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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망년
송년·망년
  • 의사신문
  • 승인 2009.01.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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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 이정균 원장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도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세상이다. 길은 넓어져만 가고 있는데 여유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고향이 점점 멀어져만 간다.

흘러가는 강물, 어딘가 바삐 찾아가는 차량들, 바쁜 걸음의 사람들. 현대인들은 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으니 시간은 쪼갤수록 뾰족해진다는 말도 틀리지 않을 듯 싶다. 뾰족한 시간에 찔리는 일은 일상생활에 흔히 부딪힌다.

나의 아침 한강 가 산책길을 찾아가는 길에는 두개의 사거리 교통신호를 만난다. 사거리 교통신호등에는 푸른 눈을 크게 깜빡거렸던 신호등과 눈금이 차례로 꺼지는 보조신호등이 생겼다. 보조 신호등불은 차례로 껴져가면서 남은 시간을 친절하고 편안하게 알려준다고 하지만 점멸등의 등장 이후에는 오히려 건널목을 건너 뛰어가는 빈도가 잦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요사이 전철역에서는 전철 운행정보 안내기가 정류장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는 여유를 앗아갔듯이 건널목에서 차들이 사람을 기다려주는 아량, 주위를 살펴주는 아량도 모두 앗아갔다.

연필심처럼 뾰족하게 깎인 시간 속에 IT의 최첨단 발전에 반하여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때는 언제인가?”라는 넌센스 퀴즈에는 “잠잘 때”라는 해답이 정답이란 대답을 하면서 크게 웃어보는 세상 아닌가.

한해를 보내면서 혹시 잃고 살아온 것은 없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건강한 식생활', `운동' 그리고 `가족과 보낸 시간' 등이 머리를 스친다.

모임시간에 동동걸음하기 싫고 늦게 참석하여 무르익은 파티분위기를 허물고 싶지 않아 망설였다. 결석을 많이 했다. 지난 몇 년간은…

마지막 남은 달력 사각형 시계는 송년, 망년회 스케줄들이 빈칸을 메웠다.

70대 노학동들 모임에선 건강문제가 화두다. “너는 우리 보고 고혈압 환자는 새벽 산책을 삼가라더니 새벽 등산을 왜 하느냐”는 질문이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면 건강에 유익하지만 의사가 하는 짓을 따라하면 망한다”면서 각자 자신에 맞는 운동처방을 강조하였다.

이제 세상은 감성(Feeling), 여성(Female) 그리고 상상력(Fiction)의 시대, 3F의 시대라 하지 않던가. 섬세한 감정, 감각, 부드러움 유연함이 앞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 창조성의 시대다.

농업, 산업화 시대를 살아 온 동창들 노래방 기구가 무용지물이라면…

동부인했던 부인들은 이런 동창회 참석하기 싫다에 이르면…

어느 날 진찰에 허겁지겁 들어오시는 60대 WINE세대 할머니 “글쎄, 우리 `영택이'가 늦게 들어와 약속시간에 늦었습니다” 어리벙벙한 나는 `영택이'라는 아들이 있는 줄 알았으니 그래도 `생전웬수'들 `삼식이', `이식이', `일식이'에 `무식이'라 하지 말고 잘 보아 주시라 부탁하고 그래도 `영택이'들의 건강문제가 최고의 관심사라. 심장병 응급처치를 질문한다. “영택이 외출 시에는 깨끗한 팬티 입혀 내보내는 정성 잊지 마시라” 부탁했다.

또 한해를 보내면서 친구는 이메일로 법정(法頂)스님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시를 보냈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 모두가 한 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한 해 지나면 또 한해가 펼쳐질 것이다. 달도 땅도 그대로이지만 우리 인간만이 강물처럼 흘러간다했다. 지난 세월 기쁨, 분노, 슬픔 그리고 즐거움은 지나가버리는 한 때의 감정일 뿐이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렵고 암울한 시절일수록 만나면 반갑고 볼수록 정든 사람들과 친구들이다. 한해의 고갯길에 서 있다.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경제위기, 연계불황의 시대라 모두들 긴장의 연속이다. 환율, 유가상승 문제가 신문을 장식하더니 어느새 전통 태극문양을 형상화한 한강 동호대교의 야간조명은 다시 점화되어 휘황찬란하다. 강 건너 가로등불은 밤을 낮처럼 밝혀 잔물결 불빛무늬 흔들리며 강심을 밝히고 있다. 새벽을 달리는 강북대로의 바쁜 차들의 움직임은 희망을 주고 있다. 어려운 시절 과학자들의 행복 만들기 캠페인에는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라', `베풀고 살라', `현재에 만족하라', `손해 볼까 걱정하지 말라' 그리고 `TV 멀리하라'고 했다.

새벽 한강을 바라보며 고교동기 송년회를 다시 생각하였다. 고향을 지척에 둔 나는 행복하다. 철조망에 길이 막힌 실향민, 세월이 무심하고 훗날을 기약하기에 너무도 공허한 처지에 비하면 행복하다.

고교야구 전국제패 기민한 투수였던 친구들! 송년회 건배제의에 서울에서 내려온 한양대학 병원장… 나의 이름을 잊었다. 지난 세월이야기 하다가 건배제창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단상을 내려오는 해프닝… 졸업 50주년을 몇 년 전 축하했던 노학동들… 교가를 부르며 옛날로 돌아갔던 즐거운 시간..

흐르는 강물처럼 과거로 또 묻힌다. 희망의 새해를 기원한다.

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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