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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킬리만자로', 비행기안에서 모두들 '탄성'
'아! 킬리만자로', 비행기안에서 모두들 '탄성'
  • 의사신문
  • 승인 2010.10.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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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No. 2-1

▲ 서울시의사산악회 킬리만자로 원정대의 위풍당당한 모습.
2. 산에 오르며

 
첫째 날 9월18일 토요일 맑음. 아침 7시30분 인천공항에 모여 발권하고 짐을 부치고 출국수속을 밟았다.  홍콩(9시간 체류)과 방콕을 거쳐 19일 새벽6시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10시20분에 70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로 바꿔타고 킬리만자로공항을 향해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아프리카는 드넓은 벌판에 밭과 초원뿐이었다. 원시인류의 고향이지만 문명의 혜택을 가장 늦게 받은 검은 대륙, 내전으로 인해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고있는 곳.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갑자기 한쪽에서 탄성이 나왔다. “킬리만자로다!” 산 정상이 흰구름에 쌓여있는 거대한 산이 우리 바로 아래 보였다. 가슴이 뛴다. 드디어 탄자니아 땅 킬리만자로공항에 도착했다.

한 흑인이 `Seoul Doctor's Trekking' 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현지대행사 직원인 찰스였다. 안내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대륙의 들판을 달린다. 의외로 풍요로운 들판이었다. 해발고도가 1000m가 넘어서인지 날씨도 적당히 선선하고 우리의 가을 풍경과 흡사했다. 황량한 벌판에 때때로 옥수수밭과 소 염소 등을 방목하고 있는 초지가 보인다.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벌판을 곧게 가지르는 아스팔트길을 한참 달렷다.

`모시'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킬리만자로 남쪽 기슭 해발 800m의 고지에 위치해 있고 인구 16만명의 커피 옥수수 바나나 등 야채의 집산지인 동시에 킬리만자로 등산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곳의 깨끗한 식당에서 오랫만에(기내식만 다섯끼를 먹은 후인지라) 점심을 잘먹고 다시 출발했다. 거리는 마치 장날인 것처럼 매우 활기차 보였다.

마랑구게이트(1980m)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카고백에서 필요한 장비를 꺼내 등산준비를 하는동안 나는 현지 대행사 사장인 앤드류에게 미리 준비한 잔금을 달러로 건네주고 입산수속을 기다렸다. 잠시 후 앤드류가 내려오더니 산장숙박료(식사포함)를 비자카드로 결제해야 된다고 전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아마도 현금이 오고 가면 부정이 있을수 있기 때문에 카드결제만 허락하는 모양이었다. 서윤석 고문께서 마침 비자카드가 있어 거액을 결제하고 대신 현찰을 다시 받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대원모두 입산수속을 마치고 가이드와 첫 미팅을 가졌다. 메인가이드 아이작, 에베레스트 등반경험이 있는 가장 키가 크고 강하게 생긴 맥시, 약간 뚱뚱하고 선하게 생긴 앨리스, 쿡대장 조슈아…. 드디어 오후 3시가 지나 등산을 시작했다.서울을 떠난지 무려 36시간동안 비행기와 각 공항에서 제대로 휴식 한번 하지 못 하고 바로 등산을 시작하려니 대원들의 건강이 약간 염려되었다.그러나 모두들 약간의 긴장과 호기심 때문인지 피로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 마휀지 리지에서 바라본 마휀지봉(우측).

나이로비공항에 19일 도착 다시 킬리만자로행 비행기 갈아타
비행 마치자 마자 휴식없이 해발 2750m 만다라 산장으로 등산
등정 기대감에 아침 일찍 기상, 찬 공기와 붉은 햇살에 몸 맡겨

만다라 산장(2750m)까지 가는 길은 약 4시간 정도의 길고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주위엔 우리나라 수령개념으로 500년정도 되는 거대한 나무들로 꽉차 있었다. 열대우림지역이다. 몇 개의 작은 폭포가 있는 개울을 따라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었다. 가끔 원숭이도 보이고 때론 개미에 물리기도 하면서 이끼처럼 생긴 기생식물에 둘러쌓인 나무숲을 지나 3시간 정도를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가 헤드랜턴을 카고백에서 미쳐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깨끗한 아프리카의 대기가 달빛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안겨주었다. 그것도 추석을 3일을 남겨두었으니 보름달에 가까웠다.

오후 8시경 산장에 도착했다. 배정받은 방은 2층침대로 되어있었으나 15명이 자기엔 너무 좁았다. 이용배 부대장이 가이드에게 이야기하여 또 다른 방을 하나 더 배정받았다. 이 부대장은 원정기간내내 유창한 영어로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오리털파카를 꺼내 입을 정도로 밖은 추웠다.산장안엔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불이 들어오지만,난방은 되지 않아 샤워는 전혀 할 수없고 세수 정도만 가능했다. 간단한 현지 식사(스프, 식빵, 밥, 우리가 가져간 김치 등)와 위스키 몇잔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킬리만자로에서 첫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서울을 떠나 처음 두 다리뻗고 누워 보는지라 오리털 침낭안은 너무 편안했다.

둘째 날, 9월20일 월요일 맑게 갬. 일찍 잠이 깼다. 아직 태양은 떠오르기 전이다. 차가운 공기와 붉은 햇살이 만다라 산장을 가득 채운다. 밀림속에 여러개의 숙소들이 자리잡고 있고 각각의 숙소엔 10명정도 잘수 있는 방이 6개정도 들어 있었다. 1시간정도의 여유시간에 사진도 찍고 짐정리도 한 후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정효성 대원이 자리에서 나오다가 의자에 걸려 넘어지면서 머리를 벽 모서리에 부딪혔다. 오른쪽 눈 옆이 2cm정도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대구에서 산부인과를 하는 강인구대원이 능숙한 솜씨로 지혈을 한 후 압박붕대로 잘 치료해 주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눈을 다치는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 그러나 등산내내 정효성대원은 불편한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물병에 물을 채운 후 다시 숲속을 걷기 시작했다. 약 한시간 걸었을까. 나무는 바싹 키를 낮춘다. 사람 키 높이의 관목과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린 전형적인 사바나지역이 나타났다. 드넓은 초원에 제주도의 기생화산과 비슷한 여러개의 오름들이 보였다. 로베리아 라는 이름의 예쁜 꽃, 약초로 쓰인다는 허브향이 그윽한 풀….

구름이 멀리 발 아래 보이고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다. 킬리만자로에서 아니 세상 그 어느 초원보다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마휀지 봉(5419m)이 구름에 살짝 가려 우측에 보이기 시작한다.케냐산(5199m)다음가는 아프리카 제 3봉으로 모든사면이 침식작용에 의해 가파르고 험준했다.

오후1시경 점심시간이 됐다. 삼삼오오 모여 산장에서 가져온 점심 비닐봉지를 꺼낸다. 닭다리한개, 빵, 과자, 오렌지쥬스, 바나나 한개. 먹을만했다.

길을 걷다가 포터들이 오면 우린 한쪽으로 길을 내어주곤 하면서 천천히 계속 걸었다. 숨이 조금씩 가빠진다. 킬리만자로의 특이한 나무가 눈에 띄었다. `세네시오 킬리만자리'라는 나무로 맨 위의 잎은 선인장같이 넓쩍하게 생겼고 그 밑의 잎은 말라서 줄기를 감싸면서 수백년간 살아간다는 기이하게 생긴나무였다. 아이작 이야기로는 저나무가 자라는곳엔 물이 반드시 흐른다고 했다.

오후 5시경 세네시오 킬리만자리 군락지가 자주 보이며 오른쪽으로 꺽이는 언덕에 오르니 호롬보산장(3720m)이 바로 코앞에 보였다. 검은색 지붕에 산장이 열댓개정도 모여있었다. 우리는 아래층은 식당이고 2층에 침실이 있는 곳에 숙소 배정을 받았다. 그동안 열심히 대원들의 모습과 풍경을 사진 찍느라 고생이 많은 신동엽 대원이 갑자기 고열이 났다. 고소병의 하나다. 가져간 약과 장원영 대원의 능숙한 혈관 주사로 조치를 취한 후 밖으로 나왔다. 산장뒤로 오른쪽엔 마휀지 봉이, 왼쪽엔 우리가 가야 할 킬리만자로 정상인 키보 봉이 흰 얼음을 덮고 있었다. 산 아래엔 구름이 가득했고 푸른 하늘엔 달이 떠 있었다.
 

 
 이재일<서울시의사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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