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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보로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알렉산더 보로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 의사신문
  • 승인 2010.09.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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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악으로 그려진 중앙아시아의 초원

보로딘은 오케스트라 악보의 첫 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끝을 모르는 중앙아시아의 광야로부터 향수에 젖은 아련한 선율의 평화스런 러시아의 노래가 들려온다. 낙타의 발굽소리가 동양의 가락과 함께 멀리서 들려온다. 저 멀리 한없이 걷고 있는 카라반 행렬의 낙타 발굽소리에 섞여 낯선 바람이 들려주는 동방의 노래와 함께 상인들은 점차 멀리 가버린다. 평화스런 러시아인의 노래와 유목민들의 노래 소리가 하나가 되어 초원의 바람 속에 여름을 남긴다. 그들은 아스라이 먼 곳으로 사라져 간다.” 

이 곡은 1880년에 작곡되어 러시아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여 같은 해 10월에 개최된 러시아의 민족적 축제에 의전 반주용 악곡으로 연주됐다. 러시아 민요풍의 선율과 동양적인 선율이 동시에 쓰이고 있는 음악으로 작곡가 자신의 머릿속에 펼쳐진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교향적 회화 형식의 관현악곡으로서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보로딘은 참으로 재주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러시아의 화학자로 음악은 그에게 여가를 즐기기 위한 작업이었을 뿐이었다. 그루지야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의 농노였던 프르피리 보로딘의 아들로 입적되어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났다. 그의 음악에 있어서의 동양적 요소는 이 같은 혈통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중앙아시아적인, 동양적인 이성과 정취가 농후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국민주의로 인해 서구 음악 형식도 다분히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피아노와 첼로를 비롯 여러 악기를 배우고 9세 때 폴카를, 13세 때 플루트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에서 화학과 약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병리학 교수 조수로 근무하며 의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 후 화학연구를 위해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유학했을 당시 서유럽 각지의 음악 특히 낭만파음악을 접하게 된다.

귀국 후 모교의 화학담당교수로 재직하면서 29세 때는 발라키레프에게 작곡법을 배워 음악인으로서 보다 많은 소양을 쌓았다. 그의 권유에 따라 러시아 국민음악에 적극 참여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과학자로서의 교수와 연구, 여성 의학을 위한 많은 사회 활동에 분망했기 때문에 작곡은 휴가나 병으로 누웠을 때에 주로 하는 형편이었다. 이 당시 발라키레프와 큐이, 무소르크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과 함께 러시아 5인조 멤버가 된 그는 국민음악에 동참했다. 리스트로부터 작품에 대한 격찬을 받았고, 1880년 교육계에 파급됐던 반동화정책과 아내의 병으로 창작 활동이 점차 줄어들다 1887년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난다.

러시아 국민학파 5인조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독일오페라를 비롯한 서유럽음악이 압도적이던 당시 러시아음악계에 러시아 국민음악의 확립을 목표로 하는 혁신적 세력으로 대두되어 러시아 음악사상 커다란 구심점을 형성했다. 5인의 작곡가는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창작 및 작곡원리에 따라 각자 개성적인 작품을 썼다.

보로딘은 러시아 역사의 민족적 영웅에서 제재를 구하고, 러시아와의 일체감을 위하여 동방 여러 민족의 음악을 연구하여 동방 음악의 특이한 음계, 리듬, 화성, 선율의 요소를 도입한 동양적 시정이 넘치는 음악을 창출했다. 또한 그는 국민악파의 작곡가로서는 특이하게 실내악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고전적 구성을 나타내는 서정적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 그의 현악4중주 제2번은 지금도 현악 4중주의 수작으로 뽑히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 네미 예르비(지휘), 예테보리심포니(DG, 1989); 에른스트 앙세르메(지휘), 스위스 로망드오케스트라(Decca, 1961);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지휘), 소련 국립오케스트라(Melodya, 1966); 알렉산드르 페드세예프(지휘), 모스코바 방송교향악단(Melodya, 1981);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지휘), 로열 필(Decca, 1992)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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