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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축제다
시월은 축제다
  • 의사신문
  • 승인 2008.11.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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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 이정균 원장
시월, 축제의 달이다. 시월은 축제다

한낮의 가을햇볕, 아침저녁의 찬이슬, 옷소매사이로 스며드는 싸늘한 바람, 쪽물 가득 머금은 드높은 하늘, 신의 축복, 흙의 자비 그리고 우리 인간의 정성으로 키운 곡식과 열매가 가득한 숲과 들녘은 그대로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계절이다.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가을날, 대자연의 축제에 우리는 이미 초대받고 있지 않는가.

가을은 겨울에 쫓기고 스쳐가는 길손 같은 계절, 두개의 얼굴가진 모순의 계절이다. 성숙, 수확과 풍요로움이 넘쳐 있으나 쓸쓸한 시듦, 떨어져 내리는 계절이다. 가을은 코스모스와 함께 무르익어간다. 가을산은 억새로 말하고 단풍으로 마무리 한다.

가을산이 달아오른다. 하루가 다르게 정수리부터 층층 색대를 두르며 단풍이 물드는 가을산은 소슬바람타고, 하루가 다르게 남하한다.

꽃상투를 튼 듯 강원북부 고산지대를 붉게 물들여 놓았던 단풍대열은 하루 30∼50m 내려온다니…

울긋불긋, 발동동, 단풍시계 따라 가을이 땅을 덮으며 겨울 준비하기 전에 서두르자. 마중 나가보자.

시간이 덧없음을 말해주는 낙엽으로 밟히기 전에 단풍을 추억으로 남기자.

신문방송, 매일 골치 아픈 소식으로 도배를 한다.

우리들은 한 일이 많다. 열심히 일하고 의무를 다하며 살아도 지갑은 얇아만 간다. 뛰는 물가, 숨가쁘게 변하는 세상… 그러나 자리 박차고 일어나자.

자연은 한바탕 불꽃놀이를 준비하였다. 설악을 한껏 물들이고 숨고를 틈 없이 빠르게 남하한다. 하루 25km의 속도로…

단풍은 나무 스스로 자기 정리하는 의식이다. 몸을 가볍게 하여 혹독한 겨울은 준비하려는 의지요 비장한 뜻을 지니고 화려한 겉모습으로 치장하고 있다. 올해 가을 단풍은 어느해 보다 아름답다. 화려하나 쓸쓸하고,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가을을 맞았다.

조물주는 손바닥만한 단풍잎을 붙여 만든 거대한 모자이크로 가을 산을 장식하여 한 잎, 두 잎 오색물감 풀어 산에 수채화를 걸어놓았다.

오대산 단풍은 상원사 적멸보궁을 지나 월정사까지 단풍이 내려온다. 상원사 찾아가는 냇가 옆길 단풍이 아름답다. 북대∼상왕봉∼비로봉∼적멸보궁∼상원사 순환코스 단풍도 일품이다. 오대산은 육산이다. 활엽수 수종이 많고 다양하다. 붉은 빛이 도는 갈색빛 졸참나무, 노랑빛 섞인 상수리나무, 주황색 벚나무, 노란색이었다가 붉게 변하는 서어나무가 경쟁을 벌인다. 한나무 한그루의 단풍만 보면 오대산 단풍은 내장산이나 설악산 단풍보다 붉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더 아름답고 신비하다. 오대산 단풍의 특징은 다양한 빛깔의 단풍이 섞여 단풍산을 이루었으니, 은은하면서 고운 단풍을 연출한다. 단풍은 낙엽으로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기 전 마지막 제 몸 태워 온 산을 물들이고 있으니 산마루에서 바라보면 산줄기가 붉은 파도를 일으키며 밀려오는 듯 홍해황엽(紅海黃葉)의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환절기 변화무쌍한 날씨 오대산 비로봉은 벌써 겨울 산이다.

붉은 산이 활활 탄다. 붉은 비가 뚝뚝 떨어진 단풍 수채화에 넋을 읽고 넉넉한 품의 여유를 지닌 오대산 매표소에서 전나무 숲 월정사 계곡에선 홍단풍의 붉은 빛에 또 황홀해진다. 오대산은 산색 고운 산이다. 나무타령 읊어보자. 독야청청 소나무, 사철 푸른 전나무, 진짜나무 참나무, 흰옷 입은 자작나무, 옻 오른다 옻나무, 다래난다 다래나무… 저마다 제 모습 찾아 옷을 가라 입으니 오대산은 그 자체가 단풍시계다.

산이 불타오른다. 부드럽고 웅장한 산세, 장산(壯山)의 잔잔한 단풍, 가벼운 단풍산 여행은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 왕복코스 3시간, 최단 등행로요, 정상의 조망의 멋 코스다. 그러나 걷기도 만만치 않은 산행코스를 따라 삼보일배(三步一拜)하고 있는 어머니들의 지극정성을 보면서, 며칠 전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서 대학 수능시험 합격을 기원하고 있던 어머니들의 정성을 다시 보는 듯 하였다. 어머니 닮은 후덕스러운산, 조선 세조의 문수보살전설과 어려운 오늘을 사는 우리 어머니들의 지극한 자식사랑, 그 모든 것들이 기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시간을 더디게 했으면 좋겠고,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는 수많은 인파들의 진지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 SAD) SAD ; `슬픈'우울증 같은 건강위해요소를 날려 보내라고 권고하고 싶다.

산이 화장을 시작했다. 불붙은 산, 마음도 불탄다. 가을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앉아서 맞기엔 계절의 향은 너무 진하다. 눅눅한 마음을 가을 단풍산 마지막 햇볕에 말려보자.

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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