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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를 만나다
책, 영화를 만나다
  • 김향희 기자
  • 승인 2008.10.07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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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香희 기자의 특별한 Book Recipe 2

부산은 지금 영화의 물결로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영화 속 바다 한가운데 풍덩 빠질 수 없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과 아쉬움(!)을 뒤로 하며 ‘김香희 기자의 특별한 Book Recipe’ 그 두 번째 테마는 바로 ‘영화’입니다. 책만큼이나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미디어로, 희노애락과 생노병사 등 온갖 인생사가 집약된 매체가 또 영화가 아닐런지요. ‘프로이트와 영화를 본다면’은 영화 속 사람읽기라는 점에서,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는 영화 속 책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책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영화보기의 시선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 영화로 만나는 두 권의 책 이야기와 함께 해 보실까요.

*정신과 의사의 영화 속 사람읽기

프로이트와 영화를 본다면 김상준 지음/BG북갤러리

우유와 화분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레옹. 우유와 화분 속의 화초를 통해 아직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의 코드를 읽어낸다. 영화 ‘피아노’는 프로이트 정신세계의 세 구역인 자아, 이드, 초자아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하고, 올리버슨톤 감독의 영화 ‘닉슨’에서는 칼 구스타프 융의 콤플렉스를 이야기한다. 정신과 의사인 김상준씨의 이 책은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를 분석하고 따분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여러 이론들을 풀어나간다.

관심과 직업은 못 속이는 것일까. 혹자는 영화에서 패션을 이야기하고 또 혹자는 음식을 얘기하듯이 저자는 의사로서의 직업병을 버리지 못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사람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미스 데이지와 그녀의 운전기사 흑인 호크와의 25년간 우정을 다룬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피할 수 없게 된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또 조나단 뎀 감독의 ‘양들의 침묵’은 정신과 의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을 여러 가지 상징을 이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세상이 마냥 공평치 않다고 한탄하는 살리에르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함께 했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만약 살리에르가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인생의 불공평함을 즐기고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세상은 나름대로 공평한 곳임을 역설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랑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고 담백하게 현실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사랑도 사람의 일인지라 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에서 어찌 사랑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있겠냐는 것.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인생에서 무엇을 소유하고 가지려 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놓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다. 그것을 놓게 되면 너무 아깝고 죽을 것만 같고 세상사는 맛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두 손을 놓게 되면 아깝기는 하지만 비로소 두 손은 자유로워진다. 또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이 청각을 자극하던 ‘파니핑크’의 여주인공 파니처럼 외로움 역시 피하지 말고 외로움이 몰려왔을 때 푹 빠져보라고 충고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남과 어떻게 다른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외로움을 통하지 않고 우리는 현재 시간에 집중할 수 없다. 바로 지금 그 시간을 또 값지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외로움이라고 강조한다.



**스크린에서 책을 말하다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이하영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책은 재미있다. 영화도 재미있다. 특히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책이 참 쉽게 읽힌다고 저자는 말한다. ditto.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대개 영화가 실망스럽다고 말하게 되지만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상이 독서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상상을 훨씬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동감.

또 영화는 고전읽기가 버거운 독자를 위해 상상 대행, 독해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원작은 다시 영화 자세히 보기로 재활용 된다고 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셀린느와 제시가 파리행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각자 읽고 있던 책을 소개하는 장면을 본 뒤로 영화 속 책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현재 베테랑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한달 후 일년 후’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만난다. 너무 많이 읽어서 다 외워버린 책, 너무나 좋아해서 원래 이름이 구미코인 그녀는 자신을 ‘조제’라고 말하고, 이 책의 제목처럼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고 남자 주인공 쓰네오는 회상한다. 결국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영화 속 조제와 소설 속 조제가 가르쳐 준 사랑과 인생의 길임을 가르쳐준다. 조너선과 사라가 운명적인 사랑임을 확인해주는 연결고리 작용을 했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란 책은 ‘세렌디비티’에서 당신은 나의 운명임을 외친다.

‘오만과 편견’을 200번도 넘게 읽었다는 그녀 역시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깨닫지 못하는 ‘유브갓메일‘의 캐슬린, ’쇼생크 탈출‘이 권해준 한 권의 책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다.

또 이 책에 소개된 영화에는 유난히 고전이 많고 이 고전을 읽는 것은 만만치 않다. 저자가 굳이 언급한 ‘몽테크리스토 백작’ 뿐 아니라 영화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시학’은 또 어떤가. 문학, 철학, 연극과 음악, 심지어 과학에 입문할 때도 결코 비켜갈 수 없는 고전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항상 고전들은 그 방대한 분량에 먼저 기가 꺽이기는 하지만 또 오랜 친구를 다시 조우하듯 책꽂이에 너무 오래 묵혀두어 빛바랜 옛소설을 다시 꺼내 읽는 기쁨 또한 크다고 얘기한다. 책 읽기의 즐거움이 유독 고전 뿐이겠는가.

특히 “외로울 때, 막다른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문제의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 저자가 권해주는 한편의 책은 바로 ‘잠 잘 때 베고 자기에 딱 좋은 두께’의 책이라던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이다. 이 외에도 우리 마음을 설레게 했던 23편의 영화와 그 영화속 이야기들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또 다른 행간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런 일러스트도 매력적.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러브레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빠진 점이라고나 할까.



TIP.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영화를 열심히 보러 다니기엔 너무도 게을렀고 골방에 처박혀 책을 보기엔 너무도 발랄했으며 그렇다고 차분하게 음악을 듣기엔 너무도 산만했던' 작가 김영하의 두 번째 영화 에세이. 그가 털어놓는 영화에 얽힌 단상들과 곁에서 적절하게 맞장구를 쳐주는 도날드닭 이우일의 그림이 유쾌하다.

*영화관 옆 철학카페 김용규 지음 | 이론과실천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성이라는 6개 키워드마다 각 3편의 영화를 소개하며 영화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들을 정리했다. 선택된 영화 역시 '중앙역', '체리의 향기', '솔라리스', '매그놀리아', '나라야마 부시코' 등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것들로 녹록치않은 깊이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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