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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사원로탐방] 나복영 한국여자의사회 전 회장
[여의사원로탐방] 나복영 한국여자의사회 전 회장
  • 유경민 기자
  • 승인 2008.07.01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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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가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전시회가 시작되던 날 오픈식에는 고대의대 출신 원로 의료인(교수)들이 많이 참석했고 노 선배들의 모습에 현직 교수 후배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고 깍듯한 모습으로 이들을 우대했다.

이날 나복영 전 해부학과 교수도 자리를 함께 했다. 선후배들과 담소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오래만의 외출에 모두들 반가워했다.

선배들의 권유로 회장직 맡아 1960년 한국여자의사회 3대 회장으로 선출돼 여의사회를 이끌었던 나복영 회장은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서 여의사회의 산 증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초대회장과 2대 회장이 이미 작고했기 때문에 나 전 회장이 가장 먼저 회장을 지낸 인물로 남아있어 원로로서의 의미가 남다르다.

나 전 회장은 여의사회 활동 당시를 회상하며 “학교에서 기초의학교실에만 있다가 덜컥 회장으로 추대돼 고사했으나 선배들의 권유로 회장직을 맡게 돼 그저 명맥만을 유지했다”고 겸손해 했다.

그러나 “이미 1956년에 선배들에 의해 여자의사회가 결성되고 국제여자의사회에서 편지와 회장 순회를 통해 활동을 독려하는 등 전쟁 폐허국인 나라를 끌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나 전 회장은 “당시 월례회에 10여명이 참석했고 그것도 보사부 입회 하에 모임을 갖는 등 시국이 삼엄했다”며 “지금 후배들의 활동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조직적으로 척척 움직이는 것 보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것.

제자들 교수로 키워내느라 바빴던 시절 나 전 회장은 교수시절, 제자들을 박사로 만드는 것에 가장 많이 치중했다.

강의하고 논문 쓰고 제자들 논문 살펴보고...정말 원 없이 일했다. 일에서 떠난지 한 참이나 지난 지금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

참석하는 모임은 한 달에 동창회 두 번과 성당 모임 세 번이다.

여기에 가끔 좋아하는 친구와 영화 관람을 즐긴다. 하늘로 먼저 떠난 지인들이 많아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친구들이 남아 있어 감사하다.

젊어서부터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해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나 전 회장의 즐거움이다.

종이에 펜으로 쓴 편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선 받는 사람에게 큰 기쁨일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의 마음도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나 전 회장은 규칙적인 생활이 건강의 기본 요소라고 생각한다.

메일 오전 중 4개의 신문을 읽는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열독한다. 같은 기사라고 신문마다 논조가 다르기 때문.

이 기사를 다른 신문에서는 어떻게 썼나 궁금해 신문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식사 역시 규칙적으로 하되 토스트와 우유 또는 커피ㆍ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은 국수나 분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저녁엔 밥과 국이 있는 전형적인 한국 식단으로 먹는다.

인간성 망각되는 진료 환경 ‘NO’ 나 전 회장은 “의대생이 거드름을 피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과 달라 몸가짐도 마음가짐도 성직자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

더욱이 “요즘 언론에 비춰지는 의사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며 “묵묵히 진료하고 봉사하는 의사들이 부각됐으면 한다”는 바램을 내비쳤다.

아울러 “의료계 환경이 예전과 같진 않지만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환자 위해 헌신하는 것과 인간적인 사랑을 베푸는 의사가 돼야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며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기본이지 데이터와 기계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곧 “인간성이 망각되는 진료 환경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것이 선배 의사로서 후배 의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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