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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료지원단 동행취재기 2> 현지의료인도 피해 커 `엎친데 덮친격'
<서울시의료지원단 동행취재기 2> 현지의료인도 피해 커 `엎친데 덮친격'
  • 강봉훈 기자
  • 승인 2005.0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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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다아체 시내는 처참했다.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피해지역을 돌아보는 동안 같이 간 일행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쓰나미 피해를 직접 입은 지역에는 여기저기 무너지다 만 건물들이 몇 채 서 있을 뿐 완벽한 평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도시 곳곳에는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은 채 고여 있어 하수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떤 배 한 척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 앞에서 방치돼 있었고 또 다른 배 한 척은 다리 턱에 걸린 채 하늘을 향해 이물을 쳐들고 있었다. 이런 배들은 시내 곳곳에서 발견돼 쓰나미 당시의 규모를 보여주는 듯 했다. 또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들도 무너진 건물 더미 위에 놓인 채 버려져 있었다.  

다행히 바닷가에서 2km 이상 떨어진 도심지역은 완파는 면했다. 큰길가나 혹은 강가에 서 있는 집들은 해일에 쓸리면서 대부분 무너졌지만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집들은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km 미만의 지역은 멀리 야자나무만이 몇 그루 서 있을 뿐 지평선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역에 따라서는 건물이 통째로 쓸려가 버렸으며 어떤 곳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은 채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부두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바다에 가까운 지역은 큰 도시가 형성되기보다는 작은 마을이나 혹은 유수지, 유원지 등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돼 피해 규모가 작았을 것으로 예측됐다. 사람들은 무너진 더미 속에서 무언가 쓸만한 것들을 찾는 것 같았지만 헛수고로 보였다.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을 주축으로 구성된 서울시의료지원단 2진이 처음 시내를 둘러본 12일은 쓰나미 피해가 발생 17일이 지난 후였지만 모든 것이 사고 당시 그대로였다. 포크레인과 불도저 등 중장비가 여기저기 서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복구를 시작해야 하는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곳에 따라서는 아직 시체 처리도 다 되지 못한 실정이었다. 시골 지역은 아직도 길가에 많은 시체들이 까만 봉지에 쌓인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시체는 심하게 부패돼 악취를 풍기고 있었지만 이를 치울만한 행정력조차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다. 안내자는 차로 10분 이상 달린 거리 양쪽으로 서 있는 마을에 생존자가 겨우 50여명뿐이라고 설명했다.  

쓰나미에 의한 피해는 반다아체 정부 주요 건물을 비롯해 각종 공공시설에도 그대로 닥쳐 방송국, 전력공사, 각급 학교, 병원, 경찰서 등의 건물도 파괴됐으며 그로 인해 모든 행정이 마비된 상태였다. 다만 경찰 병력과 군 병력이 주요 지역에 배치돼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반군들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재해 후 20여일이 지난 18일경부터는 조금씩 복구공사가 시작됐다. 중장비를 동원해 피해가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쌓여 있던 건물 잔해들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우선 학교를 비롯해 각급 관공서 주변이 먼저 정리되는 모습이었다.  포크레인으로 부서진 건물의 콘크리트와 목재, 살림살이 등을 트럭에 실어 아직도 침수된 채 있는 바다 가까운 곳의 저지대에 매립했다. 이 날은 전날 내린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침수 때 밀려들어온 펄들이 말라 공사 차량에 의해 공중으로 흩어지면서 반다아체 시내는 온통 흙먼지로 뒤덮일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건물들이 완파된 지역은 손도 대지 못하고 방치된 채 있었다.  이 지역의 의사들의 피해도 컸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현지 의료인들은 쓰나미가 발생한 지난해 12월 26일 지역 의료인 대부분이 참여하는 모임을 갖고 바닷가로 휴양을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일이 발생하기 직전에는 바닷물이 갑자기 빠져 큼직한 물고기들이 펄떡거렸으며 이들은 이 고기들을 잡으려고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갔다가 전몰되는 피해를 입었다. 현지 신문에는 사람을 찾는 광고들이 가득 실렸는데 이 중에는 의사와 그 가족을 찾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다행히 의료지원단이 머물렀던 육군병원은 피해지역보다 200여미터 밖에 있어서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육군병원 내에도 수십명의 의사들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간 의사를 비롯해 호주에서 온 의사, 인도네시아 팔렘방 등 다른지역에서 온 의사들이었고 현지 의사들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의료진에 감사 눈물, 존경 표현 `뭉클'

 `사랑 베푸는 의사들'로 지역언론 극찬

 “환자한테 더 많이 배우고 봉사활동 행복”  

 한국 의사들은 1진에서부터 외래 진료보다는 응급실 진료를 위주로 담당했다.  쓰나미 발생 15일이 지나도 아직도 쓰나미 당시에 피해를 입은 초진환자들이 많았다. 응급실로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쇠붙이나 나무 등에 베이거나 찔린 외상환자들이었는데 그 위치는 발과 다리, 팔, 어깨, 머리 등 골고루 흩어져 있었다.  단순히 찢어진 상처는 깨끗이 소독한 후 꿰매면 됐지만 한 부위가 떨어져 나가버린 곳은 상처가 그대로 낫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상처 치료를 위해 요양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치료는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자기 집을 잃고 난민촌 등지에서 머무르고 있었으며 복구를 위해서 또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진료 2일째 접어드는 14일 오전에는 겨드랑이 부위가 심하게 찢어진 환자가 찾아왔다. 그 환자는 속에서 심하게 곪은 상태여서 식염수로 한참을 씻어내야 했다. 환자는 심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무사히 봉합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다행히 이 환자는 이후로 지속적으로 한국 의료진을 찾아와 마지막에는 거의 완치될 수 있었다.  

자신은 한국에서 노동자로도 일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 또 다른 환자는 복구작업을 하던 중 귀가 찢어져 병원으로 찾아왔다.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상처부위를 봉합했고 다행히 흉터는 남았지만 귀는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이 환자는 고맙다며 다음날 아침 일찍 자신의 차를 몰고 와 봉사단이 시장을 볼 수 있게 협조해 줬다. 봉사단 일행은 이 환자의 덕택으로 현지에서 직접 버무린 김치를 먹을 수 있었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모든 먹거리를 인스턴트식으로만 해결하던 봉사단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16일에는 두명의 수두환자가 피부과 외래를 찾아왔다. 한명은 8세의 아이였고 한명은 22세의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현재 난민촌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기의 동생도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경희의료원 최천필씨는 “어린 나이에 발생하는 수두보다 성인이 되서 발생하는 수두가 더 열이 많이 나고 견디기 어렵다”며 “여러 사람이 뒤엉켜 사는 난민촌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경우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천필씨는 동생과 함께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최대한 피할 것을 권했지만 난민촌 생활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수두의 급격한 확산이 예상됐지만 다행히 돌아오는 날까지는 더 이상의 수두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을 주축으로 한 서울시의료지원단(단장·安哲民 영동세브란스병원)의 활약상은 현지 언론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화제가 됐다.  반다아체 지역언론인 `세람비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18일 `눈물 흘리는 환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의사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울시의료지원단의 활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는 한국에서 온 의료진이 쓰나미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훌륭한 진료를 베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한국 의료진이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통역을 두고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소개하고 그 진료의 수준 또한 매우 뛰어나다고 전했다.  

이 기사에서는 또 崔文誠원장이 현지인들이 즐겨 입는 치마모양의 옷인 `살롱'을 입고 진료에 임하는 모습을 소개하며 진정으로 인도네시아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의사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그 수준이 매우 높아 만족해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전해주는 약도 매우 좋다고 보도했다.  반다아체의 환자들은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을 주축으로 한 의료진의 활동에 대단한 고마움을 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환자는 진료를 받고 난 후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의료진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번갈아 잡으며 이마와 가슴에 갖다 대는 행동을 했다. 이는 진심으로 존경의 뜻을 표하는 행동으로, 대부분의 한국의 의료진은 이런 존경의 표현을 받았다.  개원의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한 崔文誠원장은 “이곳에서 여러 환자들에게 베풀었다는 것 보다 그들로부터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봉사라는 것을 가끔 해 왔지만 이번 봉사가 힘들지만 진정한 봉사였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전 세계가 재해지역 주민을 위해 정성을 쏟는 인류애를 보면서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강봉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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