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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소송 '비약상고' 결정
존엄사 소송 '비약상고' 결정
  • 김기원 기자
  • 승인 2008.12.17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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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서울 서부지방법원의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과 관련, 오늘(17일) 오전11시 병원 종합관 6층 교수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존업사 소송’ 비약상고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창일 연세대의료원장은 “이번 서부지법의 판결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사려있는 고민이 담겨 있으며 그 내용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인간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세브란스의 설립이념과 배치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차일 의료원장은 “생명에 관한 문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고 자칫 초래될 수 있는 생명 경시풍조를 방지하며 입법전까지는 연명치료 중단의 기준에 관해 대법원의 최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법적 제한 등을 고려하여 상소하기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박 의료원장은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은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는 대명제에 따라 항소없이 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는 비약상고를 결정했다”고 비약상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박 의료원장은 “이에 정해진 비약상고의 절차에 따라 즉시 원고측과 상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료원장은 이번 비약상고 결정과 관련, “지난 4일 서울서부지법의 판결문을 송달받고 이 판결이 국내 첫 존엄사 인정판결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종교계와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의료계, 병원계 등 각계 전문가들과 수차례 논의를 거쳐 광범위하고도 신중하게 의견을 수렴했다”고 그간의 과정을 밝혔다.

박 의료원장은 이와함께 “이번 사례를 포함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말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고통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윤리적인 측면, 의학적인 판단과 법적 제한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의료진의 입장, 사람의 생명을 사람이 판단할 수 없다는 기독교적 가치관, 또한 인간의 삶에는 즐거움과 고통이 모두 들어 있고 이중에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무의미한 삶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 그리고 제한적이나마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는 세계적인 경향, 나아가 완전한 사회적 합의나 법적인 기준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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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 결정에 관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입장

1. 광범위하고도 신중한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2008.12.4.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문을 송달받았습니다. 세브란스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검토를 거듭하고 외부의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의료인 등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 등 7차례의 회의를 개최하여 의견을 수렴하였습니다.

2. 세브란스병원의 이념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광혜원ㆍ제중원에서 시작된 124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의학교육기관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이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의료윤리 교육 시작, 환자의 권리장전 선포, 의료법ㆍ윤리학과 개설 등 의료인의 윤리성 함양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3. 세 가지 이유에서 상소를 결정하였습니다.

첫째, 생명에 관한 문제는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즐거움과 고통이 모두 들어 있고 이 중에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무의미한 삶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생명 유지에 관한 의학적인 판단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의학이 과학이기는 하지만 99%가 그렇다 하더라도 1%가 아닐 수 있으며, 각각의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환자가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진료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둘째, 자칫 초래될 수 있는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를 방지하고자 합니다. 일부 국민들은 이번 판결에 근거하여 의료진이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는 자칫 초래될 수 있는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법원이 엄격한 법리를 제시하였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환자의 보호자들이 의료진에게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이며,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입니다. 셋째, 입법 전까지는 연명치료 중단의 보편적 기준에 관하여 대법원의 최종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소생 불가능한 경우의 제한적인 존엄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공보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 판결은 존엄사에 대한 보편적 기준을 세운 것이 아니라 존엄사를 인정할 수도 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재판부는 깊이 숙고하였겠지만 이 사건의 법적인 정당화가 일차적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환자, 가족, 의료인에게는 연명치료의 중단에 관하여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보편적 기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회적 합의와 입법적 절차를 거쳐 이러한 보편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그 전이라도 대법원이 일반적 법리로서 어느 정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4. 비약상고 결정 이유 상고심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인정의 과오는 상고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 판결이 오로지 법률문제만 개입되어 있는 전형적인 비약상고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항소 대신에 비약상고를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환자의 기대여명이 3~4개월 정도라는 점입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환자 가족의 고통도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둘째, 이 판결에서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0조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중단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적용에 있어 과오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실인정의 과오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평가적 판단의 문제로서 법률문제입니다. 셋째, 대법원 판결이 존재하는 보라매병원 사건에서는 인공호흡기의 제거가 위법성이 조각되려면, 즉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으려면 사망시기가 임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 판결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없이 인간의 존엄성만을 근거로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하고 있어 기존 판례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넷째, 이 사건은 1심 판결전에 만족적 가처분 신청을 심리하여 사실상 이번 상소가 3심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5. 현재 환자의 상태에 관하여 환자 김 모(76세, 여)는 폐암 의심되어 기관지경 시행 중 출혈이 심해 심정지가 발생하여 심폐소생술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으로 현재 상태는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로 8개월간 유지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의식은 없으나, 자극에 대한 회피반응은 있습니다. 뇌간 기능은 일부만 유지되고 있어 자발호흡은 극히 미약하여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6. 결론 이 사건 판결 이후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우리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연명 치료 중단의 보편적 기준에 관한 사회적 합의와 입법적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저희 의료원이 비약상고를 결정한 것은 생명을 최고 가지로 여기는 의료진의 입장과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음을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대법원의 최종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환자의 진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008. 12. 17 연세대학교 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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