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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2) <91>
내려놓음(2) <91>
  • 의사신문
  • 승인 2008.10.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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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여름휴가 때 병원 내부를 수리했다. 병원내부가 낡은 것도 있었지만 대기실이 좁아 환자가 몰리는 시간에는 환자들이 서 있는 경우가 있어 대기실을 늘렸다. 그리고 병원내부에 있던 것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을 모두 내다 버렸다. 먼저 보지 않고 장식용으로 꽂아 놓았던 책들과 잡지를 모두 버렸다. 파지를 가지러 오시는 할머니가 리어카로 하루 종일 가지고 갔으니 꽤 많은 양이다.

책이 없어졌다고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고 마음이 홀가분해 지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상쾌함이 있다. 집에 와서 입지 않는 옷들과 구두, 창고에 있던 쓰지 않는 스키장비, 테니스라켓들을 모두 버리고 옷장, 신발장과 창고를 정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직도 버릴 것이 많다. 꼭 필요한 것만 놔두고 버린다면 지니고 있을 것은 몇 개 안된다. 사실 자가용도 필요 없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지하철이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되고 급하면 택시를 타면 된다. 집도 작은 집을 교외에 전세로 살면서 2년에 한번 살고 싶은 곳으로 이사하면 된다.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산다. 그러면서 더 소유하려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면서 불행하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렇게 하고 싶다. 아내와 두 딸이 나의 마음에 동조해준다면 모두 훌훌 털고 살고 싶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생각하지 않으려면 일용할 양식과 옷 한 벌로 만족하게 사는 단순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 위해 먼저 안식년을 갖고 싶다. 1년 동안 병원과 집에서 떠나 핸드폰이 울리지 않는 해외의 호수를 낀 숲속에서 간편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고 싶다. 배고픔만을 면하는 하루에 두 끼 정도 먹으며 낚시와 밭일과 사냥을 통해 먹거리를 얻고 싶다.

아직 건강할 때 이런 생활을 하고 싶다. 꼭 필요한 먹거리가 필요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 내려가 장을 보고 오겠다. 이런 일은 한 달에 한 번이면 좋겠다. 여러 곳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몸에 이상이 없다면 1년에 500만원이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너무 풍요로운 삶에 익숙하여 소유가 줄어들면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분주함과 염려에서 벗어나고 신문과 핸드폰과 인터넷에서 벗어나고 아는 모든 사람에게서도 멀어져 오직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질서를 바라보고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과 짐승들 소리를 들으며 전기 불을 켜지 않고 등잔불로 밤을 밝히며 원시와 자연을 느끼고 싶다. 고요 속에 홀로 서 있는 자신에게 질문하고 자신의 존재와 신분에 대해서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나는 너무나 많이 외부적인 자극에 반응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제 나는 남과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제 새로운 것들 -옷, 친구, 지식- 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겠다. 헌 양말을 꿰매서 신고 헌옷을 뒤집어서 다시 입겠다. 하루 종일 숲속에 있을지라도 나의 생각은 온 우주를 다닐 것이고 나의 마음은 호수처럼 맑을 것이다. 명예와 소유의 욕망과 자녀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고 내 육체마저 버릴 수 있다면 나를 붙잡고 있는 모든 염려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이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빈곤도 빈곤이 아니며 연약함도 연약함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괴물인 문명과 제도와 법칙과 이기적인 탐욕을 벗어 던지고 숲으로 가겠다.

이주성<인천 이주성비뇨기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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