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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점차 생물을 닮아간다
차는 점차 생물을 닮아간다
  • 의사신문
  • 승인 2008.06.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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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모양과 기능을 닮아가는 헤드라이트

석유값이 폭등하는 와중에 필자는 오디오 거래 때문에 경기도 근처를 열심히 오가고 있다. 사실 요즘같이 골치 아픈 세상을 잊고 싶은 무책임한 도피이기도 하다. 아무튼 현실 도피 성향이 있는 필자로서는 요즘 음악을 듣는 일이 낙이다.

우리는 분명히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요즘 같으면 어려운 세상에 대한 가이드북을 누가 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이를테면 1970년대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쓴 슈마허의 난국을 위한 지침서 같은 재미있는 제목의 책들이 있었다.요즘은 월드워치의 `Plan B'같은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책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감성적인 명저를 기대하고 있다.

몇 번 수도권을 뛰어다니다 보니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예상외로 조명이 좋지 않은 길이 많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런 길은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헤드라이트의 가시거리는 예상외로 짧다.

과거의 헤드라이트들이 일반 텅스텐 전구에서 할로겐으로 이행하면서 가시거리, 전구의 수명, 밝기의 문제를 많이 해결했다. 그 다음은 제논 램프로 가면서 더 밝아졌지만 밝기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밝기에 대한 법적인 한계도 있으며 무엇보다 다른 차들의 시야를 방해한다. 너무 밝지 않더라도 시야를 잘 확보하는 일은 그 다음에는 프로젝터를 사용한 조명으로 옮겨졌다. 플래시나 조명을 목표를 향해 비추면 작은 광량으로도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대신 항상 필요한 곳으로 옮겨 주어야 한다. 빔라이트는 지금까지의 라이트보다 잘 보인다. 비싼 것이 흠이다. 야간 운전에는 도움이 된다. 물론 주의 깊은 운전보다 더 중요한 팩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멀리까지 잘 보이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다. 조명의 진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BMW 매거진의 2008년 1월호는 An Illuminating Experience라는 제목으로 조명이 적극적 안전의 하나라는 사실을 적었다. 미리 사물과 상황을 파악하는 일은 정말 적극적인 안전의 하나다. ABS 브레이크나 전자식 위치 제어 ESP는 많은 사고를 줄인 것이 사실이고 지금까지는 이들을 적극적인 안전으로 보아왔다. ABS와 EPS는 처음 도입부터 안정화 단계까지 30년에서 50년이 걸렸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과의 인터페이스가 하나의 적극적인 안전으로 등장한 것이다. 보아야 할 사물을 미리 비추거나 헤드라이트의 각도를 변경하는 아이디어는 1950년대의 벡터(Vector)나 시트로엥의 차들부터 도입됐다. 광량을 변경하는 아이디어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다른 메이커들을 포함하여 헤드라이트와 스티어링을 아우르는 새로운 HCI(사람 - 컴퓨터 인터페이스)로 등장했다. 사실 차들은 더 개량할 점도 별로 없다. 새로운 방향(소형 또는 경량화)으로 진화할 필요만이 남아있다.

아직은 완전한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만 새로운 조명은 좌우의 조명각도와 광량 그리고 초점거리를 바꾸어 앞부분만 밝게 비추기도 하고 먼 거리를 비추기도 하며 좌우의 광량을 진행할 방향만 더 강하게 변경하기도 한다. BMW 말고 다른 차종중에는 눈꺼풀처럼 아이리스를 가진 차종도 있다.

그러니 이제 가까운 미래의 운전은 시야가 좋아질 것이긴 했지만 두 가지의 문제가 추가됐다. 하나는 조명 시스템이 안구진탕이나 시력 문제를 일으키면 밤의 운전은 없는 것보다 훨씬 악몽이 될 것이라는 것과 헤드라이트를 깨먹으면 많은 치료비용이 들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시력과 각도가 고질적으로 안맞는 사시에 해당하는 라이트의 증상 같은 것들이 소비자 고발에 등장할 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필자는 추돌 사고로 망가진 차의 헤드라이트를 주워왔다. 공장에서는 깨진 헤드라이트가 아무런 쓸데가 없는 물건이지만 필자에게는 귀중한 장난감이다. 거의 200만원이 넘는 헤드라이트에 대해 처음의 인상은 소비자가를 올리는 짜증나는 물건이나 기이한 장난감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헤드라이트가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생각해보니 잘 적용되면 운전자의 안전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장치가 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라이트는 눈처럼 좌우 상하로 움직이며 아이리스도 있다. 정말 눈을 닮아간다. 얼마 지나면 안구진탕을 보정하는 제품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차들은 디자인부터 기능까지 생물체를 많이 벤치마킹한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새로운 차종들이 사람과의 인터페이스 증대를 위해 닮아가거나 맞추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모양이나 기능은 어쩔 수 없이 생물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기계와의 인터페이스는 말을 타는 것처럼 섬세해지거나 복잡해져 가는 측면이 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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