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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수 이야기 <84>
어느 목수 이야기 <84>
  • 의사신문
  • 승인 2008.09.0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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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칼럼에는 지금 개원하고 있는 필자의 병원 인테리어를 해준 목수이야기를 할까한다. 처음 그 분을 만난 것은 15년 전쯤 환자로 필자의 병원에 오면서 부터인데 선한 얼굴과 예의 바른 모습에 나는 반해버리고 말았다.

필자와 나이가 같지만 목수일로 단련된 몸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필자보다 젊고 자신에 차 있었다. 개원하고 있던 병원의 내부를 확장할 일이 있어 부탁했을 때나 그 후의 작은 일들을 부탁할 때도 그분은 항상 도와주었고 웬만한 일은 돈도 받지 않았다. 수고비를 줄 때도 너무 많이 받았다고 일부를 돌려주는 사람이고 동료의사들의 인테리어를 맡아 할 때도 동일하게 성실하고 거짓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10년전 이 목수의 아내가 폐암선고를 받고 뇌에 전이되어 뇌수술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감사하게 사는 모습은 어느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내는 그 몸으로 병원에 호스피스 봉사를 9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런 역경 가운데서도 두 명 모두 대학에 입학하여 쾌활하게 살고 있다.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하루만 같이 산다면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목수의 삶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9년째 목수의 아내는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이유는 담당 의사가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느 잡지에 실린 이 목수의 가족사진을 오려내 진료실에 붙여 놓고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 힘든 일을 당한 사람에게 그 사진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기쁨에 찬 목수의 네 명의 가족사진을 보며 필자는 매일 우울에서 벗어난다. 이미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사는 목수와 그의 아내에게서 느껴지는 평화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물질과 욕망을 따라 분주하게 사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사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참 행복하게 보입니다” 필자가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면 웃으며 대답한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상황은 쉽지 않지만 언젠가 이 상황은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수는 현실에서의 상황이 바뀌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아내의 삶이 끝나는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애써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만족함이 없었고 아내가 투병을 시작하면서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는 것은 포기하고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게 되면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한 달에 10일 정도는 힘이 없어 누워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지금이 하늘나라로 갈 시간인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일어나게 되면 말기 암 환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병원 수입이 다른 사람보다 적다고 우울해하고 자녀들이 명문대에 다니지 않는다고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동료 의사보다 골프를 잘 하지 못한다고 화를 낸다. 이 세상일에 집착해서 산다면 참 행복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목마르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흐르나 바다를 채우지 못하고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

참 행복은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란 자기 마음에,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의 행복이란 별것이 아니다. 이 가을에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걸을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나무는 이제 낙엽이 지고 겨울을 준비하고 또 봄의 부활을 소망할 것이다.

이주성<인천 이주성비뇨기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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