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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나눔의 그림들, 녹색공간 속에 펼쳐지다
치유와 나눔의 그림들, 녹색공간 속에 펼쳐지다
  • 김향희 기자
  • 승인 2008.12.02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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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Space 3 - 녹색병원

녹색병원: 서울시 중랑구 면목3동 568-1 www.greenhospital.co.kr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엔 식당 쪽 밥 냄새가 가득하다. 지하 1층을 지나 지하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원장실을 노크하려는 찰나 문을 열고 나오는 양길승 원장과 마주친다. 유난히 긴 수염이 강렬한 첫인상으로 각인된다.

원장실은 일단 좁다. 소파 테이블에는 장사익씨로부터 선물 받은 액자가 있고 또 얼마 전 직원들에게 받았음직한 ‘빼빼로’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한 쪽 벽면에는 ‘必有隣(필유린)’이란 글이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그의 좌우명이다. 이 속엔 모든 중심에 ‘사람’과 ‘나눔’을 소중히 하는 그의 인적 네트워크를 짐작케 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환경운동가 최열, 신화학자 이윤기, 신영복 교수, 가수 장사익... 양 원장과 친한 지인들이란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지인들의 이름만으로는 ‘의사’라기 보다는 사회운동가나 문화예술 쪽에 가깝다. 이러한 인맥은 단순히 치료만 하는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와 근로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나눔’의 네트워크로 대별되는 인간관계다.

녹색병원은 2003년 9월 오픈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근로자들이 받은 보상금과 공장터 매각대금을 모아 기독병원이 있던 이곳을 인수했고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금의 병원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굳이 인테리어 컨셉을 말하라면 첫째 병원 안에 햇볕이 가득 들어와야 한다는 것, 둘째 병원에 온 느낌이 들지 않는 공간이 되도록, 셋째 가장 좋은 공간은 환자를 위해, 그러기 위해선 원장실은 지하로 갈 것 등이었죠. 무엇보다 기존 500병상에서 100병상을 줄이면서까지 환자들을 위한 휴게공간 확보를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따라서 병원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햇살이 잘 들어오도록 기존의 빡빡한 공간을 말그대로 ‘듬성’ 잘라내고 여백의 공간을 만들었다. 시원하게 뚫린 공간연출은 단지 진료만이 목적이 아닌 환자의 빠른 쾌유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외벽 역시 기존의 밋밋한 콘크리트에서 나무 프레임을 세로로 구성해 단조로움을 탈피했다. 반복되는 나무 프레임은 다양한 이미지 변화를 보여주는 시각적인 장치이자 콘크리트 건물이 줄 수 있는 차가운 이미지를 따뜻하게 변모시켜 준 것.

녹색병원이란 이름도 공모를 했다고 한다. 생명과 안전, 환경 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무엇보다 건강하고 생동하는 봄의 느낌과 녹색 신호등의 느낌이 함께 한다고. 개인적으로도 녹색 계열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연두빛‘을 가장 좋아한다는 양 원장이다.

삭막한 사각형의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던 병원 리노베이션에 일등공신은 임옥상 화백이다. 건물의 흉물이던 정면 엘리베이터는 임 화백의 그림 속 도화지가 되었다. 모든 재료는 버려진 재활용품들을 활용해 1mx1m 작품을 만들었고 총 69개의 각각의 작품은 정면 엘리베이터 외벽에 부착되어 총 길이 69m의 대형벽화로 탄생했다. 주위의 노란색 외벽과 조화를 이루며 녹색병원을 처음 찾는 사람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상징물이 된 것.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란 제목의 이 작품은 버려지고 쓸모없던 재활용품들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부활했듯이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간직한 환자들이 치료와 재활을 통해 이 작품처럼 아름답고도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글비가 내리는 뜰’은 어디에 가도 볼 수 없는 녹색병원만의 휴게공간이라 더욱 특별하다. 말 그대로 ‘글비’가 내린다. 스텐레스로 제작된 글 조각들이 독특한 감성을 전해준다. 22m 길이 52개의 글줄로 엮은 총 5200자의 글무리들. 녹색병원의 취지와 소망을 담은 많은 내용의 글이다. 마치 반짝이는 비가 내리 듯 서로 부딪치며 내는 맑은 스텐레스 소리와 반짝이는 글빛이 아름답다. 1층에서 7층까지 뚫린 여백을 통해 하늘과 햇살과 건강한 녹색이야기를 전해준다. ‘녹색에 내리는 단비’란 제목이 붙은 이것 역시 임 화백의 작품.

특히 녹색병원의 다른 이름이 ‘임옥상 갤러리’라고 할 정도로 임 화백의 작품이 가득하다. 양 원장의 녹색병원 취지에 공감한 임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흔쾌히 나눔의 차원에서 기증했고 지금 이 병원에만 총 43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7층엔 환자들을 위한 재활치료실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으례히 재활치료실은 지하층에 있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환자의 치료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양 원장의 속 깊은 배려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환자를 위해 전망 좋은 원장실을 양보한 것이다.

6층에서 5층으로 내려가는 연결통로에는 송학선씨의 ‘대마도’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4층 연결통로 역시 중국에서 물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구제구’ 사진작품이 초록빛 자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5층 복도에는 임옥상 화백의 꽃 연작이 환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인공심장실에는 환경운동가 최열씨의 부인인 허훈순 작가의 ‘몽골, 땅, 사랑’이란 테마사진 연작과도 만난다. 또 삼성전자 광고의 애니메이션 클레이 작품으로 유명한 클레이 아티스트 김희경씨의 회화작품도 있다. 3층 복도에는 아파트와 집, 건물만을 테마로 그리는 내과의사 박현주씨의 작품으로 콜렉션했다.

2층에는 임 화백의 작품 중에서도 양 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있단다. 바로 ‘꽃등’이다. 꽃시리즈 중에서도 세상을 밝혀주는 등 모양을 한 꽃이라 더없이 각별하고 애착이 가는 작품. 빠알간 석류 같은 이 그림은 초록색 바탕에 강렬한 붉은 꽃등이 마치 녹색병원이란 품 안에서 저마다 빛을 발하며 감성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그림들 같다. 또 환하게 빛을 머금고 있는 두 개의 꽃등은 녹색병원과 환자, 환자와 예술작품, 양길승 원장과 임옥상 화백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듯. 이렇듯 그림이 내려앉은 공간은 이야기의 날개를 달고 그렇게 다양한 인연의 속내를 쏟아낸다. 모두가 기증된 작품들이라 더욱 뜻깊다.

최근 신축된 건물처럼 화려하거나 비싼 돈 들여 공간을 꾸며놓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환자를 위한 마음, 문화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공간은 그렇게 바꾸어지리라는 확신이다. 작은 개인의 신념이 조금씩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는 변화의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것, 작고 따뜻한 배려와 어울림은 언제까지고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녹색병원 속 그림들은 그렇게 환자의 일상 속에 함께 숨 쉬며 빠른 쾌유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마법의 ‘초록 갤러리’다.

김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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