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료지원단 동행취재기3> 여러 난민촌 돌며 재난구호도 `앞장'
<서울시의료지원단 동행취재기3> 여러 난민촌 돌며 재난구호도 `앞장'
  • 승인 2005.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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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난민촌 돌며 재난구호도 `앞장'

 

<서울시의료지원단 동행취재기3>

 

인니 반다아체 지진해일 현장을 가다

 

물품받은 이재민들 `코리아' `감사' 연발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 타단체 후원  

 

서울시의료지원단은 훌륭한 의료 지원 외에도 여러 곳의 난민촌을 돌며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등 재난 구호에도 앞장섰다. 현지 군인들의 협조를 얻어 차량 지원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현지에 도착한 다음날인 12일을 비롯해 3번에 걸쳐 난민촌을 방문, 생수와 햇반, 모포 등을 전달했다. 현지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물품들을 보내왔지만 이를 나눠줄 수 있는 행정기관마저 완전히 파괴된 상태여서 한 곳에 쌓여 있기 일쑤였고 주민들은 식수를 비롯해 먹을 것과 생필품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원단이 머물렀던 육군병원 내에도 각종 약품을 비롯해 여러 물품들이 며칠째 쌓여 있었지만 이를 나눠줄 인력은 없었다.  

재해지역을 피해 사원이나 공공기관의 빈 마당을 이용해 형성된 난민촌의 상황은 비참했다. 대부분 군용 천막 안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바닥에는 언제나 물이 고일 정도로 질척해져 있어 전염병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구호물품을 지원해 주기 위해 도착한 지원단 주위로 많은 이재민들이 둘러싸고 물품을 받아갔다. 이재민들은 물건을 나눠주는 지원단에게 `코리아'와 `감사'를 반복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을 주축으로 구성된 서울시의료지원단은 또 현지로 봉사활동을 온 다양한 단체들을 후원했다. 자카르타에서 온 군 부대가 같은 부대 내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물자 부족을 호소해 음식, 음료수, 모포 등을 전달했다. 또 다른 한국 지원단인 기아대책기구(일산병원 의료진 포함), 의협, 코이카 등에도 음료수, 식량 등을 지원했으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나온 EBS 팀도 도와줬다.  의료 지원단의 가장 큰 어려움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각종 약품과 진료 장비는 서울시에서 충분히 준비해서 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없었지만 현지에서의 숙식을 모두 직접 해결해야 해서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을 주축으로 구성된 서울시의료지원단 2진은 이미 선발대와 1진이 투입돼 모든 것이 준비한 상태에 도착한 것이어서 쉽게 봉사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숙소는 남자는 현지 군에서 제공한 천막을 이용했다. 커다란 천막 속에 군용 간이침대를 놓고 대한적십자사에서 지원한 군용 모포와 누비이불을 덮고 잤다. 하지만 반다아체 지역은 우기여서 매일 오후 3시만 되면 비가 내렸고 천막 바닥은 질척거렸다. 2진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선 천막 주위로 도랑을 파서 빗물이 천막 안으로 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이로써 물품들을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어 천막을 더욱 넓게 쓸 수 있었다.  

여자는 쓰나미 발생 전까지는 간호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던 막사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삐걱거리는 2층 침대였으며 커튼을 사이에 두고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남자들과 같이 생활해야 해서 불편함은 매우 컸다.  

먹는 것은 모두 서울에서 가져간 인스턴트식이었다. 일회용 밥인 `햇반'을 비롯해 `미역국밥' `육개장 사발면' `3분 자장·카레' `참치 통조림' `김' 등이 매일 제공되는 메뉴였다.  의료 봉사단은 아침 식사는 매일 4명씩 순서를 정해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도록 했다. 또 점심과 저녁 식사는 진료를 담당하지 않은 의료진과 행정지원팀에서 준비했다.  

매 끼니마다 햇반과 자장·카레 등을 끓는 물에 데워서 내놓고 물을 끓여 사발면, 미역국밥 등을 먹을 수 있게 했다. 나중에는 사발면에 물을 버리고 자장·카레 등을 부어 자장면·카레면 등을 만들어 먹었다.  

현지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넷째 날에는 봉사단으로부터 진료를 받은 환자가 직접 차를 몰고 와서 시장을 볼 수 있도록 협조해 줬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 사람은 통역과 崔賢林교수, 이정희 간호사 등을 시장에 데려다 줘서 그 날은 배추와 고추 등을 사서 김치를 담그고 오이, 토마토, 당근 등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었다. 또 마르키사, 낭까, 두꾸, 람부단 등 각종 열대과일들을 듬뿍 사와 모처럼 비타민을 흡수할 수 있었다.  

현지에 거의 적응된 17일에는 병원 밖으로 나가 현지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길쭉한 쌀로 지은 밥과 녹두가루가 들어간 수프인 소또, 쇠고기 꼬치인 사떼 등이 나왔다.

 

무지개 활짝 피어 고난속 희망 선사

 

모처럼 마련된 현지식, 열대과일 `맛깔'

억수같은 비로 천막 짐옮기기 `비지땀'  

 

염려했던 것과 달리 현지식들은 모두 특별한 향이 없어서 단원들 모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오히려 사떼는 부족해서 몇몇 단원들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씻고 닦는 문제다. 현지 화장실은 예상외로 깨끗한 편이었지만 일을 보고 난 후 물로 씻는 문화로 화장실에 휴지와 쓰레기통이 없어 불편함을 겪었다. 그리고 물이 대단히 불결해서 씻고 난 후에도 기분이 찜찜했다.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기분이 개운치 못했으며 세수를 하고 난 후에도 생수로 다시 씻어내고 양치질은 처음부터 생수로 해야 했다. 그나마 그 물도 부족해서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출발하기 전 우려했던 상황들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출발하기 전 지원단을 긴장시킨 것은 진도 6 이상의 강진이 계속된다는 보도였다. 반다아체에 도착하니 먼저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던 1진은 매일 아침은 지진으로 깨어난다고 전해줬다.  반다아체에 도착한 첫날인 12일 밤 9시 처음 지진이 느껴졌다. 앉아 있는 간이침대가 흔들리는 것을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 발생한 지진은 느낀 사람보다 못 느낀 사람이 많을 정도로 약하게 지나갔다.  

반군에 대한 염려도 컸었다. 지원단이 도착하기 전날에도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있었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반군들도 이번에 쓰나미 피해를 크게 입어 그 세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산 중으로 피해 있는 가운데도 물자가 부족해 구호물품을 빼앗기 위해 마을을 습격해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민간인 복장의 환자가 총을 가진 채 응급실로 찾아와 의료진을 놀라게 하지는 했지만 총격전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자카르타로 돌아온 후에 다시 총격전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단은 모두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말라리아 등 열대병과 콜레라 등 각종 전염병의 창궐도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현지에서는 특히 모기가 극성을 부려 많은 곤란을 겪기도 했다. 바르는 모기약, 스프레이 모기약을 비롯해 모기향 등을 동원했지만 崔文誠원장은 하루아침에 이마에만 20여 군데에 물리기도 했다. 현지 구호물품 내에 있던 방화복이 모기에 효과적이라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입고 잤지만 소용이 없었다.  

安哲民단장은 모기장을 구하기 위해 잃어버린 서울시구호물품을 찾고 현지 군부대에 협조를 구하는 한편 자카르타에 남아있는 팀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단원들은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는 날을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서로 일깨워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말라리아환자의 발생에 대한 소식은 없다.  

16일에는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미리 파 놓은 도랑도 무용지물이 되어서 천막 안으로 물이 그대로 들어왔다. 천막 바닥에 쌓아놓은 물과 음식 등을 모두 침대 위로 올려놓아야 했다. 비는 저녁이 돼도 계속 내렸다. 일부 여성 단원들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천막을 버리고 여자들이 쓰는 숙소 일부가 비어 있다며 들어오라고 했지만 짐을 버리고 갈 수는 없다고 남자 단원들은 그대로 천막을 지켰다.  문제는 다음날 발생했다. 비는 밤새 그쳤지만 잘 내려가던 수로가 막혔는지 빠지지 않는 것이다. 어제 내린 비로 상류에서는 물이 계속 흘러내리는데 빠지지 않자 낮은 지대에서부터 서서히 잠기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은 물길을 돌리고 잘 빠져나가도록 하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밑에서부터 차 올라오는 물은 속수무책이었다.  

우선 진료 중인 의료진 가운데서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모두 내려와 현지 군인들까지 힘을 모아 천막 속에 쌓아 놓은 물품들을 옮겼다. 그리고 호주 군인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천막을 빨리 걷어내 지대가 높은 곳에 다시 쳤다. 점심시간에 시작된 대피는 해질 때까지 계속됐다. 모든 단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서 움직인 덕택에 우리가 사용하던 천막이 완전히 침수되기 전에 모든 짐들을 빼낼 수 있었다. 현지 군인들은 `작은 쓰나미'에 긴급해 대처한 덕택에 큰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 쓰나미가 지나간 후 동쪽 하늘에는, 지는 태양 빛을 받아 밝은 미래를 약속하듯 진한 무지개가 걸렸다. 단원들은 모두 어려움을 겪어 낸 후에는 희망이 찾아오는 법이라며 기뻐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현지신문인 `세람비 인도네시아'에는 아체지역(420만)에서 사망·실종자가 13만2172명이고 반다아체에는 7만7804명이 사망 또는 실종해 반다아체 전체인구 22만3629명의 34.7%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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