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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서울시의사산악회 명지산 등반
<산행기>서울시의사산악회 명지산 등반
  • 황선문 기자
  • 승인 2004.12.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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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5일 목요일, 서울에 내린 비는 명지산에 함박눈을 내렸는가 보다.
박홍구 등반대장은 아이젠을 급히 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눈꽃 산행을 기대하며 일요일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 후 의사산악회 등반에 처음 참가하는 아들과 함께 2호차에 자리를 잡았다. 의사산악회 훈련팀 산행에 참가하여 등산수칙과 요령을 숙지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좋은 산에 아들과 같이 갔으면 했는데 선뜻 따라 나서니 고맙다.

 아들이 오른 산이 우면산, 관악산 정도인데 1000미터가 넘는 명지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앞선다.
버스는 새벽의 조용한 우회도로를 달려 어느덧 경춘가도 대성리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성리, 청평, 가평, 남이섬, 강촌 그리고 춘천으로 이어지는 경춘선은 70·80년대에는 추억의 강변이었다.
아름다운 북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그림 같은 집들은 우리에게 꿈을 주었고, 푸르르고 울창한 숲과 자연은 우리에게 낭만을 안겨주던 그런 곳이었다.
여전히 강은 푸르고 맑고 강변의 아름다운 집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평천을 굽이굽이 돌아 산행기점인 익근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 15분. 채비를 정리하고 삼삼오오 등산길로 접어든다.
짙푸른 하늘과 코에 와 닿는 공기가 상큼하다.

 명지산 승천사(明智山 昇天寺) - 명지산에 오르면 하늘에 오르는 길이 있다?
 명지산(해발 1267미터)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와 하면 상판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경기 제2고봉이다.
가평천을 사이에 두고 제1고봉인 화악산(華岳山 해발 1468m)과 마주보고 있는 이 산은 정상에서 사방으로 가지를 친 산릉과 계곡이 제법 길고 넓기 때문에 화악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 산세를 자랑한다.
등산 코스는 크게 나누어 두 곳이다. 오늘 우리가 오르려는 익근리에서 출발하여 명지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과 반대 방향인 상판리에서 귀목고개를 거쳐 1250봉(일명 명지남봉)을 경유하여 정상에 도달하는 코스가 그것이다.
이곳 매표소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5.7Km로 시오리길이다. 왕복 11.4Km 산행의 예정시간은 4시간 30분. 아무래도 내 걸음으로는 무리다.
허나 산에 와서 정상을 밟지 않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승천사 일주문이 우리를 맞는다. 일주문위로 우리가 올라 갈 명지산 정상이 흰눈을 뒤집어쓰고 우리를 오라 손짓하는 것 같다.
일주문에서 잠시 기념촬영 후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승천사 돌담길에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좌측 능선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낙엽송들이 초겨울의 쓸쓸함을 보여 주지만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로 계곡에 들어서는 느낌은 포근하다.
옆에 아들이 있어서 인가. 평탄한 흙길과 자갈길을 따라 30여분 산행 후 겉옷을 벗고 땀을 닦느라 바위에 멈춰 선다.
좌측의 명지천에서는 깊은 계곡의 정취를 자아내듯 맑고 깨끗한 물을 흘려내 도심에 찌들은 내 마음 속까지 시원하게 적셔 주는듯 하다. 맑은 물소리, 오랫동안 물에 씻겨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바위 돌은 명지성(城)을 이루듯 도열하고 있다.

 이곳의 볼거리인 명지폭포를 지나치며 산길은 점점 고도를 높여 가는데 걱정되던 아들이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어 안심이다.
오늘 이대 방사선과의 서정수 선생님을 처음 뵐 수 있었다. 배낭 모습만 보아도 전문산악인 모습 같아서 선생님의 등반경력을 짐작케 한다. 선생님이 준비하신 따듯한 둥굴레 차에 힘든 몸을 녹이며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출발 후 1시간 30분여. 가파른 계단이 앞을 버티고 저 멀리 푸른 하늘이 보인다. 여기저기 구슬땀을 흘리는 회원들이 계단 한쪽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건강한 모습들이 아름답다. 주위에 늘어선 잎이 진 나무 사이로 유독 단풍 잎만 쪼글쪼글한 모습으로 붙어 있다. 가을의 붉고 찬란했던 자태가 아쉬워 떨어지지 못하는지, 차라리 포기하고 바람에 날려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은 어떨지….

 하늘이 가까이 보이는데 내가 생각했던 정상은 아니었다.
능선에 오르자 `정상 1km'라는 푯말이 보이고 흰눈이 쌓여 있었다. 능선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으로 나무에는 눈꽃과 상고대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등산길은 낙엽과 눈으로 위장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미끄러지는 소리. 등산화를 신지 않은 아들이 걱정이나 스틱에 잘 의존해 가고 있어 아이젠 착용을 뒤로 미룬다.
김진민 총무님의 무전기에서는 미끄러운 길에 안전산행에 신경을 써 주시고 출발 3시간이 지났으므로 능선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회원을 통제해 달라고 요청이 온다.
산악회 임원들은 안전산행에 신경 쓰느라 여념이 없다. 늠름하고 성실한 산악회 임원들의 자기희생은 언제 보아도 든든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닐텐데, 모두들 묵묵히 소임을 다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설경, 푸른하늘 환상적

가파른 산행길 피곤함도 말끔히 씻는듯

 이제 남은 거리는 400미터. 종잡을 수 없는 산행 이정표. 도상(圖上)거리로 표시하다 보니 실제 육상거리와는 차이가 있고 기력이 대부분 소진되어 가니 보다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산하는 의사신문사 황선문 차장 일행과 마주친다. 정상의 눈꽃이 환상적이라고.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위에 펼쳐지는 눈꽃의 향연. 좌측 바위위로 올라서니 탁 트인 하늘에 흰 능선 길을 따라 명지 2봉, 3봉이 보이고 9시 방향의 연인산 또한 소복 단장한 여인처럼 다소곳이 명지산을 향하고 있었다.

 아들아! 힘겨운 산행이었지만 탁 트인 세상의 설경을 보려무나. 명지산 승천사라더니 하늘 아니 별천지에 온 것 같지 않니?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눈꽃송이들, 햇볕에 반사되어 투명한 빛을 밝히는 상고대,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 탄성이 절로 나오지 않니?
아들도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지 얼굴에 함박웃음을 보인다.

 아들과 첫 산행에서 이런 아름다운 설산을 보게 되다니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절로 느끼게 된다. 한 평 남짓한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서 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는 방(?)을 다른 회원들에게 양보한다.
동북쪽으로 보이는 경기 제1봉인 화악산도 흰눈을 뒤집어 쓴 채 우리를 마주하고 산행기점인 익근리 주차장이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인다. 산악회 이사인 황연미·전명숙 선생과 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아이젠을 착용 후 출발준비를 서두른다.

 아이젠을 하였건만 하산 길은 만만치 않다. 눈과 진흙이 뒤범벅이 된 산행 길은 잠시 한눈을 팔면 여지없이 미끄러지고 만다.
경사도 만만치 않아 준비해간 스틱이 없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화만 신은 아들이 미끄러져 쓴웃음을 짓는다.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등반장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주위에 있던 산악회 서윤석 회장님이 들고 가시던 보다 더 긴 스틱으로 바꿔 주신다. 하산 길에선 스틱의 높이를 더 높여야 한다고 한수 가르쳐 주신다. 능선에서 5분 정도 내려가자 눈이 없어진다.
등산 시 `힘들어도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철칙에 따라 빨리 아이젠을 벗는다. 우리가 힘들게 올라왔던 계단을 따라, 맑은 하늘을 따라 내려간다.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우측에 맑은 계곡물소리가 다시 들리고 하늘(?)에서 인간세상의 땅으로 한발 한발 내디딘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반가운 이정표는 나타나지 않는다. 산악회장님은 명지산을 솔직하고 장쾌한 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대부분의 산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고도를 올리고 내리고 하는데 이산은 오를 때는 계속 오르고 하산 시는 계속 내리기 때문이리라.
앞서 지나쳤던 명지폭포를 보기로 하고 계단을 내딛는데 여기 계단도 폭이 크고 가팔라 마지막까지 힘을 다 빼 놓는다.

 길이가 5미터정도 되는 폭포는 맑은 물을 내뿜고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명주 한 타래가 다 들어갔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식당에는 미리 내려온 회원들로 분위기가 따듯하다. 메뉴는 민물매운탕. 옆에 계신 심태섭 선생님의 요리강습을 들으며 잣 막걸리에 산악회장, 이재일 훈련팀장과 아들 첫 산행을 축하하는 브라보를 하였다.
새삼 아들이 대견스럽다. 피라미, 꺽지, 미꾸라지, 붕어 등이 들어간 매운탕은 내가 어릴 적 충청도 고향마을에서 먹던 그 맛이 살아 있었다. 으음 바로 이 맛이야!

 고향 분 만난 것처럼 반가워 아들과 한 냄비를 다 비웠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다니 아들이 복이 많은가 보다. 오후 4시 15분 막걸리 한잔에 몽롱해진 머리를 냉수로 추스르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제 나는 산악회 훈련팀원의 통과의례를 두 단계 통과하였다. 황연미 이사는 월출산 산행 후 상경 열차에서 “첫째 산행훈련을 통과할 것, 둘째 산행기를 쓸 것, 셋째 노래방에서 100점을 맞을 것”을 훈련팀원의 3대 관문이라고 귀뜸 하였다.
이것이 진담이 아닐지라도 도전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나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나를 산악회 훈련팀으로 이끌어준 이재일 팀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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