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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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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08.09.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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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의 실현

예전에 필자는 폭스바겐 비틀과 시트로엥 2CV 이야기를 여러회에 걸쳐 적은 적이 있다. 비틀은 전쟁 후 가볍고 빠른 초기의 포르세의 플랫폼 역할을 했고 아직도 포르세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에서 비틀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구형 비틀과 911은 정말 많이 닮아있다.

2CV는 아직도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고 낮은 출력의 엔진으로 엄청난 내구성을 발휘한 덕택에 아주 오랫동안 존재했다. 사람들이 이 차들을 잊어버리려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벤츠의 작은 차 스마트는 2CV의 디자인을 많이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디자이너들의 영감속에서 2CV는 다시 살아났다.

BMW에서 생산하고 있는 미니쿠퍼 역시 원래의 차체는 사라졌지만 디자인 DNA는 어떻게든 살아남은 존재라고 하겠다. 디자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폭스바겐 비틀을 다시 리바이벌 한 뉴비틀이 실용적인지 않은 것 같은데도 꾸준히 팔리는 것을 보면 이런 사실은 디자인과 차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든다.

미니쿠퍼라는 이름은 이씨고니스(Issigonis)가 설계한 미니와 나중에 회사에 합류한 존쿠퍼라는 엔지니어 이라 레이서의 이름이 합쳐진 것이다. 미니쿠퍼와 쿠퍼s 라는 이름은 미니가 1960년대의 랠리를 몇 번 석권했을 때 고성능 버전으로 발매된 차종이다. 요즘 나오는 차종은 미니 시리즈의 가장 강력한 차종의 이미지와 사랑받던 미니의 문화와 디자인 요소를 강조한다. 새로운 차종은 걱정과 달리 크게 성공했다. 원래의 미니는 지금으로부터 50년 가량 전에 설계됐고 훨씬 작았다. 말 그대로 미니멀리즘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차의 무게는 600Kg을 조금 넘고 1959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됐다.

차의 디자인은 ADO15(Austin Drawing Office project number 15)라는 프로젝트에서 갑자기 채택된 것이었다. 1956년 수에즈운하 봉쇄 사태로 영국에는 기름의 공급이 줄어 기름을 배급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차들의 크기가 커져서 당시에도 버블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큰 차들이 늘어나고 있을 당시였다. 느슨하게 여러 개의 메이커로 구성된 BMC의 회장은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차를 지시했다.

차는 10×4×4 feet(3×1.2×1.2m)의 크기에 적어도 1.8미터 이상의 탑승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단서도 붙었다. 차가 작다고 해서 탑승공간도 작아서는 실용성이 떨어지고 만다. 거기다가 불경기 상황의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존 소형차의 엔진을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단서도 붙였다.

디자인팀의 인적구성도 정말 작은 인원이 배치되었다, 이씨고니스와 두 명의 엔지니어, 두 명의 학생 엔지니어 그리고 네명의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전부인 구성으로 설계팀이 구성됐다. 이씨고니스는 과거 BMC에서 Alvis라는 작은차의 설계팀에 있다가 BMC를 떠났으나 적임자라는 이유로 다시 기용되었다. 이들은 1년 동안 작업하여 아주 간단하고 작은 차를 만들어냈다. 그전까지 존재하던 차의 복잡한 구성으로는 불가능했다.

디자인팀은 기존의 부품을 이용하긴 했지만 기존의 디자인은 버려야 했다. 엔진은 횡(traverse)으로 배치해야 했으며 후륜구동의 디자인을 버리고 전륜구동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후륜변속기의 구성으로는 도저히 탑승공간을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디자인은 나중에 모든 전륜구동차의 기본구성이 됐다.

전륜구동은 당시 시트로엥의 트락숑 아방(traction avante)이라는 차에 적용된 지 얼마 안 된 기술이었다. 시트로엥은 초기 트락숑 아방의 트러블 때문에 크게 고생하고 나서야 간신히 차 같은 차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엔진룸의 크기는 줄일 수 있었다. 서스펜션도 고무원뿔로 만든 작은 막대기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혁신적인 디자인이긴 했으나 승차감은 험한 길에서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엔진을 횡으로 배치한 이상 스프링을 달 공간이 없었다. 자동차라기 보다는 카트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설계가 끝나고 남은 것은 오렌지색의 조그만 프로토타입이었다고 한다. 모든 관행을 깬 차가 탄생했다. 이후의 판매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씨고니스는 미니의 설계로 경의 작위까지 받았다.

당시의 비상 상황이 만들어 낸 조건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간단한 구성으로 만든 차의 탄생이었다. 비틀과 2CV가 파격이었다면 미니도 파격이었다. 이들의 성공의 요인은 디자인이나 엔지니어링의 우수성도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요인도 있다. 사람들의 적응능력도 우수했던 것이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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