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Zen;禪) 스타일
젠(Zen;禪) 스타일
  • 의사신문
  • 승인 2008.07.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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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의 아름다운과 영향력

이번의 이야기는 자동차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아주 어릴때부터 오디오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 집에 있던 진공관 앰프를 분해한 이후로 오디오를 만들거나 사거나 분해했다. 최근에는 오디오 바람이 불어 잘 가지도 않던 오디오숍들을 찾기도 했다.

필자 주위에 오디오광들이 많기 때문에 오디오들을 청음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이런 오디오들의 비용도 비용이지만 들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하루의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근무시간에는 크게 듣는 것이 불가능하니 백뮤직 정도로 듣는 정도라면 그저 앰비언트 뮤직정도로 보아야 한다. 열심히 듣는다고 해도 하루에 몇 시간 정도다. 그 시간마저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이나 이메일을 볼 때가 많고 인터넷 서핑도 해야하니 음악에 집중하는 것은 아주 힘들다.

그런데 얼마 전 재미있는 아이템이 나타났다. Gaincard라는 일본의 오디오 기계였는데 1999년에 발매됐으니 나온 지 10년 가까이 된 오디오이다. 아주 작은 네모난 앰프(카드나 엽서 크기의)와 파워 서플라이를 합해 3500불 정도에 팔렸다. 요즘도 이 앰프를 판매하고 있다. Studio 47의 작품이다. 이 앰프의 재미있는 점은 파워 OP 앰프 하나가 카드크기의 앰프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앰프의 출력은 50W 정도로 절대 큰 편이 아니다. 모든 부속을 다 합쳐봐야 채널 당 9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속의 가격은 5달러가 안 되는 미국 내셔널 반도체의 제품이다. 나머지는 콘덴서와 저항뿐이다. 아무것도 없다! 그 작은 앰프의 속마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커다란 앰프와 시스템 사이에서 이 간단한 기계는 바로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음악에 집중하는데 복잡한 시스템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 설계자의 설명이었다. 설계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오디오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 기술자로 너무나 복잡한 기계와 메커니즘에 절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설계자의 설명은 가장 간단한 것만이 가장 복잡한 일을 다룰 수 있다는 다소 선문답적인 설명으로 이어졌다.

필자의 해명을 붙이자면 음악을 듣고 즐기는 일에는 가장 간단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평론가들은 높은 점수를 주었고 5달러짜리 칩 두 개를 사용한 기계가 3500불 정도에 팔렸다. 사람들은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시스템이 주는 젠의 스타일을 산 것이다. 젠이라는 것을 스즈끼 선사가 서양에 전파한 이후 미니멀리즘의 요소가 강한 것들을 젠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기계들이 가장 실용적이지는 않더라도 가장 간단한 요소들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입력부에서 앰프본체까지의 입력신호의 길이는 3cm, 앰프의 출력에서 입력까지의 피드백 루프의 길이는 2cm 정도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데까지 줄이고 음악을 들을 일만 남은 것이다.

5달러짜리 칩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리는 사진이 인터넷에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 산 사람들도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산 것이다. 3500불을 지불하게 만든 것은 성능이 아니라 스타일이었다!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비방 대신 이 미니멀리스틱한 앰프를 따라하기 열풍이 불었다. gain card의 clone인 gainclone의 열풍이 오디오 DIY 팬들 사이에 불어 수많은 변종이 생겨났다. 젠스타일이라는 문화의 입김이 작용하자 가장 간단한 앰프를 만들어 즐기자는 열풍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의 사고패턴이 바뀌자 이 앰프를 즐기는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필자 역시 이 열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명인이 만들었다는 중고 한 개를 산 후 마음에 안 들어 몇 개를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일들이 애초부터 아주 간단해 버리면 일들이 복잡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많이 모았던 앰프나 오디오들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크고 복잡한 빈티지 앰프들도 마루에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 몇 개는 팔리거나 창고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대신 소반위에 작은 앰프가 하나 얹히고 gainclone을 유행시킨 사람이 추천한 초기버전의 소니 오락기 플레이스테이션 한 대가 CD플레이어로 놓여있게 되었다. 더 이상 단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인가 반성이라도 하듯 열심히 음악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거실은 아주 단순하게 변한 것이다. 오디오 기계의 테스트 벤치가 아니라 음악을 듣게 되었다. 선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엇인가를 깨우치듯 생각의 변화가 왔다. 스타일, 특히 라이프스타일은 이렇게 중요하다. 젠스타일을 표방하니 이렇게 변해버렸다. 차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누군가 젠 스타일을 주창하고 만들면 사람들은 따라한다. 이런 스타일의 차가 나오면 필자는 아마 차를 한 대가 아니라 두 대라도 살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요소가 사람들 속에 잠재한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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