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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질 때까지 <88>
낙엽이 질 때까지 <88>
  • 의사신문
  • 승인 2008.10.0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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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가지 사이로 흐르는/계절의 순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새순이 돋고/녹음이 지고/단풍이 들고/낙엽이 지고/앙상한 가지가 겨울을 맞이합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체는/태어났다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금년에도 가을이 와 있습니다/지나가는 행인들의 긴 옷차림 위에/새벽녘에 몰래 내린 이슬에도/가을이 와 있습니다.

○…에어컨을 틀어도 겨우 잠들 수 있었던/무덥고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가을을 생각지도 못했었는데/떠밀어도 떠밀어도/가지 않겠다던 여름은 가고/아침이면 창문을 닫아야 하는 선선한 바람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뜰 앞의 코스모스 꽃잎 위에/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계절을 주관하시는 당신은/언제나 신실하셔서/끝까지 고집부리며 오지 않겠다던/가을을 조금 늦게라도/불러 왔습니다.

○…계절의 반복 속에/사람들은 늙어 가고/또 낙엽처럼 떨어집니다/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우리의 얼굴에도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우리들은 늙는 현상에 대해서는 /공부하고 알고 있지만/왜 늙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언제나 동일하고/언제나 신실하며/천지를 운행하는 질서 앞에/이 가을에 잠잠히/무릎 꿇습니다.

○…지나간 여름은/길고 지루했지만/남국(南國)의 그 강렬한 햇볕으로/나무마다/풍성한 열매를/맺었습니다/감과 포도와 배와 사과와 대추/너무나 탐스럽고/귀한 열매들입니다.

○…우리 또래의/가을에 서 있는 의사들은/머리에 서리 내리고/얼굴에는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힘든 여름동안/어려운 여건 속에서도/성실하게 환자를 보았고/자녀를 양육하였습니다/덥고 병충해도 많아/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큰 태풍은 비껴갔고/긴 장마도 없었습니다.

○…이제 이 가을에/무겁게 달린 과일들을 내려놓고/그 열매들로 인하여/기뻐하며/가벼운 마음으로/가을을 만끽하렵니다/인생의 가을에 서서/황금벌판을 바라보면서/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계절의 질서를/겸손하게 받아들이고/시간의 흐름을 마음으로 느끼며/현재를 살아갑니다.

○…당신의 성품과 질서대로라면/이제 차가운 바람이 불면/잎들은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 /낙엽이 되어/떨어질 것입니다.

○…긴 가을동안/탐스런 열매들로 인하여 기뻐하며/질서 앞에 고개 숙이고/인생에 한번 뿐인 이 가을을 즐기며 누리겠습니다/낙엽이 질 때까지…

이주성<인천 이주성비뇨기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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