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5:51 (목)
오성옥 재독 한인간호협회 수석부회장
오성옥 재독 한인간호협회 수석부회장
  • 김기원 기자
  • 승인 2008.06.09 22: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일 개최된 영동세브란스병원 개원25주년 기념식에 파독간호사 대표로 오성옥 재독한인간호협회 수석부회장(57세, 독일 거주)이 참석, 연세대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이는 영동세브란스병원이 파독간호사의 피와 땀의 대가인 독일정부의 차관을 시드머니로 해 개원,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개원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오 수석부회장의 귀국소감 등을 들어보았다.

-파독간호사 대표로의 소감이라면?

“먼저 재독한인간호협회 회장이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고 수석부회장인 제가 영동세브란스병원 2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지난 1966년 시작된 파독간호사들의 피땀어린 댓가인 독일차관으로 개원한 영동세브란스병원의 발전된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하다. 당시 열악한 경제 및 의료환경에도 불구하고 파독간호사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국민건강 증진과 인술기술 제고에 앞장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올해 독일차관을 모두 상환하는 의미있는 이 행사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개인적인 소감이라면?

“저는 파독 5차인 1970년도에 파견됐다. 1975년경까지 파독간호사는 1만5000명 정도였으며 잔류하고 있는 간호사는 모두 5000여명 그리고 현업에 종사하는 파독간호사가 아직도 약 2500여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본인은 38년간 임상간호사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1960-70년대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간호사 해외송출이란 극약처방을 우리는 인내로서 감내하며 뼈를 깍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눈물어린 빵의 의미가 이토록 혹독했던지 몰랐다. 우리의 과거 독일 생활은 정말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시련을 극복하고 오늘 이 개원25주 기념식에 초청받아 조국번영의 모습과 영동세브란스병원의 발전상을 상세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잘 보고 들어 이 모든 것을 재독 동료들에게 잘 알릴 생각이다.

-한국에 와서 보니 어떤 느낌이 드는가?

“영동세브란스병원을 소개하면서 의료의 불모지인 서울 강남지역에 연세대의 건학이념인 사랑, 봉사,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전인적인 진료 및 선진화된 의학을 전파하기 위해 개원했으며 대한민국 의료 1번지라고 전해 들었다.

먼저 척추전문병원과 치과전문병원을 둘러 본 결과,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의 1번지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배려하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세계속의 병원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라며 계속 긍지를 가져주시길 바란다.

또, 지난 8일 저녁 지난 2005년 새로 문을 열었다는 신촌의 본원인 세브란스병원 본관을 둘러 보았을 때 그 웅장함과 최신시설에 압도될 정도였다. 독일의 일류병원에 못지 않은 시설이었다. 발전된 고국의 모습과 의료시설에 감동했다.

-한국정부에 바라는 점이라면?

“재독 5000명의 간호사들을 대표해 희망사항을 말씀드리겠다. 우리들이 귀국해 병원에서 근무하게 될 때 독일병원의 근무경력과 독일간호사 자격증 취득후 취업을 원할 경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바한다.

이제는 우리들이 조국과 고향이 그리워 방문을 해도 이미 부모님들이 생존하지 않기 때문에 숙식에 고초가 크며 특히 거주문제가 어려운 처지다.

이런 처지를 감안, 파독간호사들중 장기거주 희망자나 방문자들을 위한 숙소를 해결해주실 수 있을지 부탁드린다. 또한, 장기고국 방문시나 여생을 고국에서 마감하고자 할때 독일에서 적용받는 건강보험 혜택을 한국에서도 받을수 있도록 독일정부와 협상하여 주시길 바란다.

지난 60년대 가난했던 삶의 현장을 뒤로 두고 이역만리 말도 통하지 않는 독일 땅에 뛰어들어 몸바쳐 일해온 우리 파독간호사들의 피땀어린 송금으로 인한 인력수축의 계기가 되어 독일의 차관을 얻게 됐으며 또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 역할을 했다.

이로인해 오늘날 세계 12경제 대국이 되는 초석이 되었음을 확신하면서 우리들의 흘린 땀과 눈물은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오성옥 수석부회장은 간호학교인 마산간호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할 무렵, 친구의 권유로 파독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1970년8월15일 독일로 떠났다. 당시 부산대병원에 합격, 출근 2일을 남겨두고 갑자기 결심을 바꾼 것.

오 수석부회장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선진의학을 공부할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3년만 공부하는 생각으로 떠난 것이 벌써 38년이 되었다고 한다.

떠나기전 한달간 독일어를 배웠지만 겨우 간단한 인사말을 배웠을 정도였기에 독일에 도착한 병원의 배려로 3개월간 근무외 시간에 독일어를 배울 수 있었다. 오 수석부회장은 당시 어려움과 마음고생은 이젠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했다.

또 모르는 독일어는 손바닥에 써놓고 퇴근후 사전을 찾아보며 악착같이 일했다. 그러던 중 1972년 9월 파독 광부를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으며 현재 1남(34세) 1녀(28세)의 자녀를 두고 대학까지 졸업시켰다고 한다. 또 자녀들은 이제 번듯하게 커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오 수석부회장은 독일에 근무하면서서 가끔 한국인 환자들을 보게 되면 각별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들도 이역만리에서 한국어로 간호해 주는 저를 보게되면 몹시 반가워했다고 한다.

한편,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오 수석부회장은 1970년 마산대학간호학부(구 마산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한후 1970년 8월 파독, 1970년8월부터 1973년7월까지 독일 에센 성요셉 병원에서 근무했으며 1973년8월부터 현재까지 독일 바드쉬발박흐 헬리오스 병원에서 근무중이다.

김기원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