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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소양은 지식의 마중물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은 지식의 마중물입니다
  • 김향희 기자
  • 승인 2008.11.14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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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香희 기자의 특별한 Book Recipe 4

인문학적 소양은 지식의 마중물입니다

‘마중물’이란 순우리말이 있습니다. 땅 속에 있는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 위에 붓는 물입니다. 펌프질을 하기 위해선 한 바가지의 이 마중물이 꼭 필요한 것이지요. 아마도 ‘땅 속에 있는 물을 마중 나간다’는 의미겠지요. 전공의 벽은 허물어진지 오래고 영역과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의 시대, 요즘 요구되는 소양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수술실의 의사에게도 인문학은 그렇게 마중물인 셈이지요. 인간 삶의 모든 문제는 사람과 사람과의 문제이고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함께 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인문학에 바탕을 둔 성찰과 과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의 소통이 결국은 전문지식의 교차점을 찾는 당신의 경쟁력으로 거듭나는 또 하나의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본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신영복 지음/돌베개

공자와 논어, 맹자, 노자, 장자...그리고 온고지신. ‘인문학적’이란 거창한 단어를 이야기하기에는 사실 그랬다. 중·고등학교 한문시간에 별다른 감흥의 기억을 가지지 못한 나로서는 ‘동양고전’이란 이러한 몇 개의 단어가 갖는 ‘고리타분함’ 같은 것이었다, 라고 과거형을 쓴 것은 이 책을 만난 후 나의 시선과 사유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특히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고전들을 결코 교조적이거나 어렵지 않게, 이렇게 쉽게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지, 장장 515 페이지의 마지막을 덮을 때까지 고전읽기는 감동과 함께 새로운 설레임이었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진 ‘관계망’이라고 말한다. 또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 등의 인문주의적인 가치들로 채워져 있음에 주목”하고 “성찰적 동기와 실천적 관점에서 고전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전읽기”라고 설명한다. 특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해서도 안 되며(不忍人之心)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것(溫故知新)”이라고 말한다. 인성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사람을 배려하는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한 사회라고 충고한다. 점치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는 ‘주역’ 역시 그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론이다. 그 관계론의 중심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절제와 겸손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겸손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 또 이러한 인간관계론의 보고로 ‘논어’를 해석한다. 우리가 논어를 읽어야 하는 것은 사회변동기에 광범하게 제기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이라는 것이다. 마음 좋은 것이 덕 좋은 것만 못하다는 ‘심호불여덕호(心好不如德好)’를 통해 이웃과의 인간관계를 논한다. 참된 지식 역시 사람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고 “참된 지知는 사람을 아는 것”이라지만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하고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자기를 보여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 것,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 없는 대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환상은 버리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또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와 ‘학즉불고(學則不固)’를 통해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 공부임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면 완고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고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신우일신하며 계속 공부해야 할 목적이자 인문학적 소양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한 대목이다. 결국 “좋은 사람은 좋은 사회, 좋은 역사와 함께 만들어지는 것임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고 그런 인성의 고양은 바다로 가는 겸손한 여행”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동양고전 독법-강의’는 저자의 필모그라피 ‘처음처럼’을 앞에 두고 그렇게 한잔 하며 항상 곁에 두고픈 ‘참 좋은’ 책이다. 당신에게도 저자의 농축된 인문학적 내공과 겸손, 따스함의 여운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지식의 패러다임 ‘통섭’을 논하다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 강신익․김시천 엮음/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은 조금 어렵다. 과학지식을 철학적, 인문학적 통찰력으로 사유함으로써 ‘생명’과 ‘살아있음’에 대한 논제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하지만 또 행간 읽기가 결코 쉽지만 않은 지식의 깊이를 풀어낸다. 통섭(統攝: 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학문 이론이다.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이나 역할이 합쳐진 하이브리드와도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통섭과 하이브리드는 우리시대 지식의 새로운 담론인 동시에 풀어나가야 할 난제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과학과 철학, 의학과 철학, 인문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한 논객 16명이다. 저자들은 ‘△생명:주체 △자연:문화 △자아:인생 △몸:사회’라는 4가지 쳅터로 구성하고 각각에 해당되는 주제 4가지에 포커스를 맞춘다. ‘물질과 생명은 구분될 수 있는 것인지’부터 ‘갓 태어난 아기는 착할까’ 등등 기존의 학문 틀이나 이전의 사고 틀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다소 난해한 미해결 난제들을 담아내고 있다. 각 장마다 ‘깊이보기’라는 항목은 또 다른 생각의 사유를 위해 당신에게 결정적인 숙제를 내준다. “무의식에 대해 의학 이외의 학문 분야에서는 어떤 이론을 발전시켜 왔는지? 사회학, 문화학, 종교학 등에서는 무의식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등 다양한 질문을 제시하고 있는 점도 독특하다. 주제의 핵심인 용어에 대한 설명은 ‘핵심용어’로 정리되어 난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짚어주기도 한다. 특히 의료문제와 관련된 화두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담론을 펼친다. ‘건강, 사회의 문제일까, 개인의 문제일까’를 통해 독일제도를 모방한 일본제도를 수입하고 미국제도가 혼재하는 왜곡된 우리 의료제도의 모순을 꼬집는다. ‘고통 없는 삶이 좋은 것인가’에서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철학임을 설명한다. 기氣와 경락을 과학적, 수학적 관점에서 논증하거나 ‘의학의 주요관심사는 건강일까, 질병일까’를 통해 의학적 생리학과 병리학에 대한 논거를 이어가기도 한다. 인문학적 성찰과 과학적 비판력, 그리고 예술가적 공감 능력 만큼이나 통섭의 시대에 요구되는 지식에 대한 사유는 어쩌면 모든 지식의 세계가 동전의 양면성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인문의학-인문의 창으로 본 건강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엮음 | 휴머니스트 의학은 인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읽고 인문학은 의학에서 새로운 사유의 소재를 얻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건강과 의학을 과학만이 아닌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 한의학, 동양철학, 인도철학, 서양철학, 생명윤리학, 문학의 분야가 총망라되었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 정진홍의 인문경영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모든 영역에서 인문학적 통찰이 요구되고 경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깊이가 '건널 수 없는 차이와 통찰'을 가져온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CEO를 위한 인문학 조찬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정진홍 박사의 인문학적 깊이와 통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김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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