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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라면 독배마시겠다
악법도 법이라면 독배마시겠다
  • 김향희 기자
  • 승인 2009.02.20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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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라면 나는 소크라테스가 되어 독배를 마시겠다”

박상근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원외처방 약제비 관련 법적 쟁점’을 주제로 진행된 제11차 심평포럼에서 토론자로 참석해 강력한 어조로 정책당국에 대해 비수의 한마디를 날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송재성) 심사평가정책연구소 주최로 19일 고려대학교 100주년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유독 ‘악법도 법’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원외처방 약제비 관련 판결의 의미를 법적으로 해석한 이날 포럼은 주제발표와 지정토의,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1부에서는 명순구 교수(고려대 법학과)의 주제발표에 이어 2부는 건보공단 김홍찬 급여조사1부장, 대한병원협회 박상근(인제대 백중앙의료원장) 보험위원장, 건강세상네트워크 양승욱(변호사) 자문위원, 분당서울대병원 이경권(변호사) 의료법무 전담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해 원외처방 약제비 관련 법적쟁점에 대한 토론을 펼쳤으나 여전히 첨예한 시각차를 보였다.

의료계 당사자격으로 참석한 박상근 보험위원장은 “차를 몰고 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었다면 그냥 멈춰서야 하느냐? 아니면 지나가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의사의 진료가 이처럼 환자 상태를 고려한 최선의 진료를 가장 우선시해야 하지만 무조건 노란불이니 멈춰라는 법규정만을 적용하고 의사의 소신 진료는 간과돼 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라며 “애청자가 난을 샀는데 물을 얼마나 자주 줘야하냐고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문득 든 생각은 ‘3일에 한번?’이라고 생각했지만 전문가의 답변은 ‘화분의 흙도 만져보고 잎 색깔도 보고 결정하라’고 말하더라. 순간 진료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가 흙도 보고 잎도 관찰하는 것이라면 ‘3일마다 물주는 것’이 바로 ‘획일화된 법 규정’이다”고 비판했다.

특히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선량한 의사를 범법자로 전락시켜 환자와 의사 간 불신을 조장하는 의료현실을 지적하며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최선이냐는 측면에서 정책이 운영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처분이나 과도한 규제가 능사는 아니라며 임상현실을 반영하는 기준 개선과 또 의약분업이 ‘약의 오남용 방지’ 대안으로 과연 맞는 것인지, 의약분업 제도의 타당성에서도 이제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주제발표자로 나선 명순구 교수는 “서울대병원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이루어진 원외처방 약제비 판결에서 민법학자로서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견해로 접근, 판결문을 중심으로 과연 민법에 합치하는 판결인지를 집중 분석했다”며 “과연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의 법적 타당성은 있느냐의 문제에서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료계 쪽으로는 부정적인 내용이라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명 교수는 “요양급여기준은 강행규정이고 따라서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했다면 그 행위는 위법하다고 인정될 수 밖에 없다”며 서울지법의 판결은 이런 위법성 부분을 간과한 채 귀책사유 요건과 고의 과실요건을 느닷없이 섞어놓고는 '환자에 대한 고의 과실이 없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다'고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법에 반하는 위법성을 인정하면서 환자행위를 위한 정단한 사유를 첨가하는 것이 민법상으로는 맞는 법적인 근거라는 설명.

이어 명 교수는 “소위 말하는 원외처방 약제비 관련 제도가 ‘악법도 법이다’ 정도의 제도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대립, 평행선을 긋고 있는 이해관계 집단들의 공허한 싸움보다는 건설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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