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7:46 (수)
책도 사람도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헌책방 산책
책도 사람도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헌책방 산책
  • 김향희 기자
  • 승인 2009.01.09 1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香희 기자의 특별한 Book Recipe

원서로 된 전문서적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손바닥이 온통 새까매질 정도로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촌의 ‘공씨책방’이나 청계천과 동대문의 헌책방들, 그리고 부산 보수동까지... 몇 시간이고 그렇게 책 찾아 삼만리를 하고 있노라면 다리에 쥐가 나고 온통 새까만 책 먼지를 감수해야 하지만 또 그 속에서 전공 희귀서적이나 예상치 못한 주옥같은 책을 만나는 기쁨은 헌책방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이겠죠.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에 밀려 동네책방 조차 없어지는 요즘, 그렇게 부러운 마음으로 헌책방 여행을 제안합니다. 어디든 달려가는 책의 수호신처럼 아름다운 책 풍경이 있는 그 공간으로 산책을 떠나볼까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책마을 풍경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정진국 글․사진/ 생각의 나무

“대형서점 같은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장터 같은 곳, 이웃 같은 곳, 작은 찻집이나 미술관이나 품위 있는 서재나 재미있는 놀이터 같은 곳으로, 양떼와 우마가 어슬렁거리는 풀밭과 나무그늘 밑에서 책을 만나고 구하는 그런 전원적인 이미지 속에서 책을 만난다”면 동화 속에서나 펼쳐질 얘기일까. 아니다.

이책의 저자는 현재 유럽 구석구석 보석처럼 박혀있는 24곳의 아름다운 책마을과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헌책방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정감있게 소개한다.

책과 술, 낭만이 어우러진 발레의 ‘생피에르 드 클라주’, 레만 호숫가 대로의 야외서점들로 유명한 주네브의 ‘플랭팔레’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책마을이다.

또 아키텐의 마스 다주네는 프랑스 전국 각지에서 책과 골동품을 들고 1년에 단하루 1일 책마을 축제를 벌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저자는 “우리도 남과 북이 매년 하루만이라도 어느 곳에서든 이렇게 책마을 장터를 벌일수 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바닥에 펼쳐진 책상자 속에서 명성왕후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운현궁’을 만나는 반가움도 전한다.

‘어린왕자’와 ‘로빈슨 크루소’의 양장본 표지를 거대한 조형물로 마을입구에 세운 부르고뉴의 퀴즈리는 동화같은 마을느낌을 전한다.

18세기 풍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로렌의 퐁트누아 라 주트에는 전 세계 책마을의 방향을 가리키는 인상적인 이정표로가 있고 ‘장화신은 고양이’, ‘소설 쓰고 있네’ 등 재치있는 책방이름을 만나는 재미도 솔솔하다.

이 외에도 세상에서 가장 운치있는 책방 거리인 노르웨이 쇠를라네의 트베어스트란드, 반 고흐의 흔적이 함께 하는 벨기에의 몽스, 그리고 세계 최초의 책마을이자 책제국의 성채로 유명한 영국의 헤이온와이까지. 저자는 온갖 고서와 희귀본들이 흘러넘치는 이곳에서 시간을 넘나드는 책과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과 소박한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고서적은 역사를 거스를수록 가치가 오르고 이래저래 판을 거듭한 고전이면 모두에게 유익하다. 이곳에는 낡은 것이 계속해서 새것보다 사랑을 받는다.

우연히 집어든 헌책에는 나비 날개처럼 꽃받침이 다소곳한 마른 미색 꽃 한송이를 발견하거나 옛날 책주인이 책갈피에 끼워둔 메모를 다시 펼쳐보는 재미도 있다.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소중한 책들을 만날 때면 “이 뜻밖의 수확은 하루의 피로를 한순간에 몰아내는 듯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유럽에서 만나는 책마을과 책방에는 우리의 인심 후한 5일장처럼 “책값을 흥정하는 재미와 선심을 쓰는 호기, 여러 권을 구입했을 때 한권쯤 얹어주는 인심...” 이런 인간적인 교감이 함께 해서 더욱 살가운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월을 넘어 그 책들의 임자가 전해주는 손길과 흔적을 만나는 것 또한 유럽의 책마을과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조우다.



**봉쥬르 조지, 그리고 셰익스피어&컴퍼니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제레미 머서 지음/ 시공사

파리는 나에게도 추억의 도시다.

그해 내가 파리를 찾은 것도 12월 꼭 이맘때였다. 볼로뉴 숲을 지날 때 들려오던 라디오의 샹송 뿐 아니라 프랑스어의 대화조차도 감미로운 음악 그 자체였다.

나 역시 스테인드 글라스가 가장 아름답다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예쁜 목걸이를 샀고 생수값 만큼 싼 보로도산 와인과 센 강변을 거닐며 그 낭만에 도취돼 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처럼 파리는 “세상 모든 꿈들이 거리를 메우고...시인과 작가, 모델과 디자이너, 화가와 조각가, 배우와 감독, 연인과 도피주의자 모두 이 빛의 도시에 모여들게 하는 마법 같은 도시”다.

여기 파리에 그 낭만과 마법의 전설을 더하며 책과 함께 작가와 이방인들의 안식처 역할을 해오고 있는 오래된 책방이 있다. ‘시간이 멈춰 선 파리의 고서점’은 캐나다에서 잘 나가던 신문사 사회부 기자를 지낸 저자가 파리에서 ‘셰익스피어&컴퍼니’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책방 주인인 조지와 그 공간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일상의 새로운 경험들을 전해준다.

‘변장한 천사들일지 모르니 이방인을 친절로써 대하라’는 책방 주인 조지 휘트먼. 책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지금까지 4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갈 정도로 그렇게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시낭송회와 홍차 파티가 열리며 특히 조지가 살고 있는 3층은 “율리시스와 북회귀선의 초판본들, 센 강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는 완벽한 전망과 끝없이 볼 수 있는 위대한 책들이 함께 하고 또 특별한 손님과 절친한 친구를 묵게하는 곳”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지의 절약하고 절약하는 생활로 이 모든 것을 나눈다는 것이 인상 깊다. 옷은 거의 교회 바자회에서 구입하고 단 몇 프랑을 아끼기 위해 몇 킬로미터를 걸어가 물건을 사고 어떤 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

“그런 극기와 자제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살아남은 비결이며 조지가 반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사람들은 다들 일이 너무 많고 불평하지만 그것 역시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그 욕심을 버리면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조지의 지론. “가능한 한 적은 돈으로 살면서 남는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톨스토이를 읽거나 서점을 운영하면 왜 안되는 거지?”라고 반문한다.

또다시 파리에 가면 만나고 싶은 위시리스트가 나에게도 하나 더 생겼다. 바로 파리의 특별한 책방, 영원한 안식처 같은 셰익스피어&컴퍼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 리처드 부스 지음 | 이은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영국 웨일스의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에 최초의 헌책방을 설립한 리처드 부스는 책마을의 제왕이다. 영어권 국가를 직접 돌며 수많은 고서와 헌책을 사들이고, 세계 최대 규모의 헌책방인 영화관 서점을 설립한 결과, 1970년대 말 헤이온와이는 세계 최초의 책 마을로 명성을 얻었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지음 | 그물코

아담하고 작은 헌책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감, 책방에서 만난 책방 주인과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헌책과 헌책방만의 매력이 있다. 저자가 나들이한 헌책방만 60군데가 넘고 700여권의 책을 읽으며 책방과 책, 책 문화와 이를 둘러싼 책손들에 대한 단상을 9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소개한다.

김향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