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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두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시론> '두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 승인 200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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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홍석일 원자력병원장

""두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볼 수 있어 귀에 익숙해진 정부의 광고 카피다. 노숙자 출신의 CEO, 휠체어로 유럽대륙 횡단을 한 장애인, 어려운 형편에 열심히 공부하는 골든벨 수상자 등이 출연하여 결국은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고자 하는 광고다.

 그렇다. 민주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다양성이고, 여러 가지 의견들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반대의견을 낼 수 있고 지금 우리 정부의 경제 정책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 경제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기에 이런 광고도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우리 경제가 위기라는 의견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이처럼 설득조의 광고를 하며 다수 의견을 바꾸어보자고 하는 이면에 아직도 정부정책은 일방통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강보험에 관한 정책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국회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개인적인 소신과 철학으로는 민간건강보험을 도입하게 되면 사회근간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우리나라의 정부주도형 독점적 건강보험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함과, 민간건강보험의 도입을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고, 얼마 전 전경련 주최의 의료서비스산업선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정부당국은 한 번도 긍정적인 검토를 해 본적이 없는듯하다.

 정부는 국민에게  두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광고하면서, 긍정의 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정부 자신은 자기의 의견과 다른 의견에는 콧방귀도 안 뀌는 격이랄까?

 경제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제한법이니, 독과점 관련 규제조항을 보면 우리는 분명 자유민주경제체제이다. 어느 한 기업, 아니 두 세 개 기업이 전체 시장을 차지하는 것도 규제하고 있다. 즉 경쟁을 통해 독과점의 피해를 막고 소비자를 보호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어떠한가? 그렇게 오랫동안 독점체제로 운영해오면서도 만성적인 적자타령에 국민은 국민대로 부담이 늘어간다고 불평하고 있고, 더구나 ‘방만한 경영’이라는 단골감사지적사항의 굴레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건강보험이 지난해 마침내 적자를 벗어나 흑자를 기록했단다. 1조 5679억원의 흑자는 과연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총 진료비중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조사한 결과가 무척 흥미롭다.

 지난해 본인부담률은 43.6 % . 건강보험에서 부담해준 것이 56.4%라는 이야기다. 2001년 본인부담률 37.3 %에 비하면 6.3% 포인트가 증가한 수치다. 오는 2008년까지 보험급여율을 OECD평균인 7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복지부의 의견은 ‘두 가지 의견’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정작 끌어올려진 것은 보험급여율이 아닌 국민들의 부담이었으니 말이다.

 이 같은 본인 부담금의 인상과 아울러 통합진찰료 시행, 차등수가제, 진료비 심사 강화, 급여 인증기준 강화, 야간 및 휴일 가산시간대 조정, 초재진료 산정기준 개정 등이 결국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이룬 공신들 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도 정작 대다수 국민들은 사태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다. 혹시 건강보험의 흑자전환이 그동안의 방만한 경영을 개선한 결과라고 자랑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가족 중에 누가 암이나 희귀난치병 그리고 큰 병을 앓아보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난맥상을 체감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03년 한 해 동안 감기환자들을 도와준 보험급여액이 1조 5456억원인데 비해 암환자에게는 6643억원을 썼다는 통계 앞에서는 정말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보험의 목적은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작은 위험이 아닌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큰 위험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큰 병을 만나서 정작 건강보험의 도움을 크게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험이 아닌 그냥 보조역할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적보험을 보완해주는 민간건강보험이 도입되어야한다는 의견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자동차 보험의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처럼 지금의 건강보험은 의무보험으로 기본적인 보장을 해주고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좀더 충분한 보장을 받도록 하자는 시장경제적인 대안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 대해서만 두 가지 의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긍정의 힘은 국민에게만 강요할 것이 아니다. 독과점의 피해를 기업의 경우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정부정책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당국자부터 “두 가지 의견이 있다”는 그 광고를 한번만이라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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