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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인사
배꼽인사
  • 의사신문
  • 승인 2010.10.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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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성 <성북구의사회 회장>

▲ 노순성 회장
'엄마 안아 주세요∼ 엄마 안아 주실래요? 엄마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지난 주말 홍천의 모 레저타운에 노부부, 아들내외, 손자랑 놀러갔다가 필자가 운전하는 귀갓길에 폭우로 도로의 정체가 심했습니다.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한참 잠자다 깨어난 손자가 갑갑한지 안아 달라고 애원하는 말을 듣고 귀엽기도 하고 어른스러움에 놀랍기도 해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항상 미소를 머금고 과묵한 우리 장남은 집안의 장손입니다.

결혼 후 5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1달 전 귀국하여 국내 취업되어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공부에 지장 없게 2년 4개월 전에야 득남을 하여, 독립심을 키운다고 잘 안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소 교육시키기를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아빠 또는 엄마 ○○ 해주세요! △△ 해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애원하면 들어주었다고 하네요.

작년 5월 손자 돌잔치로 잠시 귀국했을 때도 항상 실글벙글 신나게 놀다가도 `배꼽인사', `사랑해요', `아이러브 유'를 잘하여 귀여움을 많이 받았지요. 고개만 까딱하는 인사를 까딱인사, (목)덜미 절이라고 하고, 배꼽이 있는 부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겹쳐 모으고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하는 인사를 배꼽인사라 한다지요. 엄마가 가르치지 않아도 평소 인사를 잘하는 엄마를 보고 또 행실을 보고 따라 배운다 하지요. `사랑해요' 하면 두 손을 머리 뒤로 올려 하트모양을 그리고 `아이 러브 유' 하면 양팔을 앞가슴 위에 교차시키고 몸을 좌우로 흔듭니다.

돌잔치 날 축하객들에게 `우리아이가 자라서 항상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성원과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하고 인사하였습니다.

아이 氣를 살린다고 천방지축 아무데서나 날뛰어도 방치하는 젊은 부모를 보면 嚴父出孝子 嚴母出孝女(엄한 부모 밑에 효자 효녀 난다)를 말해주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희 어머니로부터 `항상 양보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형제간의 우애가 제일 중요하다',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아라' 라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평생 병으로 골골거리셨지만 단 하루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지요.

사업을 하셨던 큰외삼촌께서는 종종 놀러 오셔서 `윗사람이나 어른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하거라, 인사만 잘해도 성공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학창시절을 항상 웃으며 안분지족하고 살았습니다.

동생들도 형들에게 경어를 쓰고 예절이 바르게 자랐습니다.

50년 전 홀로 되신 어머니(89세)를 모시고 7남매가 의좋게 오순도순 정과 사랑이 넘치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지금껏 해왔으며, 모두들 결혼 후에도 월1회 이상 신바람 나는 가족모임을 가져왔습니다.

지난 20년간은 병약하신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년 3회 이상 국내여행, 격년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지요. 고맙게도 신앙심이 강한 넷째 아우가 모든 계획과 준비를 해주었고 절반은 혼자서 실행해 주었습니다.

지난 봄 저희부부가 시카고 아들 방문 중 할미가 몸살로 며칠간 누워 지내는 동안 아들부부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고는 성현의 말씀을 읊조렸습니다. 種瓜得瓜 種豆得豆(오이 심은데 오이, 콩 심은데 콩난다) 孝於親子亦孝之(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효도하고) 身旣不孝子何孝焉(내가 이미 효도하지 않았다면 자식 어찌 효도하리) 孝順還生孝順子(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효도하고 순한 자식 낳고) 춊逆還生춊逆子(불효한 자 또한 불효자를 낳는다)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께서 증손자의 `배꼽인사', `사랑해요', `아이 러브 유' 재롱에 파안대소하시며, 사내답게 씩씩하게 놀면서도, 절도 있고 예의 바르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길에 현관까지 쪼르르 달려 나와 90도 각도로 배꼽인사를 하네요. 씨 뿌린 대로 거두시는 것 같습니다.

노순성 <성북구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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