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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계곡의 가을
홍정계곡의 가을
  • 의사신문
  • 승인 2008.10.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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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 이정균 원장
`Happy 700 평창', 산부자다. 높이 1500m이상의 산이 셋, 1200m이상의 산도 열다섯이나 된다. 높은산 지역 깊은 계곡도 많지만 뇌운, 금당 그리고 흥정계곡은 사계절 풍광 뛰어나지만 가을 단풍 경치에는 빠지지 않는 청정지역이다. 한강기맥의 흥정산 등산길에 흥정계곡을 찾아 나섰다. 평창 관광 아이콘에 허브 농원은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생긴 허브농원 `허브나라'는 흥정계곡 찾아가는 흥정천의 중간에 있다.

흥정계곡 초입 무이교 주변은 잔잔한 개울의 흥정천이나 구유소 넓은 암반사이에는 급물살이 흘러내리고 허브농원 앞에서는 흥정폭포를 형성하고 있다. 계곡은 위쪽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며 협곡사이 울창한 수림은 한 여름에도 15도 이상을 오르지 않고, 개울물 수온은 차갑고 온도 변화 적으니 열목어 서식 청정지역이다. 협곡 따라 주변은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싸리나무와 두릅나무가 밀생하여 단풍이 아름다운 산이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평창을 일컬어 “하늘이 낮아 고개 위가 겨우 석자”라고 표현했다.

흥정, 금당계곡 따라 이제는 관광 펜션의 거리가 이어지고, 협곡 따라 인적이 이어진다. 흥정산 산행에 나서 승용차로 올라 갈 수 있는 곳까지는 이제 옛날 골목길이 아니었다. 펜션은 계속 지어지고 수십 년생 소나무는 기중기에 매달려 옮겨 심어지고 있었다. 집과 집으로 연결되는 길,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누고 안부를 나누는 길, 그런 골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게 될까. 길을 막고 작업하면서 승용차 길을 터주기 싫어서 엉뚱한 등산길을 안내하고 있는 건축주는 산간 오지에 행복을 위해 집을 짓고 있는 것일까.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을 짓던 선조들의 여유를 생각하며 오늘날 슬로건축(slow architecture) 정신을 잠시 생각하였다.

흥정산 하산길인 `가제와 곱'을 따라 계곡 산행을 시작하였다. 사랑, 단결, 협력의 꽃말 천인국의 사랑, 금계국의 황색꽃 철을 지나, 자주 빛의 유혹 벌개미취는 가을의 상징이다. 강원도의 상징이다.

여치는 `뚜르르,뚜르르' 밤에 울어 가을을 알리고, 귀뚜라미는 `찌르르,찌르르' 낮에 수놈이 울어 가을의 전령이다. 산촌마을 산과들은 가을이 깊어간다. 숲이 시작되는 산길 언덕길의 외딴 오솔길엔 온갖 풀씨가 발걸음 발길에 부딪쳐 떨어진다.

한낮의 가을 햇빛, 아침저녁의 찬이슬 맞아 야물게 여문 들꽃·풀·씨앗은 지난여름의 무더위와 폭풍 그리고 비를 맞아 긴 여름의 기다림 이제 새봄의 재탄생의 기적을 기다리며 생물순환의 연결고리는 변함없이 살아 숨쉬는 자연의 약동을 읽는다

인적 드물어 희미한 산길, 가도 가도 끝이 없던 너덜 길, 바위와 고사목덤불길엔 덤불이 얽히고설키어 있는 머루 넝쿨 그리고 연분홍 단풍, 녹황색 머루열매, 푸른 빛깔의 청머루열매, 염치없는 등산 나그네들은 머루 주어 먹기에 바쁘다.

등반가 `머머리'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고 하였다 머머리즘(Mummerism)은 등반정신을 표현하는 말이다. `어떤 방법이든 산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의 반대어다. 쉽게 오르기보다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 등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 그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시사철 신선한 초록빛 잃지 않는 소나무도 가을준비에 노랑색 새치가 생겼다. 세상 모든 것들을 너른 가슴으로 넉넉하게 받아들여 품어 안았던 숲은 이제 겨울준비를 위해 비움의 준비를 시작하였다.

석기문화에 대한 향수 DNA 채취 본능에 대한 욕구 충족은 도토리를 줍고 열매를 따 먹는 본성에서 읽는다. `도토리가 풍년이면 나락농사 흉년이다' 그러나 올해는 넉넉한 들판을 내려다보고 지천으로 떨어진 도토리 열매를 보면 그 옛날 말도 틀리지 않는가 생각하게 된다. 다람쥐도 청솔모도 모두 넉넉한 양식을 보면서 행복해 할 것 같다.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 없는 풍성한 가을날이다. 길 잃어 방황했던 하루였다. 그라나 대자연의 축제에 초대를 받아 다래 파티에 참석했으니 신의 축복, 흙의 자비 그리고 자연의 정성 다래를 먹으며 어찌 이상향으로 해석되는 `청산', `낙원', 불교의 `극락', 기독교의 `천당'으로 해석되는 우리의 고전 `청산별곡'이야기가 빠질 수 있겠는가.

살어리 살어리랏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고려 서민들이 불렀던 고려 속요, 허무주의 갈등표현의 노래다. 운둔의 어리석음, 불가능, 인생의 괴로움을 현실적으로 파악한 뛰어난 작품이 아닌가.

우리나라에는 다래나무, 쥐다래나무, 섬다래 그리고 개다래나무가 있다. 강한 다래나무, 뱀이 또아리 틀 듯 계곡을 차지하고 감고 올라가는 강인한 나무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 인간은 어둠 속에서 가슴을 짓누르는 암담함으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어둠과 암담함은 모두 우리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서 발생한다 했으니, 마음을 비우라는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상향인 청산에 가서 머루, 다래 먹고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래나무 열매는 미후도, 다래, 등리, 목자라고 부른다. 미후도는 원숭이 `미'자와 원숭이 `후'를 쓰고 있으니 원숭이복숭아다.

가을은 오는 듯 가는 계절, 있는 듯 없는 듯 속절없이 지나치는 계절이다. 올해는 가을이 더디게 온다고들 호들갑이다. 잘 익은 가을 빛깔에는 과일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제대로 익었을 때다. 익을 대로 익은 과일의 농익은 빛깔, 홍시의 감색, 불에 갓 구어 낸 은행의 노릇노릇한 빛깔, 추수하기 직전 노랗게 영근 벼, 잘 익은 고구마의 노오란 살빛깔이 아니겠는가.

나는 푸른 빛깔의 청다래 맑은 색깔, 농익은 녹황색 다래 색깔을 더 보태고 싶다.

이정균<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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