 되니까….

산행 첫날은 마랑구게이트로부터 3시간정도 열대우림지역을 지나 만다라산장(2700m)에 이르고 이후 하루1000미터씩 고도를 올리는 진행이었다.

산행 둘쨋날엔 호롬보산장(3720)까지 광활한 초원지대를 통과하고 다음날 호롬보산장을 벗어나면서부터는 황무지였다.

오후에 키보산장(4703m)에 도착하니 머리가 가끔 지끈지끈하는데 고소증상이 오려는 것이 아닌지 은근이 걱정이 된다.

호롬보 산장을 출발, 킬리만자로를 향해 등정 중 기념촬영.

밤12시부터 등정에 돌입하니 몇시간이라도 잠을 자둬야하는데 좀처럼 잠이 안오고, 계속 뒤척이다가는 다른 대원들의 수면까지 방해될까 싶어 이층침대에서 내려와 산장 밖으로 나온다.

추석 전날이라 달도 밝고 별이 총총하다. 밤11시에 전원기상하여 최종 점검을 한다. 밖은 영하20도라니 옷부터 잔뜩 껴입는다.

쿡에게 특별히 준비시킨 누룽지와 미역국으로 요기를 하려고하지만 식욕이 떨어져 두모금을 채 넘기지 못하겠다.


하산후 모쉬 외곽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아침 햇살에 빛나
눈앞에서 우후루피크의 모습 아른거려 또 오르고 싶은 갈망
많은 우여곡절 끝에 등정해 더 애착가는 킬리만자로의 숨결


먼저 출발한 팀들의 헤드라이트가 정상을 향하여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고소증세에서 회복이 안된 김철수 대원을 산장에 남기고, 드디어 우리팀 14명도 긴 대열에 합류한다.
그런데 출발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아 이재일 회장님한테 문제가 생겼다. 어지러워 도저히 걸을 수 없다고 한다.

총책임자인 앤드류에게 잠시 쉬어 가자고 제의해보지만, 닥터리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13명은 그대로 진행을 시킨다.

원래는 5명씩 3개조로 나누어 내가 중간팀을 이끌기로 했었는데, 황급히 2개조로 재구성하여 선두는 서윤석 고문님이 이끌고 내가 후미팀장을 맡았다.

선두로부터 번호를 부르며 오르면서 인원을 점검하고 가끔씩 “서의산화이팅”을 외쳐 서로를 독려해나갔다. 구령소리가 점차 작아지고 끊기면서 선두와의 거리가 더 벌어지고 급기야 다른팀과 뒤섞이면서 후미대열이 무너져갔다.

아직 컨디션은 괜찮았다. 이대로만 가면 길만포인트를 지나서 우후루피크까지 어렵지않게 다녀오겠지싶은 자만심이 들 정도로…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길만포인트를 100m쯤 남겼을 즈음인가, 거짓말처럼 갑자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잠시 숨고르기를 하여도 회복이 되지 않는다.

당황스러웠지만 `뽈레뽈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쉬며 오르며를 반복해나갔다.
그사이 건너편에선 마웬지봉아래의 운해를 뚫고 태양이 떠오르며 장관을 이룬다. 주위가 밝아오면서 앞서 오르던 신동엽 대원이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부른다.

길만포인트에 오르니 이제부터는 급경사없이 완만하여 안심이 되는데, 역시 고도가 문제였다.

박상욱 대원과 더불어 셋이서 후미를 이루며 진행하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데, 신 원장은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박상욱 대원을 먼저 보내고 신 원장과 단둘이남아 쉬엄쉬엄 가고 있는데, 이제보니 배낭도 없이 양손에 스틱만 들려있다. 가이드가 도와준답시고 대신 짊어지고 저 멀리 가버렸는데, 물도 없어 못 마시고, 더구나 사진작가가 카메라마저 빼앗겼으니 의욕마져 사라질까봐 걱정스럽다.

오늘을 위해 400만원이상들여 새로 장만한 카메라였다는데. 나역시 대비가 소홀하여(이 또한 고소증세였겠지만) 물이 모두 얼어붙어, 주머니에 소지하고 다니던 파워젤을 나눠먹으며 겨우 허기만 달랜다.

다른 루트로부터 스텔라포인트로 줄지어 오르는 행렬이 보인다. 키보의 남사면으로부터 빙하가 모습을 드러내고 분화구 우측끝으로 우후르피크가 아른거린다.

갑자기 신 원장이 눈앞에 헛것이 보인다고 한다. 예측컨데,졸다가 언뜻 눈을 떳을 때 그늘진 바위들의 형상이 기괴한 `동물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하면서도, 아니야,혹시라도 이건 더이상 가지말고 빨리 하산하라는 계시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무게가 실렸다.

하루전 호롬보산장에서 일찌감치 고소증세가 있었던 것도 마음에 걸린 터였다.(미련이 남아,며칠후 질문을 던졌다.”그때 끝까지 가자고 했으면 어쩔뻔했어요?”-“아마도 쭐레쭐레 갔을거야,근데 뭔일 생겼을지는 나도 모르지.” -하기사 나도 모를 일이다.)


박병권<킬리만자로 원정대 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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