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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몇 점짜리 의사이십니까?
당신은 지금 몇 점짜리 의사이십니까?
  • 김향희 기자
  • 승인 2008.10.07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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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香희 기자의 특별한 Book Recipe 1

창문 가득 쏟아지는 가을을 느끼고 계신가요? 향기로운 차 한잔과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 줄 책 몇 권이 당신 곁에 있다면 이 가을이 마냥 헛헛하지만은 않을텐데요, ‘김香희 기자의 특별한 Book Recipe’는 매번 테마를 정한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답니다. 요리법, 처방, 비법이란 의미가 담긴 레시피(Recipe)란 어감처럼 같은 재료라도 이 레시피에 따라 다양한 요리의 세계가 펼쳐지듯이 어떤 테마로 읽느냐에 따라 책을 읽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때로는 곰삵은 시골밥상처럼, 또 때로는 잘 차려진 정찬처럼, 그리고 가끔은 생크림 가득한 스파게티처럼 그렇게 알콩달콩 맛있는 책 이야기를 풀어갈까 합니다. 그 첫 번째 테마는 의사로서의 영원한 화두인 ‘좋은 의사’에 대한 두 권의 책입니다.

*오직 ‘환자의 생명’만이 중심이었던 우리 시대의 큰 스승

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다산책방

하얀 가운을 입고 감동스럽던 의학도로서 첫 선서를 하던 그 때의 떨리는 마음과 벅차오름을 기억하시는지? 짧은 몇 초의 선서와 함께 당신이 약속했던 의사로서의 ‘서원’은 무엇이었나? 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가져봄직한 ‘좋은 의사’에 대한 고민은 첫마음처럼 그렇게 아직도 당신의 마음에 각인되고 있는가?

‘청년의사 장기려’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바보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로 불리며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다.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겠노라’는 서원을 평생 지키며 오직 의료의 중심에 ‘환자’만을 생각했고, 묘비에 조차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은 선량한 부산시민, 의사, 크리스천. 이곳 모란공원에 잠들다’고 적혀있을 정도로 시대를 함께 살아간 ‘좋은 의사’의 대부격인 셈.

꿰맬 관串자와 마음 심心자로 이루어진 ‘환자’의 환(患)만 보더라도 의사란 상처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어야 한다.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스승 백인제의 말씀 또한 평생 그가 지킨 의사의 소신에 대한 철학이기도 하다. 성실과 인내, 끈기 역시 의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가르침을 주신 은사이다.

이 책에는 또한 “사랑 없는 의무는 고달프고 의무 없는 사랑은 공허하다”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소설 제목을 ‘사랑’이라 지었다던 이광수와의 이야기와 함석헌, 조만식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러나 불운한 시대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던 천재들의 시대적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솔솔한 감동도 있다.

이 외에도 김일성을 치료한 일화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소설가 손홍규라는 작가적 상상력과 결합되어 인간으로서의 장기려를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옷이란 건 말이다, 네 몸의 온기를 가두어 두는 것일 뿐이란다. 옷 자체가 따뜻한 건 아니잖느냐. 그런데도 우리가 옷을 입으면 따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옷이 네 몸에서 나오는 열기가 허공으로 헛되이 흩어져버리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결국 온기를 지닌 건 바로 너 자신이란다. 옷 때문에 따뜻한 게 아니고 사람은 원래 그렇게 따뜻한 존재로 이 세상에 나온 거란다... 기려야, 너는 옷을 여러 벌 껴입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옷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냐. 이 할머니는 네가 다른 사람들의 옷이 되어줬으면 싶구나. 다른 사람들의 체온을 지켜주는, 옷처럼 늘 사람들 곁에 머무는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구나.”

어린 시절 그의 할머니의 바람처럼 늘 사람 곁에 머무는 따뜻한 옷이 되어 체온을 지켜준 장기려 박사의 삶이 새삼 경건하게 다가오는 시월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노력, 그리고 실천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아툴 가완디 지음/동녘 사이언스

성실함과 실천,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자세. 의사이자 작가로 맥아더 펠로십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미국인 저자가 내놓는 ‘좋은 의사가 되는 것’에 대한 명쾌한 해법이다.

특히 이 책은 의사들에게 가장 불편한 질문 몇 가지를 던진다. 의사들은 과연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의사가 실수했을 때 환자들에게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 아픈 환자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의사란 직업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하지만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이 타인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것 역시 의사에게 주어진 몫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들 중 몇 가지. 최첨단 의료의 중심에 있는 미국조차 매년 200만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감염되고 그 중 9만명이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감염의 확산을 지속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의사와 간호사의 ‘손 씻기’라는 것. 또한 가슴이나 골반 등 옷을 벗어야만 진찰 가능한 상황에서 성별이 다른 의사와 환자, 단 두 명만의 조우는 환자만큼이나 미국 의사들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미국에서는 이럴 때 간호사나 환자가족이 함께 참석하는 ‘샤프롱’ 제도가 있다는 것 등이 다소 생뚱맞다. 의사들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전문가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빼어난 실력만큼 환자를 얼마나 허물없이 대할지, 격식을 차릴지, 얼마나 과묵할지 같이 환자와 맺는 라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질병과 싸우는 일이 단지 유전자나 세포와의 씨름, 과학적 기계장치만의 조작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관계 설정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사와 환자의 유대는 약속과 신뢰, 희망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사적인 관계라는 것, 바로 이 점이 ‘좋은 의사’란 단지 의료의 문제와 통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특히 의사가 따라야 할 원칙 중 하나로 “항상 환자가 건강해 질 것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싸우는 의사가 되라”고 강조한다. 환자를 위해 좀 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밤낮없이 찾아보라는 것. 의사가 도울 수 있는 환자인데도 포기하는 실수 중의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바로 ‘늘 끝까지 싸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의사도 바라지 않고 그냥 중간만 가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그렇다면 저자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 어떻게 누군가는 평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일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부끄러워해야 할 게 있다. 문제는 평균이 아니라 거기서 안주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의 평균이 우리의 숙명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외모, 돈, 테니스와 같은 문제라면 체념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지만 당신의 외과의, 당신 아이의 소아과 의사, 당신 동네의 경찰서, 당신 동네의 고등학교라고 해도 그럴까? 그들에게 우리 인생과 자식의 삶이 걸려 있는데 그들이 평균에 안주한다는 것이 될 말인가”라고.

성공하는 의사의 관건으로 성실함과 도덕적 투명성, 새로운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 기꺼이 하려는 자발성이 필요하다지만 비단 의사만의 성공조건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모든 것은 통한다고 했던가. 모든 일에 성공하기 위한 필요충분이 아닐는지.

끝으로 저자는 좋은 의사, 아니 긍정적인 괴짜가 되기 위한 다섯 가지 제언을 상기시킨다.

아무리 바빠도 진료시 잠깐의 시간을 내어 적절한 시점에 환자에게 인간적인 질문을 하라는 것. 바로 관계맺기다. 문득 어린왕자가 생각나는 구절이다. 또한 힘들어도 절대 투덜대지 말고 무슨 일이든 숫자적 통계치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특이할 만한 것은 글을 쓰라는 것. 힘들고 단조로운 의료계는 한편으로는 큰 목적의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다 보면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냥 짧은 메모식의 글도 좋으니 무조건 쓰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항상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의사의 선택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삶의 바꾼다. 어쩌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좋은 의사에 대한 본질은 삶의 모든 공통분모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몰라서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결국 핵심은 ‘의사 자신’이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다. 구체적인 관심과 노력, 그리고 실천이다. 지금, 당신은 아직도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가. 아님 남들이 다 가는 데로 가장 안전한 길, 그저 하얀 색 가운을 걸친 그저 그런 의사로 남고 싶은가? 그 선택은 바로 당신의 몫이다.

Tip.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히포크라테스 선서 - 250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의학의 근본 정신 반덕진 지음 / 사이언스북스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지켜가겠습니다" 의사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고대 의학의 선구자, 서양 의학의 아버지이자 의학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인식한 휴머니스트인 히포크라테스다. 전세계 의학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비롯, 그의 의학세계로 들어가는 독법을 제시한다.

*나의 생애와 사상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문예출판사 슈바이처 박사의 유년시절부터 그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진솔한 삶의 기록이다. 음악학자, 철학자로서의 눈부신 명성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의 원시림 속에서 의사의 길을 택한 그의 생애는 `생에 대한 외경`이라는 사상을 삶에 그대로 투영한 진정한 실천가의 모습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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