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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87>
행복한 가정 <87>
  • 의사신문
  • 승인 2008.10.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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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을 필자의 병원에 다니는 올해 61세가 된 환자가 조금 우울한 표정을 하고 내가 막 퇴근하려는데 병원으로 들어섰다. 환자의 아내와 어머니, 두 자녀 모두 나의 단골 환자이고 필자와 운동을 오랫 동안 같이 했기 때문에 그의 가정을 잘 아는데 참 분위기가 좋고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무좀 연고를 처방해주며 힘이 없고 우울한 이유를 물었는데 아내와 별거한 지 40일이 지났다고 한다. 지난 말복(末伏) 때 아내에게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아내는 집에 갈치가 있으니 집에 가서 먹자고 했단다. 그것이 부부싸움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나이든 어머니와 자녀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고 한숨 지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내의 잔소리가 점점 짜증이 난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웃어넘기기 쉽다.

가정이 해체되고 자살이 급증하고 살아가는 방향을 상실한 이유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치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집중력이 있고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고 인생을 재미있게 잘 살아가게 하려면 부부가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매사에 아내가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고 자녀들보다 남편이 우선 돼야 한다.

예를 들어 외식을 나갈 때도 남편이 먹고 싶은 것을 먼저 물어보고 그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자녀들을 따라오게 해야 한다. 집에서도 음식을 만들 때 자녀들이 먹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된장찌개에 청량고추를 넣는 것을 남편이 원하면 아이들이 싫어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럴 때 집안의 질서가 잡혀가고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배우자를 만날 때도 그러한 안정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온통 자녀들의 교육에만 집중하고 남편은 자녀들을 위하여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해 버렸다. 명퇴하여 돈을 벌지 못하는 남편은 이미 남편이 아니고 아버지가 아닌 게 돼버렸다. 자녀와 아내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남편은 우리나라에서 돈을 버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진정 자녀를 위하는 길이 아니다. 피치 못해 공부하러 가려면 가족 모두가 가야 한다. 영어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좋은 기능을 가진 기계와 같이 메마른 인생을 살기가 쉽고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 꾸린 가정은 행복할 수가 없다.

주위에 말도 못하고 행복한 척 살고 있지만 서로 대화도 없이 각방을 쓰고 각자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나이가 80세가 되어도 밥을 각자 먹고 대화도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방에서 남남처럼 사는 부부들이 많다. 남자는 구조적으로 칭찬과 인정을 하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

아내가 남편을 칭찬하고 인정하고 의견을 따라주면 남편은 아내와 자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전사가 되고 그런 아내를 떠나지 않고 일찍 퇴근하여 늘 함께 있으려 한다. 모든 남자는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는 아내를 떠나고 싶어 한다. 이 컬럼을 보고 `제발 떠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불행한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근처에는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할머니는 리어카를 밀며 파지(破紙)를 줍는 노부부가 계시다. 힘들게 사는 모습이 조금 안됐지만 불쌍하게 보이지 않고 아름답게 보인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에 있는 점을 뽑아야겠다며 내원했는데 할머니는 옆에서 부끄러운 듯 서 있었다. 파지를 주어 어렵게 번 돈으로 아내의 얼굴을 아름답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 한 참을 돌아서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잃어버린 전설과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던 나의 회한이 오버랩되었고 노부부의 인생 전부가 아름다움과 감동의 영상들로 흐르는 눈물사이로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주성<인천 이주성비뇨기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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