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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박, 양평에서 그림의 안부를 묻다
닥터박, 양평에서 그림의 안부를 묻다
  • 김향희 기자
  • 승인 2008.11.14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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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Space - 닥터박갤러리

*닥터박갤러리: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19-1 www.drparkart.com

“닥터박이 도대체 누구냐?” “건축가 승효상이 지은 갤러리가 있다던데...” “저런 건물이 우리나라 맞느냐?”

양평 남한강변을 지나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빨간색 건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닥터박갤러리’. 물론 이름처럼 의사 선생님이 운영하는 갤러리다. 박호길 박내과의원 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또 하나의 꿈이 생겼고 이 공간은 그가 평생 꿈꿔온 소망을 담은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30여명의 많은 사람들이 멀리 대전에서 이 예쁜 공간을 보기 위해 왔다고 한다. 유명한 장소를 투어하는 소녀들처럼 갤러리 곳곳에 담긴 이야기 속에 사람들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그 공간을 마음껏 기억 속에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이곳은 이제 한 예술, 한 건축 한다는 사람들에겐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입소문이 난 장소. 최근엔 양평의 대표적인 문화코드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황선태씨의 작품 ‘얼어붙은 이야기’와 ‘박제된 문자들’ 2점이 각각 유리 프레임 속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유리샌딩으로 만든 책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어서 이것 역시 새로운 느낌이다. 오른쪽 벽면에는 얼마전 전시를 끝낸 작가가 그린 갤러리 전경이 또 깨끗한 이미지를 더해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아마 개인이 소유한 갤러리 중 단일공간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전시장이 나타나고 전문 아트샵까지 있다.

2층 복도는 1층 카페와 열린 복층 공간이다. 프랑스 자유주의 구상작가인 Herve Di Rosa가 개관기념작품으로 기증한 벽화는꽤 재미있는 표정으로 장승을 바라보는 두 문화의 차이를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곳 역시 채움과 비움이 반복되는 공간이다. 3층에는 하늘정원이 연결되고 갤러리와 자연을 연결시켜준다.

창조의 길, 쉴만한 물가, 아내의 이름을 붙인 운선홀까지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또 영문 'Park'에서 이니셜 'P'를 이미지화하여 갤러리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냈다, 알파벳 P지만 자세히 보면 서 있는 사람의 형상처럼, 또 촛불처럼, 혹은 동양의 붓터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닥터박갤러리를 구성하는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에도 박 원장 특유의 예술적 안목과 감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닥터박갤러리를 얘기할 때 건축가 승효상을 논하지 않는다면 또 섭섭한 이야기다. “세계 5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맥파운데이션을 찾아갔을 때였지요. 프랑스에 있어요. 마티스, 피카소 등 유명한 예술품들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그 곳에서 그 규모와 내실에 놀라웠죠. 부럽기도 하고 엄청 주눅이 들더라구요. 과연 내가 갤러리를 잘 만들 수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고...그런데 또 그러더군요. 3대째 이 갤러리를 가꾸어가고 있다고. 3대라면 100년이예요. 자그마치 100년. 아 그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에도 희색이 돌았죠. 그래, 100년이라면 나도 승산이 있다고. 그래서 소망을 다시 가지게 되었어요. 나의 소망은 우리나라에 이 맥파운데이션,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루브르처럼 전세계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그런 갤러리로 만들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건축도 제대로 짓고 싶었다고 한다. 일단 리움처럼 돈은 많이 없으니 아쉽지만 외국건축가는 제외, 그렇다면 우리나라 건축가와 일을 해야겠다. 그러면 또 누구와? 나름대로 건축가들의 리스트를 찾아보고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등 우리나라 건축가들에 대해 공부했다.

승효상 선생으로 낙점된 이유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그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철학이 똑같다는 것.

“서구건축은 무조건 편리주의예요. 하지만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함을 감수하며 자연과 함께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풍경으로서의 건축’인 것이죠. 건축도 자연과 하모니를 이루어야 해요”

닥터박갤러리 건축의 특징은 빨간색 코르텐 강판이 외장재로 쓰였다는 것이다. 사실 기자의 편견으로 이 빨간색 쇳덩어리가 자연적인 것이라는 것에 처음에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강판이란 것이 녹슨 쇳덩어리지만 그것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의 색깔이 다르고 아침 햇살과 노을빛 석양이 기울 때의 자연의 시간만큼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역삼동에서 ‘박내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 원장은 최근까지 아침 7시부터 5시까지 진료를 해오다 8시로 진료시간을 변경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은 갤러리에 오는 날이고 여기 오면 그 역시 행복하다.

“1978년부터 진료를 시작했으니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특히 일에 대해서는 강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요, 내가. 그런데 또 의사란 직업이 공간적으로 정서적으로 그 행동반경이 참 폐쇄적이예요. 그림에 대한 관심은 이런 삭막함을 탈출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이었던 거죠. 그렇게 미술품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 모으게 되고 또 돈이 들어가니까 자연히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 개인적인 관심으로 시작된 미술품이 하나둘 모여지면서 어느 순간에는 나 혼자만 감상하는 게 너무 안타까운 것이예요. 야, 이왕 이렇게 모은 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었음 좋겠다. 물론 의사로서 열심히 일도 하지만 또 다른 내 인생의 꿈이자 즐거움으로 언젠가는 꼭 미술관을 만들자.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쁘고 아름다움을 공유하자고 결심했죠. 그리고 그 꿈을 위해 한 길을 계속 걸어왔던 거죠” 그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바로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귀띔한다.

최근에는 그나마 미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문화가 이슈가 되고 그렇게 흐름을 타는 것에 그저 감사한다. 갤러리 운영이 단순히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수익이 나야 또 그만큼 재투자를 하고 더많은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15세기 이후 쇠퇴한 공업도시가 된다. 그러나 건축가 프랑크게리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후 죽은 공업도시를 살려냈다. 하나의 미술관이 한 도시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빌바오 임팩트’라는 것. 닥터박갤러리 역시 ‘닥터박 임팩트’를 기대한다.

“물론 의사의 본분인 진료에 충실해야죠. 그러나 또 진료실만 고집하지 말고 주위에 눈을 돌려 자신의 또 다른 역량을 재발견해 보세요. 주위에 그런 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특히 부지런함,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에 항상 열려있을 것,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크게 생각하고 크게 보고 멀리 볼 것,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본질에 귀기울이는 것, 바로 인사이트와 열정, 창조성이 의사들에게도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죠”라며 후배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가치있는 꿈을 가지기를 당부한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게 박 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즐거움과 열정이 가득하다. 꿈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단지 꿈으로 끝나는 피상적인 단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꿈을 위해 부단히 열심히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고 최선을 다해 현재를 가꾸어가는 것, 그래서 한발 한발 그 꿈을 이루는 것이리라.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그의 가치가 깊어가는 가을의 시간만큼 인생의 무게를 담아내고 있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양평의 물빛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이 고스란히 닥터박갤러리의 사각프레임 속으로 오버랩되어 한편의 멋진 풍경화를 만나고 오는 시간, 양평에 가면 그렇게 닥터박이 있다.

김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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