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와 기호
소비와 기호
  • 의사신문
  • 승인 2008.05.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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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함과 갈망 사이의 소비문화

우리는 기호의 세계에 살고 있다.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이런 점을 일찌감치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실이나 실물의 세계에서 산다기 보다는 이미지와 상징의 세계에서 산다.

브랜드의 이미지나 메이커의 광고가 사람들의 머릿속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불속에서 훨훨 타오른다. 그리고 상상력이 살아있는 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즐거운 상상도, 불안한 상상도 가능하다. 성적인 상상도 있으며 황당한 상상도 있다. 물건이 귀하던 시절에는 물건을 갖는다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 상상이 있었으나 물건들이 흔해지자 정작 귀한 것은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가 돼 버렸다.

지난번에 이야기 한 `○○와 함께 한 시간'이라는 이야기는 정작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로 즐기는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필자는 오디오와 함께 이 이야기를 적어나갔는데 필자의 이야기를 조금 부연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오디오가 있어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얼마 전 필자는 잊어버린 시간을 메꾸기 위해 오디오들을 줄기차게 사 모으고 있었다. 인켈의 대표적인 인티앰프를 시리즈별로 사서 복원도 하고 테스트 할 스피커들을 몇 개 사서 들어보기도 하다가 정작 가장 많이 듣는 앰프가 PC라는 사실을 깨닫고 PC스피커를 조금 위의 Bose와 JBL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정작 조금 더 행복해진 것이 분명했다.

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음악이 조금 좋아지자 정작 하고 있는 일에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보고 생각할 시간이 줄어든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 모아 논 디지털 카메라들은 언제 만져본 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차는 타고 다니는 놈들을 빼놓고는 배터리가 방전되었는지조차 불안하기도 하다. 모두들 시간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시간과 관심을 받기 위해 줄을 선셈이다.

불쌍한 물건들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살물죄(殺物罪)를 범하지 않으려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방출해야 한다. 살물이라는 것은 물건을 함부로 쓰는 것인데 오래 방치하면 물건을 함부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며 결국 일정한 시간동안 쓰지 않고 갖고 있는 것도 살물이다.

시간은 짧다! 그리고 유한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다. 들을 수 있는 음반의 수도 정해져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CD 1장을 들으려면 1시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판이 많아도 다 들을 수는 없다. 만약 2∼3000장 가량의 CD를 갖고 있는 애호가가 있다면 하루에 두 장씩 열심히 듣는다고 할 때 3년이 걸린다. 여기에 CD를 고르는 시간은 계산조차 안 했다. 판을 제대로 고른다고 하는 사람들일 수록 고르는 시간은 길어진다. 듣는 시간보다 고르려고 결정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수도 있다. 물론 사놓고 못 듣는 경우도 많다. 몇 개의 앰프와 스피커을 조합해서 들어보려고 하면 시간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차들은 더하다. 메이커들에서 보내주는 매거진들이나 브로셔들을 보면 타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차량 1대를 고르고 적응하는 데에는 몇 달이 걸린다. 차를 파악하는 데에는 같은 회사의 차라도 한 달은 걸린다. 그래서 필자는 차를 몇 시간 타보고 시승기를 적는 사람들의 놀라운 능력을 무척 부러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차를 바로 사기로 작정하는 사람들도 부러워한다(너무 믿음이 지나치게 강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충동적인 성향을 비웃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너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우선 브로셔를 보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50% 이상의 체감효능은 느낄 수가 있다. 플라시보 효과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메이커가 말하는 신뢰라는 용어는 이런 플라시보를 지탱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지나친 관심과 비교를 행하지 않는 것으로도 이미 많은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무심하게 쓰다가 버리면 그만이다. 어느 이상의 차라면 사람들도 좋게 보아줄 것이고 그 정도면 중산층의 키치 문화 가치관의 덧에 안주하면서 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산다면 현대의 재미있는 장난감들을 너무 무시하면서 사는 것이다.

진실과 과장이 공존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물건의 소비=기호의 소비'라는 측면도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진실도 있다. 차나 오디오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개발자들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일을 보여주는 일이 현대의 소비 신화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제사적인 행동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덤덤함과 의심과 갈망 사이의 생태계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앞으로 몇 번의 주제이기도 하다. 메이커들이 명차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문화적 DNA 제조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스타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헐리우드가 고안해낸 방법이기도 하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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